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10. 출애굽기 5:17-6:9 여호와인 줄 알리라

불편한 진리 2025. 8. 10. 14:39

 

https://www.youtube.com/live/pep2R98_vlU?si=fFcVHZPPFn3tX9rB

 

 

출애굽기 강론 10

출애굽기 5:17-6:9

여호와인 줄 알리라

 

언약의 말씀이 실행된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역사란 수평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개념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죄의 깊이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인간의 죄가 폭로됨으로 하나님께서 홀로 자기 의로 이루신 언약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바로 왕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심판의 정당성이 확보되면 심판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언약의 실행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죄악이 같이 드러나므로 이스라엘도 애굽과 같이 심판받아야 할 존재임을 폭로하신다.

“17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17-18절). 이스라엘 기록원들(관리인)의 호소에 대한 바로의 답변은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17절)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더 열심을 내어 수량을 맞추라는 것이다. 인간의 열심이 어떤 것인가를 바울 사도가 이렇게 전하였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19 기록하는 일을 맡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희가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19-21절).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19절)라는 말씀은 바로 왕에게 호소함으로 불이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만나니 바로 원망이 나온다. 예수를 믿었지만 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나쁜 일까지 겹치니 예수가 나를 위한 신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과 같다.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21절)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3절)라는 표현과 정확하게 대조된다. 즉 바로의 말씀으로 우리를 공격하여 죽이는 심판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성경은 바로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결을 확실하게 나타낸다. 이 대결은 칼이 아니라 칼로 상징되는 율법적 행위로 이루는 인간의 의와 언약의 말씀으로 이루는 하나님의 의를 대조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21절)라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들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려주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자신들의 고통을 해소시켜 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통이 가중되자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 이럴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유익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죽는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복음이 아니라고 거부한다.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22-23절). 첫 번째 대결이 끝났을 때 승리자는 바로 왕인 것처럼 드러났다. 모세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이 낙심하고 하나님께 불평하였다. 그 증거는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23절) “학대”(22, 23절)가 가중되었다는 것이다.

“학대”라고 번역한 ‘라아’는 ‘악하다, 나쁘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시키겠다고 하신 그것이 나쁜 것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선악의 체계 속에 있는 인간은 자기 기준으로 좋은 것, 나쁜 것을 구분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일하시는 것이 구원이다. 그 과정에서 모세를 보내신 것이고 이스라엘이 고통 중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 자체가 선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 때문에 그것을 나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우리의 죄악이다.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1절).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라고 하셨다. 그것은 “강한 손”,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신다는 것을 평행 본문으로 강조하였다.

 

(나의)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나의)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일하시고 모세는 그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언약에는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나는 것이다. 언약의 성취가 십자가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2-3절). “전능의 하나님”(3절)이란 ‘엘 샤다이’는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언약을 주셨다면 그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으로서 전능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언약 성취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여호와이니라”(2절)라는 선언은 존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은 존재가 아니며 없음이라는 의미이다.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3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라는 ‘엘’이나 ‘엘로힘’은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우주 전체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위엄의 하나님이시다. 즉 인간이 이 땅에서 또 역사 속에서 감히 감지할 수 없는 저 하늘에서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엘로힘’은 짝으로 일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기에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3절)라는 표현은 창조 언약에 근거하고 그들을 다스리고 계시며 그 안에서 짝으로 하나를 이루고자 하신다는 것을 “전능”으로 나타나셨다면 창조의 하나님(엘로힘)께서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이스라엘로 만들어 언약을 친히 성취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여호와로 표현하신 것이다.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4-5절).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라고 말씀하신 대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신다.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그래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라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여 그 말씀의 성취를 깨닫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라고 요엘서에서 말씀한 여호와가 주, 곧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언약을 성취하였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라고 강론 말미에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6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것을 여호와로서 그들의 후손을 애굽에서 빼내고 이스라엘로 만들어 그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언약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거운 짐”(히, ‘세발라’)이란 율법의 짐을 의미하고, “노역”(히, ‘아보다’)이란 인간의 행함을 의미하고, “건지며”(히, ‘나찰’)는 누구에게서 빼앗아 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빼내며”(히, ‘야차’)는 어떤 것에서 떠나게 함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속량”(6절, 히, ‘가알’)으로 다시 되사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7절). 하나님의 언약의 온전한 성취는 ‘여호와를 아는 것’이다. 이때 “알지라”라는 표현은 ‘야다’로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기에서 구원의 과정을 통해 계속 강조되는 표현이다(출 1:8, 5:2, 6:3, 7, 7:5, 17, 8:10, 22, 9:14, 10:2, 7, 26, 11:7, 14:4, 18, 16:6, 12, 18:11, 23:9, 29:46, 31:13, 33:12-13, 16-17).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8-9절).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8절)라는 말씀은 이미 아브라함 언약에서 말씀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성도의 기업이다(히 9:15).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그들 속에 말씀이 없다는 증거를 드러내신다.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요 5:37-38)

 

(20250810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10.0517-0609 여호와인 줄 알리라(20250810).pdf
0.1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