●─── 복음의 글/인간과 주님

인간의 가정 주님의 가정

불편한 진리 2008. 6. 2. 22:57

인간의 가정 주님의 가정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가정의 달이라 그런지 5월이 되면 사회적으로도 많은 가정화목 혹은 회복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열린다. 현대에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정에 있고 가정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목회자가 가정 회복을 위해 사역하고 있다. 가정 회복운동을 함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가정을 바로 잡으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서 목회자들이 앞장서고 교회들이 여기에 장단을 맞추어서 갖가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것처럼...

이 문제는 실로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순히 행복한 가정으로 살아야만 성도의 가정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행복한 가정으로 사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물론 행복에 대한 의미를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따라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자체가 복음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있어서 가정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가족 관계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 왔고 그에 대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일러주었다. 그때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마 12:48)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지금 가족도 모르고 그들을 무시하는 처사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관계를 말씀하고 계신다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가정을 거부하시고 주님의 가정을 제시하신 것이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만 가족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가정의 성경적 의미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 상태에서의 가정이라는 것이 어떤 목적으로 주셨고,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만드셨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음으로 인해 하와를 만드심으로 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하는 복을 이루도록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이 가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정이란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참여하여 그것을 누리는데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두 사람이 한 몸으로 살아가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죄인이 되었다. 즉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합당한 한 몸임을 거부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결과로 두 사람은 서로 다스리려고 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창 3:16). 따라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이 결혼한다는 것은 아담의 실패를 재현해 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에덴에서 누렸던 한 몸으로써의 행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가정을 이루어 살면 살수록 행복한 가정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가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아담의 실패를 나의 실패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십계명에서 말씀하는 가정의 역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율법을 주심으로 인간이 기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십계명이라는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십계명의 계명 전체를 보면 거의 ‘하지 말라!’는 부정적 명령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 ‘하라!’는 긍정적 명령은 두 가지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다.

자녀들에게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일, 살인하고 간음하는 일, 도적질하는 일 등을 하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부모들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그 모든 것들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부모들이 부정적인 명령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가르쳐야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른 또 하나의 긍정적 명령인 “안식”이다. 즉 자신들의 노력으로 애굽에서 건짐 받아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노동으로 안식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가르쳐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곧 ‘구원’임을 드러내어야 하는 자는 부모였다. 이런 점에서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했다. 그래야만 언약이 제대로 성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안식을 알도록 하신 것이었다. 환언하자면 ‘안식’이라는 언약이 이루어질 동안 가정에서 계명으로 참 안식에 대하여 가르치고 기대하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참 안식이란 무엇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것은 상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처소는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5:17에 보면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 백성들과 더불어 사는 그것이 곧 언약의 완성으로 나타내고 있고 그것이 곧 참 안식이라는 뜻이다. 그 안식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한 인물을 오래 전부터 제시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인의 후손 중의 한 분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안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안식이란 무엇인가?’로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은 누구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안식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다! 결국 율법(계명)은 언약의 온전한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주고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안식이기 때문에 하실 수 있었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셨던 궁극적인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다는 것이다.

 

가정의 실제적 의미

 

남녀가 서로 만나서 사랑하기 때문에 가정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완전한 한 몸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죄인들이 이루는 가정은 ‘인간의 가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통해 우리와 한 몸을 이루신 것이다. 주님과 더불어 한 몸을 이룬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신 ‘주님의 가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는 자기 백성들과 한 몸을 이루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 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루셨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요 참 안식이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예수님의 모친이요 형제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이다. 즉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자가 예수님의 가족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이기에 새로운 가족관계에 들어간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새로운 가족이다(엡 2:13).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제 예수님 때문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한 가족이 되었다(갈 3:7, 롬 4:16).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이 땅의 개념으로 정의 내리는 가정으로는 존재하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되는 문제이지 인간의 혈통이나 육정, 사람의 뜻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요 1:12,13). 이 말씀을 통해서 보았을 때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의한 것은 거부된다는 뜻이다. 순수하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의해 이루어지고 안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형님이 죽으면 형수와 결혼하여 형님의 아들을 낳아주어 대(代)를 잇게 하는 ‘시형제 결혼법’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책망하시면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고 하셨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천국은 이 땅에서 이루었던 가정의 연장이 아니라 주님과 한 몸을 이루는 주님과의 완전하고 새로운 관계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18:29-30에 의하면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 땅에서 가정을 팽개치고 무시하면서 살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 땅의 것이 한시적인 줄로 알고 하나님 나라를 가장 소중한 여기는 자는 반드시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관계이다.

 

인간의 가정과 주님의 가정의 역할

 

우리는 가정이라는 것이 이 땅에 있을 때까지만 존재하는 한시적 제도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죄인 됨을 뼈저리게 깨닫는 기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한 몸을 이룬 하나님 나라를 더욱 소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게”(고전 7:33)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고전 7:29)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은 지나갈 형적이기 때문이다(고전 7:31).

오늘날 각 가정들은 돈벌이에 너무 분주하다. 자녀들을 돌볼 틈이 없다. 그래서 놀이방,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이런 것들이 발달하는 것이다. 부모가 가정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을 하루 종일 학원에다 맡기는 것이다. 그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교회의 주일학교는 어린 아이의 신앙교육을 전적으로 시켜주는 곳으로 생각한다. 교회의 주일학교에 자녀를 보내면 신앙교육이 저절로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도는 가정생활을 교회의 연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이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주님께 복종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이것으로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6장에 보면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왜 그런가? 부모를 통해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배움으로 참 안식이 바로 주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의 희생을 이루실 수밖에 없었던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와 가정이 이러한 부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은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는가 하는 측면에서 천국을 알 수 있는 한시적 제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죄 때문에 이룰 수 없었던 한 몸의 관계를 주님께서 이루셔서 우리를 주님과 한 몸이 되게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정을 통해 우리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죄인의 본성이다. 나 혼자서는 집을 사기가 어려우니까 결혼하면 맞벌이를 해서 빨리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복음이 아니고, 즐겁고 기쁨이 있는 가정이 하나님 나라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정을 통해 인간이 한 몸을 거부해 버린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한 몸으로 이루신 유일한 사역이었음을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들이 5월에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로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교회의 사명은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을 지키면서 어린이를 사랑하고 부모님께 효도함을 가르치는 것에 있지 않다. 효도를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도 있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교회가 아니면, 말씀에 의해서가 아니면 어디서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의 가정을 거부하는 심정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 곧 천국을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가정에 속한 자의 삶이다(김영대/20090420/예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