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09. 출애굽기 5:1-16 출애굽 명령과 심한 노역

불편한 진리 2025. 8. 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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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09

출애굽기 5:1-16

출애굽 명령과 심한 노역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한다. 바로는 거절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노역을 더욱 강화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심판의 재앙이 이어지나 바로는 계속 거부하고 가중되는 노역과 고난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바로와 애굽은 멸망되고, 이스라엘은 언약에 의해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고 간구하여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언약을 담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 열 재앙의 과정을 사는 것이다. 역사는 확정되어 있고 그 결론을 아는 자가 성도이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1절). “내 백성을 보내라”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형으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선포되었다면 이 말씀은 이미 이루어졌다. 창세 전 언약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시간이라는 간격이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 명령은 7:16, 8:1, 20, 9:1, 13, 10:3에서 6번 더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임을 확인시키시기 위함이다.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의 ‘하가그’는 ‘하그’(축제, 순례절기, 절기의 희생, 종교적으로 거룩한 날)에서 유래한 단어로 ‘절기를 지키다, 춤추다, 경축하다, 순례하다, 기념하다, 행진하다’라는 뜻이다. 즉 종교적으로 거룩한 날에 춤을 추며 그날을 즐기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삼상 30:16).

‘애굽’은 함의 자손 중에서 우리 성경에 ‘미스라임’으로 번역된 표현으로 히브리어로는 ‘미츠라임’인데 ‘환난, 고통, 고난, 걱정, 공략, 포위’라는 뜻으로 ‘속박의 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초르’의 쌍수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체적으로 ‘미츠라임’(애굽)이라고 하고, 멤피스(성경에 기록된 지명으로는 ‘놉’)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거주하였던 북쪽을 하부 애굽, 애굽인들이 최초로 거주하였던 남쪽 지역을 ‘바드로스’(히, ‘파트로스’, 사 11:11, 렘 44:1, 15, 겔 29:14, 30:14)로 지칭하였기에 쌍수로 표현된다. 우리 성경에서 ‘미츠라임’을 거의 다 애굽으로 번역하였으나 함의 자손으로 표현할 때는 창세기 10:6, 13, 역대상 1:8, 11에서 ‘미스라임’으로 번역하였다(새번역, 공동번역, 가톨릭, 새한글 성경은 ‘이집트’로 번역함). 유대인들은 헬라어로 70인역을 번역할 때 ‘미츠라임’을 ‘아이귑토스’로 번역하였고 그 후 성경 번역자들은 영어식으로 ‘이집트’(Egypt), 중국어 번역에서는 한자로 ‘애급’(埃及)이 되었는데 우리 성경은 중국어를 기반으로 번역하면서 ‘애굽’이라는 표현이 ‘아이귑토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 것 같다.

출애굽기는 속박의 땅에서 해방되고 압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계시하고, 애굽의 바로 왕은 세상의 왕, 더 나아가서 죄의 권세로 압제하는 사탄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율법적인 절기를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으로 인하여 춤을 추는 잔치를 이루는 구원을 의미한다(출 15:20). 이런 점에서 성경은 하나님 왕국을 즐거움과 기쁨의 잔치로 비유한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9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사 25:6-9)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2절).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그곳에서 400년을 살았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생소하기에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대적한다는 표현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견하신 내용이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바로 앞에 나아간 것이고, 바로는 세상 임금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출 4:21)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3절). 이 말씀은 3:18에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이다. “제사”의 ‘자바흐’는 ‘희생제물로 도살하다’라는 뜻이고, “사흘길”이란 십자가 죽음으로 희생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애굽 – 광야 – 가나안 땅’이라는 구원의 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1절)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시다. 죽음을 건넌 자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전염병”의 ‘데베르’는 ‘역병, 전염병, 페스트’를 뜻하는데 저주 아래 있는 심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칼”의 ‘헤레브’는 ‘하라브’(공격하다, 황폐하다, 파멸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말씀의 공격을 진리로 받지 못하면 황폐하게 되고 파멸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흘길을 가지 못한다면 말씀의 심판으로 인한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4-7절). “노역”(4절)의 ‘마아세’는 ‘행위, 행동, 노동, 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공작물’이라는 뜻이다.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4절)의 ‘세발라’는 ‘짐, 무거운 짐’이라는 뜻이다. 애굽 왕의 명령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는 의미이다. 율법적인 짐을 지우는 것이 세상 왕의 명령이고 말씀이다. 즉 비진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5절)라는 표현은 왜 모세와 아론이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안식을 주려고 하느냐는 거부이다. 그래서 벽돌에 쓸 짚을 스스로 줍게 하라고 명령한다.

