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레위기

09.레위기 15:1-33 성적인 문제에 대하여

불편한 진리 2015. 1. 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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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5:1-33

성적인 문제에 대하여

 

유출병이란, 남자든 여자든 몸에서 무엇이 흘러나오는 모든 현상을 통틀어 유출병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피일 수도 있고 몸의 다른 액체일 수도 있다. 정상적인 생리 현상일 수도 있고 병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도 하나님 자신과 베푸신 구원(언약)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다.

32절에 이 규례는 유출병이 있는 자와 설정함으로 부정을 입은 자와 불결을 앓는 여인과 유출병이 있는 남녀와 불결한 여인과 동침한 자에게 관한 것이니라고 하신 것을 볼 때에 단순히 유출병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연관해서 주어지는 성적(性的)인 문제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출병으로 말미암은 부정함에 대해서는 본문이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유출병 있는 자의 것이나 그것과 접촉된 모든 것이 다 부정하다고 하셨다. 몸은 물로 씻고, 옷은 빨고, 질그릇은 깨뜨리되 목기는 물로 씻어야 한다(3-12).

그에 따른 속죄의 의식은 유출이 깨끗하게 된 다음에 7일에는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야 된다. 그리고 제 팔일에 비둘기 두 마리를 취하여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 속죄하게 된다(13-15).

부정함과 속죄에 대한 하나님의 취지는 31절에서 밝혀주고 있다.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로 그 가운데 있는 내 장막을 더럽히고 그 부정한 중에서 죽음을 면케 할지니라유출이 있는 동안은 부정하기 때문에 누구도 접촉해서도 안 되고 무엇도 접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다. 즉 유출이 있는 동안은 철저히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처로 삼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통해 하나님이 거처로 삼은 하나님의 영역이란 부정한 인간이 얼씬도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동안 몸을 씻고 옷을 빨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서 7일이란 새로운 창조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날인 여덟째 날을 기다린다. 이 날은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는 날이며, 생명과의 단절에서 받아들여짐이 이루어지는 날이며, 창조의 깨어짐에서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날이다. 7일간 씻으면서 이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부정하기 때문에 그 인간이 피흘리는 것을 비롯하여 인간에서 나오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다. 인간이 흘리는 피나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들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유출병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곧 거기서 나오는 모든 인간적 혈통이 부정하기 때문에 피흘림이 있을 때나 또한 남자의 설정으로 인한 자녀의 생산은 부정함의 반복이며 순환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죄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문둥병에 대한 것이 근본적으로 인간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여기서 유출병에 대한 것은 항상 죄를 반복하고, 부부관계에 대한 문제가 일상적인 삶인 것과 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 안에 늘 죄가 반복되고, 보인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한마디로 유출병이란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항상 죄 속에서 죄를 먹고 마시며 사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속죄의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피흘리는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그 피가 발려진 자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를 깨끗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님을 31절 말씀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31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장막을 더럽히는 문제로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속에 거처를 정하셨기 때문에 부정함을 제거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성이라는 속성 때문에 인간의 부정함을 용납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나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측면에서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거처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의해 자신의 거처를 깨끗하게 하신다.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의 영역 속으로 불러들이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나 거룩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었는데 그야말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 자신의 거처에 포함시키셨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절대적으로 내 중심에서 나의 구원의 당위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3:19).

신자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문제의 근원이 항상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성도는, 인간 본성이 철저히 부패해서 쏟아내는 것이 죄라는 것을, 그래서 도무지 구원할 힘도 구제될 힘도 없는 것이 인간이요 자기 또한 그러한 운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상태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된 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문제의 주체가 항상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불신자들 중에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은 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의 더 나은 자아를 위해 실패를 축적된 힘으로 삼고자 하는 행위에 머물고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가 주님의 뒤편에서 옷가만 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죄인의 모습인 것을 인정한 상태였던 것이다.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을 때에 예수님이 부정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한 여인이 고침을 받고 예수님이 선언하시는 구원 속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의 효과에 대하여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따라서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 거기서 흘리신 피에 접촉되지 않는다면 주님과 상관없는 자이다. 자기를 위해서 살며, 자기 것으로 주님께 헌신하려고 죄인의 것을 떳떳하게 내어놓는 모습이 바로 유출병든 모습이요 바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피를 흘리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교회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