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야고보서

03.야고보서 3:1-18 말과 하늘의 지혜

불편한 진리 2014. 8. 28. 22:22

야고보서 3:1-18

말과 하늘의 지혜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선생이란 말을 많이 하는 직분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먼저 선생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도 야고보는 나의 형제들아!”라고 쓰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선생에게는 큰 심판이 있기 때문에 선생이 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생은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말을 많이 하는 만큼 행함이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은 죄인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를 합리화하라는 말이 아니다. 말로써 가르치기보다 오히려 행함으로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온 몸도 굴레 씌운다고 하였다. 이 말은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온 몸을 묶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이 땅에 없다. 교회의 목사들이나 교사들,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들은 진정한 지도자요 선생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자에 불과하다. 말에 실수가 없이 온전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그러기에 예수님만이 진정한 선생이며 지도자이다(23:8-10).

오늘날 교회에서 열심을 내고 봉사를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굴레를 씌워 신학교를 가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해 점검해 보아야 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된다. 소명이란 단순히 신학교를 가는 것만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꼭 신학을 해야만 복음을 가르칠 수 있고 소명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소명이란 부르심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어떤 모습이든지 관계없이 복음을 드러내면서 사는 삶 자체를 의미한다.


3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여기서 야고보는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조절할 수 있는 사례 둘을 말함으로 혀에 의해 온 몸이 더럽게 된다는 것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작은 것을 잘 조절함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자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믿음을 보이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증거 되기 때문이다.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다 죄 아래에서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형제들아”(10) 야고보와 함께 형제 된 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자들이라면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낼 수 없다. 그것은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고,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성도란 죄를 추구하고 죄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사람으로 바뀐 존재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향해 찬송을 할 뿐이다. 단순히 유행가 부르지 않고 찬송 한 장 부른다고 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유행가를 부르든 찬송가를 부르든 복음성가를 부르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죄인 됨을 알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며 그분의 찬송만 부르도록 은혜를 입은 존재라는 것을 늘 인정하는 삶이 중요한 것이다(그러기 때문에 가요를 마음껏 부르자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시리라).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야고보는 단도직입적으로 너희 중에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고 지식 있는 사람인가?’라고 묻는다. 지혜와 지식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스스로 지혜 있는 사람 혹은 지식 있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그들이 지혜와 지식을 뽐내며 스스로 선생인 것처럼 사람들을 가르치고 말을 늘어놓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지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가르치는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지혜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있고 또한 하늘로부터 온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보물이요 곧 재산이다. 그래서 서로 배우려고 하고 많은 돈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많은 지혜를 가지고 쌓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고 속임수이다. 그러기 때문에 시기와 다툼을 유발한다. 이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이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세상적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하여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무수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경은 세상의 지식, 학력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교회에서 통용되어야 하는 지혜는 하늘로부터 온 지혜여야 한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지혜는 성도를 통제함으로 시기와 다툼이 성결과 화평과 양순과 긍휼이라는 의의 열매를 낳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믿음이다. 야고보는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통해 계속해서 올바른 믿음, 참된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