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누가복음

66.누가복음 22:1-13 유월절 식사 준비

불편한 진리 2015. 1. 7. 16:44

 

66/

누가복음 22:1-13 

유월절 식사 준비

 

예수님을 향한 백성들의 지지가 더해감에 따라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대적자들 역시 그들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음모를 더욱 구체화시킨다.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의 지지는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를 좌절시키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지지하는데 따른 자신들의 기득권에 큰 해를 입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로서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할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더 두려워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문 1절에서는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라고 밝혀주고 있다. 유월절이란 과거 출애굽 할 때에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처음 주어진 절기이다.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을 면했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어린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내신 날이다. 즉 이 날은 생명의 날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날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책을 연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직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상태였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2).

 

그러나 누가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좀더 정확하게 언약의 성취라는 차원에서 나나타내 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유월절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언약을 성취하는 때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위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으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르렀음을 선포하셨다. 그 나라가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대속의 죽음을 계획하셨다. 즉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 길을 아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친히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누가복음을 살펴오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가 어떤지 파악하면서 살펴왔었다. 20:27에서 처음 사두개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을 통해서 누가가 밝혀주고 있는 바를 살펴보았었다. 이때 사두개인이 처음 등장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전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사두개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일에 인간의 모든 조직이 다 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는 표현이다.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심지어 정치적인 세력과도 단결하여 오직 예수님을 몰아내고 죽이고자 하는 것이 세상의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세상의 형편이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사단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이다. 3절에 보면 이렇게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그리고는 4절에서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라고 밝혀주고 있다. 유다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하였는지 이제까지의 상황을 근거해서 말하자면 흔히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하였던 메시야가 아니었다는 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주게 된 동기를 사단이 유다에게 들어갔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단이 그 근본 원인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앞의 본문들을 통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거부하는 무리들을 보아 왔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메시야성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배후 세력에 대해서도 조금씩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사단이 조종하는 유다가 대제사장의 무리들과 결탁함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던 세력이 어두움의 세력, 즉 사단의 세력이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제 메시야로 밝혀진 예수님과 어두움의 존재로 밝혀진 사단이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될 것이다.

 

무엇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는가”(엘리스 리브킨/한국신학연구소)라는 책을 보면 저자가 이제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자가 누구인가라는 측면에서 있어온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새로운 대안이란 누가에서 무엇으로 옮긴 것이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하는 전제를 가지고 연구하였기 때문에 늘 결론은 유대인이라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와 유대교는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원수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저자는 개신교와 유대교를 서로 화해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 바로 무엇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 연구의 결론을 저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근본 원인을 로마 제국으로 돌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요즘말로 편하게 말하자면 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이다.

 

사회가 예수님을 죽였다면 여기에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사회의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가 어떤 점들이 예수님을 죽인 원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이 책의 저자는 예수님을 죽인 원인을 유대인들이 아닌 로마제국, 사회의 제도나 구조적인 틀이라고 정죄함으로 유대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하였다.

결국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이해한다면 모든 문제를 사회나 정부에 돌림으로 인간은 무죄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회적으로 개혁 운동을 하거나 데모를 일으켜서라도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결론 내려진다. 예수님을 죽인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꾸고, 제도를 개혁함으로 주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제도나 조직 이 모든 것들 자체에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제도를 바꾸고, 사회의 구조적인 틀을 바꾼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거나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에서 사단이라고 그 근본 원인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죽인 근본 원인을 가룟 유다에게만 돌릴 수 없고 당시 유대인들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단의 지배를 받는 모든 죄인들이 바로 예수님을 팔고 죽이고자 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본문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5절에 보면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단은 언제나 경제적인 문제로 사람들을 자기 수하에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666이라는 표가 짐승의 표이고 그 표가 없으면 어떤 경제 활동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경제적인 문제로 유혹하겠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시험한 사단의 본색을 그대로 가룟 유다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음을 여기서도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성전 지도자들의 계획은 급물살을 타는 것 같이 보인다.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6).

유다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누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차원에 한층 더 다가서셨음을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7)는 말로 암시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8).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즉 이러하였다.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10-1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일러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13절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구절을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보니,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유월절을 준비하였습니다”(쉬운성경).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모두 성취되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을 이렇게 강조함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이제까지 하신 주님의 말씀이나 또한 앞으로 유월절 식사를 통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려고 가보니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참 맞추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모든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를 통해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본문을 이해하면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어떤 자들이 말하듯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위해 선택되어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유다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에 일조했다는 측면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단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밝혀줌으로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인간은 굳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지 않더라도 범죄를 행하는 것은 본성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유다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성경은 유다를 통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가만히 두시면 저절로 예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지금 가룟 유다의 편이 되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자리에 서지 않는 제자들은 주님의 은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않고 말씀을 좇아 살게 되는 것은 십자가 은혜로 날마다 주님을 배신하고자 하는 우리의 죄성을 죽이시는 성령님의 사역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