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예수님의 이적

30. 마태복음 12:22-29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_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심

불편한 진리 2022. 11. 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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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적 30 _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심

마태복음 12:22-29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신 이적을 마태는 두 절로 기록하였지만 누가는 단순히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신 이적으로 단 한 절로 소개한다(눅 11:14). 공통적인 것은 이적과 연관하여 바알세불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단지 마가는 이적 자체는 소개하지 않고 친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여 붙잡으러 온 사건과 연관하여 비유로 표현하였다(막 3:23).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22-23절). 마태복음 9:32-34에 보면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라는 기록과 유사한데 마태는 다시 한번 더 유사한 이적을 기록함으로 바리새인들이 바알세불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한 답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자 하신 것으로 보인다.

“무리가 다 놀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놀랐다’(헬, ‘엑시스테미’)라는 말은 마태복음 9:33에서 ‘놀랐다’(헬, ‘다우마조’)라는 것보다 더 강한 표현으로 강력한 인상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이적을 통해 예수님은 이전보다 더욱더 강한 메시지를 던지셨다는 뜻이다. 그것은 무리들이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한 말에도 드러나고 있는데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본다는 것은 메시아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가? 아니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귀신의 왕을 힘입어 이적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을 무시하며 안식일의 주인이라고까지 말하니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이단이었다. 예수님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자기들의 종교가 결코 유지될 수 없다고 본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 자신들을 의롭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안식일을 어기며 일하는 예수님을 결코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심으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율법주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폭로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아시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25-26절)라고 하시며 덧붙여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27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너희의 아들들”이란 ‘너희들에게 속한 부류’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만약 귀신의 왕이 하는 일이라면 자기 왕국, 통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귀신들의 일을 돕고 힘을 보태는 것이 맞는 일이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자기 세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며 자기 왕국을 자기가 허무는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 예수님의 논리였다. 이런 의미에서 너희 가운데서 귀신을 쫓아내는 그들이 바로 너희를 판단하는 “재판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악의에 찬 훼방이 모순된 것임을 폭로하신 후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이 악하고 더러운 영들의 권세에 매여 있는 것에서 풀어 자유하게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셨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28-29절).

“귀신의 왕”, “바알세불”, “귀신”, “사탄”을 “강한 자”로 나타내고 있다. “강한 자의 집”, “그 세간”, “그 집”이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귀신 들린 자’를 의미한다. 이와 대조하여 예수님께서 방금 행하신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강한 자를 결박하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고(누가복음 11:22에서는 “더 강한 자”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알세불을 힘입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라는 말씀은 ‘바알세불 안에서’, ‘하나님의 영 안에서’라는 말이다. “결박”이란 묶어서 매어 놓는다는 의미이고 “강탈”이란 헬라어로 ‘하르파조’인데 ‘훔치다, 잡아채다, 데려가다’라는 뜻으로 ‘구원’이란 의미를 지닌다.

사탄을 결박하여야 그 집을 강탈할 수 있다는 것은 귀신 들린 자를 강한 자에게 속한 세간으로 표현함으로 모든 죄인의 상태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탄에게 사로잡혀 그의 소유가 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죄인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죄의 권세에 매인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대적자의 손에서 강제로 빼앗아 오셔야 되는 것임을 나타내셨다.

누가복음 11:20에서는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행하시는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문자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손가락’이라는 말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일을 가리킬 때 사용된 말이다(출 15:6, 신 9:10, 시 8:6).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하신 일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왕국이시라는 의미이다.

결국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것은 단순히 오늘날도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혹은 축사)의 은사를 추구하며 그 은사를 받아 예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도록 하신 모범을 보여 주시고 이렇게 하라는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더럽고 악한 영들을 쫓아내신 일은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여 사탄의 세력이 굴복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흔히 안수하여 사람을 넘어뜨리며 귀신을 쫓아내며 질병을 고치는 이적을 나타내는 것이 축귀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축귀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였다는 것을 본질적으로 나타내셨다. 십자가는 강한 자의 세간, 집으로 소유된 것에서의 강탈이다. 십자가에서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집, 성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의 힘과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은혜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눈멀어 보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지 못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은 임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2-17)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 하나님 왕국은 언제나 마귀의 세력이 굴복하고 악한 영들이 쫓겨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이 공존할 수 없기에 중간 지대는 없다. 그것을 구원에 대한 표현으로 한다면 더러운 영이 장악하고 있어서 사탄을 아버지로 여기고 사느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에 장악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사느냐 하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진 자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사는 자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0-32절)라고 말씀하신다. “모독”(헬, ‘블라스페미아’)이란 ‘험담, 악담, 중상모략, 조롱’이라는 뜻으로 특히 하나님께 말과 관련된 단어이다.

 

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21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22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0-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주신 말씀으로 사자를 앞서 보내어 약속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 사자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러 안식하게 하시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보내실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데 그를 거역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인물을 거역하는 것을 하나님을 거역하고 노엽게 하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인물의 신분이 특별한데 “내 이름이 그에게 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안식을 주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하신 말씀으로 그분은 곧 하나님께서 인격체로 이 땅에 이름을 가지고 오실 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한 죄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실 목적으로 보내신 사자에 대하여 말씀하신 출애굽기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시되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시는 거룩한 일을 거부하고 모독하는 죄악을 두고서 이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보내실 분을 두고서 그를 거역하여 노엽게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제 앞으로 성령을 보내어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거역하고 모독하는 자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가 가능하나 성령님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을 수가 있으나 십자가를 통해 언약이 완성된 후 모든 비밀이 다 드러나 성령께서 자기 백성을 만들어 가시는 일을 마귀의 일로 돌리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으로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혀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롬 8:9). 그러기에 천국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임하여 더러운 영이 쫓겨난 상태이다. 본래 눈이 멀고 말 하지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근거로 성령님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임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꿔주셨다. 그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다(고전 12:3).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1-16)

 

(2022111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이적30.마1222-29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_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심(2022011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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