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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12
출애굽기 6:28-7:13
뱀이 된 지팡이
본문은 열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아론의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이적으로 나타내셨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신 말씀이다.
“28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30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28-30절).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30절)라는 말씀은 6:12의 말씀과 동일한 표현으로 12절과 30절의 이 두 구절 안에 아론을 중심으로 한 계보가 기록되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론을 부르신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증한다. 모세는 무능한 자로 육이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모세라는 육을 죽이고 아론을 세워 진리를 말하게 하는 것을 통해 엘로힘으로 짝을 이루어 세상에 진리를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이제 그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1절).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미 4:16에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모세를 바로에게 하나님이 되게 하셨다는 뜻이다(개역한글판에서는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이라고 잘 번역하였었다). 이것 때문에 6장에서 아론을 중심으로 한 계보를 소개하여 하나님께서 아론을 세우신 정당성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역을 심하게 하는 것으로 율법의 행위 아래 매이도록 하였다. 선악의 나무를 취한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엘로힘이 되어 말씀을 문자의 율법으로 가르친다. 오늘 우리도 바로처럼 살아왔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모세와 아론이 짝을 이루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짝을 이룬 말씀이 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바로처럼 살고 있는 종교인들에게 엘로힘으로 드러내신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 10:34-35)
“대언자”란 ‘나비’로 ‘대언자, 선지자, 예언자’라는 뜻이다. 말씀은 영의 말씀이고 영의 말씀이란 기록된 문자가 풀려서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내는 일을 예언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아론을 선지자라고 표현한 것은 엘로힘이 된 모세와 짝을 이루어 하나의 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2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라는 말씀은 문자의 말을 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로 풀어서 진리로 형제에게 말하게 된다. 그러면 그 형제가 전해준 것을 동일하게 진리의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다. 바울과 요한 사도에게 나타내신 것과 같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 1:1-2)
“중매”라고 번역한 ‘하르모조’는 ‘결혼하다, 결합하다, 하나 되게 하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남녀를 소개하여 서로 잘 사귀도록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전하여 신부 된 교회로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만드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열심을 힘입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하신다는 의미이다.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3-4절).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3절)라는 표현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이 바로를 더 완악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을 때 죄인에게서 드러나는 것이 완악함이라는 의미이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핵심 단어는 “표징, 이적”(3절), “큰 심판”(4절)인데 “표징”이란 ‘오트’로 ‘표시, 표징, 징조, 표적’이라는 뜻이다. 가인에게 주신 표(창 4:15)는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의미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드러난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이적”의 ‘모페트’는 ‘이적, 기사, 표시, 징조, 전조’라는 뜻이다. 표징과 이적이 같은 뜻의 말 같지만 ‘오트’(표징)는 언약의 표로써 그 본질적인 의미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모페트’(이적)는 드러난 현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심판”의 ‘셰페트’는 ‘재판, 심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이적을 통해 언약의 표로 알아먹지 못한다면 이적 자체는 재앙이 되고 그것 자체가 심판이다. 다시 말해서 표징은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 본질을 알지 못한다면 이적 자체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죄의 권세에 매인 저주 아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약으로 알지 못하는 표적은 이적에 머물러 그것 자체가 재앙이 되어 심판 아래 있는 상태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결국 언약의 표는 하나님 자신이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5절). “표징, 이적, 심판”의 목적은 여호와를 알게 하는 것인데 여호와를 알게 된 자는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4절) 곧 언약 백성으로 드러나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는 애굽 곧 비 언약 백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모세가 아무리 이적을 행하지만 바로가 완악하여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적으로 나타내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이적의 의미가 바로를 설득하거나 돌이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적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드러내심으로 여호와가 누구이신가를 알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5, 17절). 그래서 표적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 백성 외에는 못 알아듣는다는 의미의 표적이다. 그러나 이적을 통해 언약을 알게 되었다면 언약 백성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십자가라는 이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알아먹는 표적, 즉 언약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이나 십자가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세상에 속하여 마귀를 아버지로 삼고 그와 하나 된 죽은 존재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고전 14:22)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6-7절). 모세의 나이 “팔십”은 여덟째 날(8)을 완전함(10)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아론의 나이 “팔십삼”이란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팔십에 ‘3’을 더하여 삼 일 길을 예비하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길이기에 모세나 아론은 모든 능력이 상실된 연수로 고백하였다(시 90:10).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8-12절).
이 이적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시면서 4장에서 보여주신 이적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나 사실은 그 이적의 본질을 다른 의미로 풀어주신 이적이다. 왜냐하면 “뱀”(9절)에 대하여 4:3에서는 ‘나하쉬’로 썼으나 여기서는 ‘탄닌’(뱀, 용, 바다 괴물, 큰 바다 짐승)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뱀”(나하쉬)을 “용”(탄닌)이라고 하였다(사 27:1).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 20:2)
“현인”(11절)의 ‘하캄’은 ‘지혜로운, 현명한, 슬기로운, 총명한’이라는 뜻이고, “마술사”(11절)의 ‘카샤프’는 ‘호리다, 마법을 행하다, 마술을 걸다’라는 뜻이며, “요술사”(11절)의 ‘하르톰’은 ‘마술사, 점쟁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지혜자로 왕에게 국가 정책을 자문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즉 이들 스스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땅의 지혜에 불과하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애굽적 사고방식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얀네와 얌브레”라고 하였다(딤후 3:8).
결국 ‘탄닌’은 ‘나하쉬’와 같은 존재로 말씀하였는데 우리는 4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이적을 단순히 사탄이라는 존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 아래 오신 것을 보여주신 이적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출 4:8)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적을 언약의 표(표징)로 받은 자에게는 저주받는 메시아로 보지만 이적 자체를 추구하는 자는 진리를 대적하는 실체로 마귀요 사탄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처음 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11절)라는 것은 처음 표적을 언약의 표로 믿지 못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적 자체의 재생산이다(마 7:22).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이고 이적 자체를 추구하는 자가 탄틴, 곧 마귀요 사탄이다. 그런데 뱀이 뱀을 삼켰다고 말씀하지 않고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12절)라고 하였는데 이 전쟁의 결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땅에 던져진 자들의 실체가 드러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13절)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라는 표적으로 언약의 표를 온전히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표징, 이적, 심판을 통해 완악한 자는 완악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임한 자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이 되는 것이 구원이다(2025083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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