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마흔세 번째 강론
로마서 8:29-30
미리 정하신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구원 곧 영생에 관심이 있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라도 영생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다. 사도행전 17:23에 보면 바울 사도가 아덴에서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알지 못하는 신에 불과하다. 그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온갖 정성과 행위를 바쳐서 신으로부터 영생을 얻어내 구원을 이루려고 한다.
성경에 보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물었다. 이 부자 청년의 말을 통해 볼 때 사람들이 영생을 쟁취하는 방법은 오로지 자기가 어떤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원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여기 ‘연구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에류나오’인데 ‘자세히 살피다’, ‘조사하다’라는 뜻인데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을 의미한다. 심지어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일을 통해서도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렇듯 모든 인간들은 자기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죄인들이다. 다시 말해서 죄의 권세에 매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구원이나 영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들은 성경 속에서도 끝없이 자기 구원에 대한 내용을 추출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신학이라는 학문도 말은 ‘신학’(神學)이지만 사실은 ‘인간 구원’이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구원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우리 관점에서 연구하고 정리하여 나열한 것에 불과한 것이 신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신학의 산물이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말씀을 근거로 한 소위 말하는 ‘구원의 서정’이라고 하는 ‘구원의 다섯 단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셔서 미리 정하시고 부르신 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자를 영화롭게 하신다”라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미리 아신다는 것-예지, 미리 정하신 것-예정, 부르심-소명(효과적인 부르심), 의롭다 하심-칭의, 영화롭게 하심-영화”라고 정리하면서 이것을 근거로 소위 ‘구원의 서정’을 “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수양-성화-성도의 견인-영화”라고 정의한다. 이것이 개혁주의의 구원의 서정으로 논리적인 순서이지 시간적인 순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는 그것이 어떤 단계를 거쳐 이렇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신학적인 논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을 것을 알고 예정을 하셨다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다는 예정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중 예정론으로 정리한다. “어떤 사람이 구원 받아 영생에 이르도록 창세 전에 예정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버림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도록 창세 전에 예정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앞의 예정을 ‘무조건적 선택’이라고 하고 뒤의 예정을 ‘유기’라고 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중 예정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일까?
로마서 8장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 몸의 속량, 즉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성령께서 이루시기 때문에 성도는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선언하였었다. 그래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그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결국은 내게 유익되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기 언약을 성취하시는 일을 “선”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성령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29절에서 “(왜냐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였다. 우리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접속사가 있는데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이다. 그러니까 28절이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것인데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고 우리가 장차 하나님과 영원한 영광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셨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일들은 이러한 목적을 향해서 가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기노스코’라는 말인데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서 ‘안다’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말을 배경으로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구약 성경에서 안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호 13:4-6)
이 말씀은 단순히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을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출애굽시켜 광야로 이끌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광야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시고 그들을 말씀으로 보살피셨다는 것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언약을 이루어 가려고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나를 잊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또 아모스 3:2을 보자.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암 3:1-2)
여기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만 알았나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것은 자신의 언약을 보여주기 위한 존재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신명기의 말씀을 보자.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6-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쪽에 무슨 근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자신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고 그 사랑은 언약을 성취하는 것으로 드러내신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 아셨다는 것은 자기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언약의 성취란 바로 십자가이고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 아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본받게 하기 위하여”라는 말은 헬라어로 ‘쉼모르포스’라는 말인데 ‘같은 모양’, ‘같은 형상’라는 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닮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만드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미리 아신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이 된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미리 정하셨으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오리조’라는 말인데 이 말을 보통 ‘예정’으로 이해하고 번역하였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말씀이 에베소서 말씀이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창세 전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볼레’(기초, 시작, 창설)인데 이 말은 ‘아래로 던지다’라는 말 ‘카타발로’에서 유래한 말인데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그 결과를 기대하고 뿌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는 말은 창세 전에 계획을 가지고 그 기쁘신 뜻대로 시작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것은 계획을 가지고 하셨는데 그 계획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 예정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한 것이다. “맏아들”이란 말은 ‘초태생’, ‘대표’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초태생’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맏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30절에서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미래형으로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과거완료형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뜻이다. 묵시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이미 다 완성된 것을 역사 속에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개인의 구원에 대한 순서를 말한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새롭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신 일을 역사 속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를 말씀한 것이다. 그것이 내 안에서는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이 된다. 이런 점에서 창조 세계의 창조에서 종말까지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현장인 것이다.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18-21)
(20200719 강론/김영대).✞
'●──── 신약강론 >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45강 로마서 8:35-39 끊을 수 없는 사랑 (0) | 2020.08.09 |
---|---|
제44강 로마서 8:31-34 아들을 주신 하나님 (0) | 2020.07.26 |
제42강 로마서 8:26-28 성령의 간구 (0) | 2020.07.12 |
제41강 로마서 8:18-25 우리 몸의 속량 (0) | 2020.07.05 |
제40강 로마서 8:12-17 하나님의 아들 (0) | 2020.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