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강(2013.2.17)
사무엘하 8:1-18
다윗의 전쟁 승리
사무엘하 8장 본문은 다윗이 전쟁할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기록한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쳐 그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고(1절), 모압을 쳐서 이겼고(2절), 소바의 왕 하닷에셀을 물리쳤고 더불어 소바 왕을 도우려고 온 아람 사람 2만 2천명도 물리쳐 이겼다(3-8절). 또한 아람과 암몬, 아말렉, 에돔을 쳐서 이겼고 에돔을 쳐서 승리한 것 때문에 다윗이 유명해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9-14절).
다윗이 싸워서 이긴 나라들이 결코 약한 나라들이 아니었다. 블레셋, 에돔 이런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강대국들이었다. 이런 강한 나라들이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며 화친을 맺으러 오는 상태가 되었다. 주변의 나라들을 하나하나 제압하며 다윗은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본문을 대할 때에 하나님께서 왜 다윗에게 이렇게 일하고 계신가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신 현상과 결과만 가지고 좋아한다.
우리는 다윗의 이런 업적을 보면서 우리도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께 구한다. 사실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원하고 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매 맞고 고통을 겪는 내용을 볼 때, 사실 그들의 사명감에 대해 감동을 갖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나 자신을 그러한 길로 인도하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본문의 다윗과 같이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하나님께 열망한다. 적어도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왜 왕으로 세우시고 어떤 길로 인도하셨는지 또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일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예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오직 다윗에게 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게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인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 자신을 위한 기복적인 신앙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런 종교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도 우리가 받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고 물 위를 걸으며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이러한 복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시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왜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고 물 위를 걸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는가?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보여 주시기 위한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타난 현상과 결과만 가지고 좋아하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라고 가르치고 또한 그러한 가르침에 미혹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이 기도이다. 자신이 기도하면 이런 기적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분이 이루신 일에 관심 가져야 하고 그분이 하신 일이 어떤 의미로 성경에게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윗에 대한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이 주변의 나라들을 제압하고 승승장구하니까 우리도 이런 복을 받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왜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다윗이 이렇게 주위의 나라들과 싸워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힘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셨다고 밝히고 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6절)는 말씀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14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신 뜻이 무엇인가? 사무엘하 8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고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7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 7장에서 다윗이 자신의 궁은 화려한데 언약궤가 있는 곳은 볼품없는 장막이었기에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선언하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짓는 집을 거부하시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무엘하 8장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조를 든든하게 세우신다는 점을 보여 주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주신 것 때문에 다윗으로 하여금 주변의 나라들을 대항해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들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말씀하고 있다. “10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10-12절).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다. 아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셨기에 승리하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결과였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대로 시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바로 15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은 것이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15절). 즉 하나님의 언약대로 시행되고 있을 때에 다윗이 정의와 공의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에 언제 정의와 공의의 다스림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가? 결코 없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언약을 주신 후 이삭을 바칠 수 있는 자리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끄셨다. 그리고 야곱이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살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무너뜨리시고 얍복나루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허락하셨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야곱이 하나님과 전쟁하여 환도뼈가 부러져 생성된 나라이다. 세상에서 상대를 속여서 무엇을 얻는 존재가 하나님과 상대하여 굴복된 이스라엘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울이라는 왕을 좋아하여 그를 통해 이방 왕들과 같이 주변의 나라들을 제압하여 이스라엘도 잘 살아보자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서 정의와 공의의 다스림이 전혀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을 언약의 왕으로 세워 주변의 나라들을 제압하여 승리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정의와 공의는 이방 나라들을 제압하여 승리할 때에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는 정의와 공의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씀이다. 환언하자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진정한 통치자요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제대로 드러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을 통해 지향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세우시고 결코 망하지 않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무엘하 7장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앞으로 다윗의 왕권을 가지고 오실 메시아를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그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오실 언약의 성취자가 되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게 되면 진정한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질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땅의 어떤 나라에서도 정의와 공의를 이룰 수 없고 정의와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성된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메시아를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언제 이렇게 되는가? 겸손하게 나귀를 타신 메시아가 오시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스가랴 선지자는 선포하였다.
9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 9:9-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이 하나님의 의다.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1-24)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정당하지 못했던 정부가 정의와 공의를 내세웠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어떤 정치가를 통해서도 결코 정의와 공의를 경험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언약을 성취하셨기에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실 수 있는 분이고 성도는 그분 안에서만 정의와 공의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공의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십자가로 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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