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레위기

10.레위기 16:1-34 속죄일

불편한 진리 2015. 1. 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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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1-34

속죄일


1절 이하의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 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위기의 중심은 더러운 피와 거룩한 피의 대조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정하다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은 아론의 두 아들을 죽이심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음을 분명히 하셨다. 그러나 거기에 덮어주는 피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을 710, 일 년 일회로 한정하였다. 이 날이 곧 속죄일이다(29,34).

이 날에는 아론 자신을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으며(3), 백성을 위해서 수 염소 둘을 속죄 제물로 삼고 수양은 번제를 위해 준비하여야 한다(5). 이 때 특이한 것은 두 염소를 취한 것에서 드러나고 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8-10).

아론은 자기를 위한 수송아지의 피와 백성들을 위한 염소의 피를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서 속죄소 동편과 속죄소 앞에 뿌린다. 그리고는 산 염소에 안수하고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의식을 행한다.

여기서 피를 속죄소 동편에 뿌리는 것은 피가 보여주는 희생자가 어디로 오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들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여 쫓겨난 후에 하나님은 에덴의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다. 즉 언젠가는 하나님 쪽에서 그것들을 제거하고 동편으로 길을 여실 것이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광이 오직 성전의 동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10:18,19, 43:4,5). 그러므로 지성소에서 피를 동편에 뿌리는 것은 피의 희생자가 오실 때에만이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 마리의 염소는 산 채로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라고 하신다. 아사셀 염소란 무엇인가?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21,22).

아사셀이란 우리 성경 난하 주()에 보면 내어놓음이라고 되어 있다. 즉 광야에 버림을 당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장막으로 표현하신 것을 생각한다면(15:31) 여기서 아사셀을 위하여 염소를 광야로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주하시는 영역과 반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즉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것은 희생의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사셀 염소에게는 아론이 안수함으로 온 백성들의 죄를 싣고 담은 모습으로 광야에 버려짐을 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에 의해 버려진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아사셀 염소는 마귀의 권세에 사로잡혀서 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장이나 이스라엘은 인간 중에는 거룩이라는 것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드러내고 보여 주는 자여야 한다.

오늘날 성도라면 바로 이러한 비참한 상태의 죄인의 모습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생명의 은혜를 드러내고 공개하는 자여야 한다. 하나님은 이 날을 큰 안식일”(31)이라고 하셨다. 이는 인간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29) 하나님의 일하심에 의해 삶이 유지되는 것을 더욱 분명히 경험하게 됨과 같이 나의 생명이 유지되고 주님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주님께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늘 고백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줄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것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