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15. 출애굽기 8:16-19 모기 이적

불편한 진리 2025. 9. 14. 13:05

https://www.youtube.com/live/w3C4Dv-SOsg?si=CWxPWBGKuehrnak8

 

 

 

출애굽기 강론 15강

출애굽기 8:16-19

모기 이적

 

바로 왕은 이적이 있을 때만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차원에서 모세와 아론을 찾아서 하나님께 구하여 재앙이 거두어지기를 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앞에서 밝혀진 대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이 다 드러날 때까지이다. 따라서 모든 이적은 표적으로 언약의 표를 계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열 이적을 통해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결국 이적을 나타내신 목적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 6:7, 7:5, 17, 8:22, 10:2, 14:4, 18)라는 말씀으로 표현되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이라고 우리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와 아론에게는 “명령하기를”이라고 다른 말로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로 보면 동일하게 ‘아마르’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이라는 뜻으로(출 6:13, 7:8, 19, 8:5)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가 짝으로, 모세와 아론이 짝으로 언약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 이적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지팡이”의 ‘맛테’는 지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를 가지고 이적을 행하는 것이 언약 백성들에게는 언약의 표가 된다.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14-17)

 

“티끌”은 ‘아파르’인데 ‘티끌, 흙, 먼지, 땅, 진흙, 반죽’이라는 뜻이다. 애굽은 나일강의 비옥한 토양으로 농사가 잘되는 곳이기에 개구리뿐만 아니라 ‘아파르’ 역시 형통과 번영의 상징이다. 그래서 당시 애굽은 ‘게브’라는 땅의 신을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애굽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시 우상숭배에는 예외일 수 없다. 우상숭배의 목적은 형통과 번영이다. 그러기에 우상숭배에 대한 말씀에서는 언제나 “너를 위하여”(출 20:4), “자기를 위하여”(출 32:8, 레 15:29, 신 5:8, 9:12, 16, 16:22 등) 하는 것이고 그것을 “탐심”이라 한다(골 3:5).

그러니 땅적 존재로 산다는 것 자체가 탐심이다. 자기를 위한 죄인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하신 것 안에 들어가는 것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선언하신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말씀 안에 은혜로 들어가게 된 것이 출애굽이고 구원이다. 그런데 이런 ‘아파르’가 그 정체를 드러내고 보니 사람을 괴롭게 하고 사망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아파르’라는 존재의 본질은 저주 아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켄’(복수형 : ‘킨님’)은 ‘각다귀, 모기, 하루살이’라는 뜻이다. 이외 다른 주장으로는 ‘진드기, 기생충, 벼룩, 해충’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70인역에서는 ‘코놉스’(각다귀, 모기, 하루살이)로 번역하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경은 ‘이’로 번역하였으나 현대어성경과 공동번역, 가톨릭성경에서는 ‘모기’로 번역하였다(같은 단어를 이사야 51:6에서는 “하루살이”, 시편 105:31에서는 “이”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모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넓은 의미에서 ‘하루살이’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이’로 이해하든 ‘모기’로 이해하든 오늘날 어떤 것으로 이해하느냐 하는 것보다 표적으로써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3-24)

 

구약에서 토지 소산의 십일조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들고 있는데 이 품목에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작은 것들까지도 십일조를 하였기에 예수님께서 과도하게 집착하는 율법의 행위를 폭로하신 것이다. “율법의 더 중한 바”라는 말씀은 율법에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한 바”의 ‘바뤼스’는 ‘무거운’이라는 뜻으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의미한다(마 23:4). 즉 십일조로 인하여 율법의 무거운 짐으로 고통 중에서 율법이 본질적으로 가리키는 ‘그 의와 그 긍휼과 그 믿음’은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의와 그 긍휼과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율법에 의하면 낙타도 부정하고(레 11:4), 하루살이도 부정하다(레 11:21-24). 작은 것은 걸러내고 큰 것은 삼켰지만 둘 다 부정한 것이다. 사소한 것까지도 율법을 문자로 행하면 그것이 부정한 것이다. 결국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켰다고 말씀하심으로 백성들을 율법의 무거운 짐이라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마찬가지로 애굽 왕 바로도 백성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웠지만 그것 자체가 부정한 것이고 그것이 고통이 되는 것임을 모세와 아론이 행한 이적을 통해 고발하신 것이다.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17절). “행할새”의 ‘아사’는 ‘만들다, 행하다, 일하다, 이루다’라는 뜻으로 창세기 1:7에 처음 나오는데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히 ‘아사’)”라고 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나타내는 그 단어이다. 그러니까 모세와 아론의 이적은 하나님의 창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이다. “티끌을 치매”는 ‘나카’로 티끌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사람”은 ‘아담’이라고 표현하여 흙에서 나온 존재임을 강조한다. “가축”의 ‘베헤마’는 ‘(네발 가진) 짐승’으로 티끌이 사람과 가축에 올라 심판 아래 있는 티끌의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짐승, 즉 땅적 존재라고 드러내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하나님께서 땅의 티끌로 사람을 만드셨으나 그 상태는 하나님과 관계 안에 있을 때이다.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이 “생령이 되니라”라는 말씀인데 첫째 아담은 살려주는 영을 증거하기 위해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흙에 속한 자를 통해 하늘에 속한 자를 계시하시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선악의 나무를 취하여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것이니라”의 ‘슈브’는 ‘회복시킨다, 새롭게 살려 내다, 구원하다’라는 뜻이다. 첫째 아담이 흙에 속하였다는 것은 육에 속한 자로 육의 사람이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 아담은 육의 사람으로 지음을 받아야 했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첫째 아담 안에서 죽고 둘째 아담 안에서 살려 내시고자 하신 것이다.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5-49

 

땅의 티끌로 사람(아담)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티끌로 모기를 만드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창조 때 언약하신 그 목적, 곧 흙, 티끌에서 창조한 육이요 죽은 존재를 통해 신령한 자, 하늘에 속한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 아론이 지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땅의 티끌을 심판하여 네발 가진 땅적 짐승이라고 고발하며 동시에 티끌로 모기를 만들어 사람이 모기이고 사람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이다. 즉 거짓 교사들이 모기처럼 달라붙어 구원의 길을 막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를 위한 것으로 활용할 뿐이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도 형통과 번영, 복을 준다는 무당과 같은 목사들에게 피를 빨도록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자기를 위한 구원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18절).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행하려고 하였지만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여기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요술사들이 제대로 된 이적을 나타내려면 모기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여기서도 모기를 더 생기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자기 요술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단순한 이적의 재생산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서 거짓 교사들은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 사람의 계명과 교훈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과 공부의 한계이다. 언약의 말씀은 지식과 공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19절).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손가락이다’라는 말이다. 요술사들은 더 이상 이적을 재생산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굴복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게 되는 일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출 9:11). 그러므로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 믿음은 아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오늘날도 창조과학이나 신기한 이적들과 여러 가지 이론과 증명을 통해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들고자 하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소유와 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술사들이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인정하였을지라도 바로는 계속 완악한 마음을 유지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라고 선언한다. 이 또한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들리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열 이적을 통해 이스라엘과 애굽의 죄악이 완전히 폭로될 뿐만 아니라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히 계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바로는 바로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열 이적이 피의 이적으로 시작하여 어린 양의 피로 마무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이 언약의 성취라는 의미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왕국이 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손가락이 온전히 드러난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2025091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15.0816-19 모기 이적(20250914).pdf
0.1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