“벽돌”(7절)의 ‘레베나’는 ‘타일, 벽돌’이라는 뜻이다. 비진리로 하나의 말을 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바벨 성과 탑을 세우는 재료가 돌을 대신한 벽돌이라고 말씀한다(창 11:3).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무너진 벽돌을 쌓는 것(사 9:10)과 벽돌 위에서 분향하는 것으로 묘사한다(사 65:3). 그래서 하나님은 제단을 쌓되 다듬지 않은 돌로 하라고 말씀하셨다(출 20:25, 신 27:5-6). 따라서 벽돌, 다듬은 돌이란 표현은 인간의 행위로 인한 수고와 노력을 상징한다.

“짚”(7절)의 ‘테벤’은 ‘원료, 지푸라기, 곡식 줄기, 겨, 검불’이라는 뜻으로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었는데(창 24:25) 바람에 날려가는 “검불”을 악인의 상태로 묘사하며(욥 21:18), 악의 힘을 비유하고(욥 41:27), 말씀을 받은 자를 알곡으로 묘사한 것과 대조하여 그렇지 않은 자를 “겨”로 표현하였다(렘 23:28). 따라서 짚이란 인간의 무가치한 힘과 행위를 상징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한다.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1-13)

 

언약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것으로 인해 상황은 악화되고 고난은 가중된다.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8-9절).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8절)라는 표현은 ‘희생제사’(히, ‘자바흐’)를 통해 말씀의 본질을 알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싫어하는 것이 자기가 가르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말씀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9절)라고 하였는데 모세와 아론이 전하는 언약의 말씀을 비진리로 치부한다.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9절)하는 것이다. 종교 장사꾼들은 온갖 이벤트를 열고, 프로그램과 일거리를 만들어 쉴 새 없이 봉사에 전념하게 한다. 속된 말로 정신없이 돌려야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이렇게 하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0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 너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0-11절).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10절)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된 표현으로 세상 임금은 계속 율법적 요구를 말씀인 것처럼 한다는 뜻이다. 애굽과 같은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일을 하라, 더 높이 쌓아라, 더 많이 축적하라,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성과를 내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그것을 율법적 행위로 메운다.

“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날의 일을 그날에 마치라 하며 14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12-14절). 율법적 행위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을 수 있는 것은 곡초 그루터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행위의 의를 계속 거둘 뿐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도 종교 생활로 말미암아 거두는 것은 지푸라기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날의 일을 그날에 마치라”(13절)라고 한 것처럼 우리 믿음의 척도를 날에 맞추고 주일성수, 절기들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이 성숙 되어가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15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16 당신의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사오니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15-16절). “당신의 종”(15절)이란 ‘에베드’는 ‘아바드’(일하다, 섬기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은 바로 왕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출 3:12)라는 말씀과 대조된다.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16절)라고 번역하였는데 쉽게 표현하면 ‘당신은 백성들에게 죄를 범하게 하고 있다’라는 말이다. 세상 왕은 율법적 행위를 진리로 전하나 그것은 죄를 범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었다(출 4:31). 그러나 언약의 말씀이 실행되는 과정은 노역의 가중으로 인한 괴로움이었다. 그래서 해결책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닌 바로 왕을 찾아가는 것이었으나 결과는 안식이 아닌 율법적 행위를 그대로 고수하는 명령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안식이란 있을 수 없다(20250810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09.0501-16 출애굽 명령과 심한 노역(202508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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