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누가복음

67.누가복음 22:14-23 마지막 유월절 식사

불편한 진리 2015. 1. 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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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14-23 

마지막 유월절 식사

 

유월절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일이 세밀하게 지시하셨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이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십자가를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일 역시 이제까지 말씀하신 대로 또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의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가룟 유다를 통해 예수님을 배반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룟 유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단에 사로 잡혀 있는 모든 죄인들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이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아니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고 계셨다. 본문 14절에 보면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때가 이르렀다고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라는 것은 중요한 때’, “예정된 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 때를 위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셨다. 그것은 이제까지 누차 밝히신 대로 십자가였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준비하셨고 또한 이 십자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5).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이 유월절 식사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보건대 예수님의 고난과 유월절 식사와 연관성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16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8절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고 하셨다.

본문을 우리가 자세히 보면 17절에서 잔을 먼저 주시면서 나누라고 하셨다. 그리고 19절에서 떡을 나누어 주셨으며 또 다시 20절에서 잔을 나누도록 주셨다. 즉 순서적으로 말하자면 의 순서로 진행된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찬식의 순서는 의 순서만 진행된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주어진 잔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유월절 식사의 잔이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식사는 과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도록 애굽에 주어진 마지막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과 연관된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 전체를 휩쓸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그 피를 바르고 유월절 식사를 하되 쓴 나물과 함께 누룩을 넣지 않은 떡(무교병)을 먹도록 지시하셨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애굽의 백성과 마찬가지로 죽어야 마땅할진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은 바로 어린양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했었다. 이스라엘은 대대로 유월절을 지키면서 유월절 식사를 통해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음으로 메시야의 희생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월절의 의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즉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고난과 희생은 유월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성취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기까지 더 이상 유월절 식사의 의미는 반복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유월절 식사의 의미는 필요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처음 주신 포도주 잔은 유월절 식사로써 마지막 잔이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는 유월절 잔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심으로써 더 이상 계속되어야 할 의미가 없어졌다. 그 본질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떡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누시며 떡을 지칭하여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19)고 하셨고 또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0)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한 고난과 죽음을 온전히 이루신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이라는 것이다. 달리 새롭게 세워서 새 언약이 아니라 이전에 주신 언약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에 이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예레미야 31:31-3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언약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전히 이루게 된 것이 새 언약이다. 이제 이 새 언약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주어졌다. 이런 점에서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14)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한 사도들에 의해 교회의 기초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자신이 유월절을 성취하시는 어린양이심을 보여주기를 원하셨기에 이 유월절 식사를 그토록 원하고 원하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해서도 가시사축사하시고떼어주시고라는 표현들은 바로 이 유월절 식사를 예시하신 것이었다(9:16). 주님이 원하신 것은 이런 것이었으나 죄인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는 점이 21절에서 다시 한 번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죄인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을 팔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주님의 몸된 교회라면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기념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기념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해서 일년에 성찬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기념한다는 것을 바울 사도는 주님 오실 때까지 십자가를 전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고전11:24-26). 오늘날 교회는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이 되어야 한다.

2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고 계신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십자가로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시지만 예수님을 원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님의 심판만 있을 뿐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