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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66
창세기 24:52-67
이삭의 결혼(4)
25:20에 보면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라고 말씀한다. 아브라함이 나이 마흔이나 된 아들 이삭을 결혼시키고자 하는 일에 이삭의 결정권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이 결혼은 결코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약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아들 이삭이 아내와 하나 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가 하나 되는 것에 대한 계시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면서 외모나 건강, 학벌, 성격 등 외부적 환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이삭의 결혼은 아브라함 집안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실현으로 언약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으로 원수를 정복하는 일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이는 결혼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전쟁의 차원에서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52-54절). “은”의 히브리어 ‘케세프’는 ‘은, 돈, 값, 속전’이라는 뜻으로(민 3:49)이다. “금”이란 ‘자하브’는 2:11에서 에덴동산의 네 강을 말씀하면서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라고 하였을 때 언급된다. 에덴동산의 회복을 의미한다. “패물”의 ‘케리’는 ‘물품, 용기, 기구’라는 뜻이다. 곧 ‘은 패물, 금 패물’이라는 표현으로 은과 금은 후에 성막의 기구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출 25:3, 25:10-40).
“의복”은 ‘베게드’인데 ‘덮는 것, 옷’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옷이란 입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덮는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모든 것이 결혼이 성립되었다는 공식적인 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결혼 예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언약의 말씀에 의해 준비된 좋은 것으로 전해준다는 의미이다. 이는 에덴동산, 곧 성막에 채워지는 기구들을 전해줌으로 성막(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재료들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대로 주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막(히, ‘오헬’)으로 들이고”(67절)라는 표현을 통해 성막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집이 되는 의미로 나타내고 있다.
7 그 성막을 덮는 막(오헬) 곧 휘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한 폭을 만들지며 … 14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윗덮개를 만들지니라(출 26:7, 14)
그리고 종은 리브가의 어머니에게와 오라버니 라반에게도 “보물”을 주었는데 ‘미그다나’는 ‘우수한 것, 가장 귀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리브가의 식구들에게 끝까지 진리를 전해주고 떠나려는 것이다.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라반과 리브가의 어머니는 좀 더 머물러 있기를 원하였다.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55-58절). “며칠 또는 열흘”이라도 더 머물러 있기를 제시하지만 종은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라반과 어머니는 며칠, 열흘이라는 제안으로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 땅에서 더 살고 싶어 하는 죄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종은 “여호와께서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루진 일이기에 그 언약에 합당한 일은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리브가는 단호하게 “가겠나이다!”라고 선언한다. 히브리어 ‘얄라크’는 ‘가다, 오다’라는 뜻인데 12:1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하였을 때 “가라!”라는 명령형으로 표현된 이 단어가 ‘얄라크’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약속의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태, 그 언약의 말씀에 리브가는 동의하는 선언을 한 것이다.
라반과 어머니가 ‘열’이라는 율법을 제시하면서 더 붙잡아 두기를 원하지만 리브가는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율법으로 보고 하나님의 언약을 인정하며 그 말씀에 자신을 맡긴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야 했던 그 결단이 리브가에게 나온 것이다. 리브가가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끌고 계셨다는 뜻이다.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59-60절).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사실 “어머니”라는 말은 없다. 직역하면 ‘너는 천만이 되어 기업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천만”이라는 수는 세상의 수가 아니다. ‘천’과 ‘만’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언약의 완전성을 상속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가는 리브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라고 하나님의 언약 방식으로 축복한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모리아 산의 계시를 통해 이삭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여 “천만”의 “복”을 상속받는 언약은 리브가와 하나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22:17에서는 “대적”을 ‘원수가 되다’라는 뜻의 ‘아야브’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여기서는 “원수”를 ‘미워하다, 증오하다’라는 뜻의 ‘사네’라는 단어를 썼다. 이 두 단어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서 “원수”라는 말의 ‘에바’는 ‘아야브’에서 온 말이다.
아무튼 원수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원수의 성을 얻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문 안과 밖을 갈라놓는 것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씨”(후손/ 히, ‘제라’)가 얻게 되는 복이다. 다시 말해서 씨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의 복은 아담 언약에서 말씀한 여자의 후손이 원수의 머리를 밟아 승리함으로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언약의 후손을 주시고자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위해 행하신 일이다.
라반이 이런 언약적 의미를 알고 말하였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일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철저히 이루고 계셨기 때문에 언약적 의미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라반을 사용하고 계셨던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리브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서 얼굴도 보지 못한 이삭과의 결혼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약을 위해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선택하신 일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선택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과의 분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브가가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버리게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말한 언약의 고향, 족속, 아버지 집(4, 38, 40절)에 합류되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브라함, 이삭, 아브라함의 늙은 종, 브두엘과 라반, 리브가까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완벽한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끌려 성취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것이 언약의 성격이다. 결국 우리가 내가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벽하게 드러났다(엡 2:14-18, 골 1:20-22).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61-63절). “브엘라해로이”는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진리의 말씀을 보여주셨던 곳이다. “네게브”는 ‘마른 땅’이라는 뜻이다. 즉 이삭은 진리의 말씀을 보여주시는 곳을 떠나 마른 땅에 있었다는 것은 리브가를 맞을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마른 땅과 같은 이 땅에서 언약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불러 하나 되는 은혜를 베푸실 것을 계시한 말씀이다. 그래서 “낙타들이 오는지라”라는 표현을 히브리어 ‘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아담이 동물들과 하나 될 수 없고 여자와 하나 되는 것을 계시한 아담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 2:19-22)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64-65절). “배회하다가”라는 말은 ‘맞으러 오는’이라는 뜻이다.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라고 말씀은 리브가의 머리는 이삭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24장 본문의 시작에서 주인은 아브라함이었지만 이제 이삭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신랑을 만난 신부에게 자기 머리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교회는 언약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시기에 더 이상 자기 머리가 없는 존재이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66-67절). “종이 행한 일”이란 히브리어로 ‘다바르’인데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라는 말은 언약의 아들 이삭과 하나되는 성전을 의미한다. “위로”란 ‘나함’인데 ‘평안, 안식, 위로’라는 뜻이다(시 23:4). 하나님께서 언약 안에서 주시는 평안, 안식을 얻었다는 의미이다(202401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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