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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50315 기 도 빌4:6~7절

불편한 진리 2015. 3. 27. 20:36

20150315    기 도    빌4:6~7절

 

* 잘못된 오해

신앙은 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곧 ‘기도’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한 신앙 행위로 자리하고 있음과 동시에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사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구하여 얻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는 자기들의 소원을 위한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들의 기도 입니다. 이렇게 보면 믿는 성도라고 해도 이방인이나 전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기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각기 부르는 신의 명칭만 다를 뿐, 신을 부르며 자신의 정성을 보임으로서 신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에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6:7~8절 25, 31~34절에서 너희는 육신적인 문제로 이방인과 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 구할 것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이었던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기도의 의미는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나 역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쓰여지기를 소원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결국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동참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 개인의 뜻을 이루어 소원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되어지기를 구하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뭔가를 받기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 세상과 나를 버리기 위해서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마26:39절에서 하신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그 뜻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정신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의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영광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든지 즐겁게 우리의 뜻을 포기하겠지만, 하나님의 뜻은 결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향하신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의 죽으심이었습니다. 역시 십자가의 피로써 다시 태어난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도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역시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받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뜻에 순종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어렵다기 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 어려운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은혜이기 때문에 성령에 의해서 내 뜻 말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염려 없는 기도

빌4:6~7절에서 사도 바울은 기도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염려없는 기도는 내 육의 욕망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한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인간 스스로는 불가능한 일을 그러나 성령에 붙들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합당한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8: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빌4:6절에서 말하는 자기가 없는 염려 없이 하는 기도입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성도의 참된 기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참된 기도는 성령에 지배를 받는 성령의 사람이 성령에 의해서 기도하게 될 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기도함으로 그 마음은 평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 빌4:6절을 대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시고 평강을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러한 뜻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참된 신앙의 자세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의 삶

기도는 한적한 곳에서 무릎 꿇고 뭔가 소원을 비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기도는 곧 나의 마음과 정신이며 그 정신이 삶을 통해서 드러나고 묻어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가진 그 가치와 정신이 삶을 통해서 내가 바라는 나의 소원과 사명이 뭔가를 보이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곧 나의 뜻이 되어 그 일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거기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아가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서 심판받아 죽으시는 일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우며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자신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 놀라운 것을 보이고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자신의 모든 삶이 이 일에 초점을 맞추어 십자가의 삶을 사셨고,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이 기도하고 바라는 것이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들의 삶이 기도화 되어져야 합니다. 즉 나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모든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생명이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보배임을 보이고 증거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나의 시간, 나의 지식과 재능, 나의 젊음과 재력을 총 동원해서 그리스도만이 가장 귀한 생명의 보화임을 알아야 하고, 사랑해서 사모함으로 보여지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고, 곧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한 기도화 된 삶인 것입니다.

 

* 기도는 소통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원하는 욕망을 따라 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아무리 탄식하며 애써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는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알고 그를 사랑해서 그분을 붙들기 위해서 방해되는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서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요.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뜻이 다른 자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고 이 소통이 참된 기도로 사는 기쁨이고 감사이며, 평안이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아멘.

 

출처 : 이태현목사설교
글쓴이 : 이태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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