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창세기(오후강론)

68. 창세기 25:12-18 이스마엘의 족보 -일곱 번째 톨레도트

불편한 진리 2024. 2. 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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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68

 

창세기 25:12-18

이스마엘의 족보

- 일곱 번째 톨레도트 -

 

일곱 번째 톨레도트로 ‘이스마엘의 톨레도트’이다. 창세기의 기록 형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부터 먼저 간략하게 언급한 후 언약을 위해 중요한 부분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언약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을 먼저 소개한 후에 19절 이하에서 언약의 상속자인 ‘이삭의 톨레도트’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언급한다.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질 메시아의 길이 완성될 때 구원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야 할 자들이기에 성경은 이들에 대한 관심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의 중심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언약의 완성자에게 있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죽음에서 계시 된 말씀의 배경 하에서 이스마엘의 톨레도트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으며 그다음에 소개하는 이삭의 톨레도트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스마엘의 족보와 어떻게 대조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12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15:4)라는 언약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요청에 따라 애굽에서 얻은 여종 하갈을 통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다(16:3-4). 그리고 이스마엘은 13세에 할례를 받았다(창 17:25).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던 것은 육체로 낳은 아들을 통해 언약의 아들인 이삭에게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육체에 있는 자는 언약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을 보여 주신 말씀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자기 언약을 보여 주시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삭은 약속의 아들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지만 이스마엘은 할례라는 언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언약과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 이삭을 대적하는 나쁜 존재로 말하면서 우리 신앙에 굳이 필요하지 않는 이스마엘과 같은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고 설교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나온 해석이라 할 수 있다.

하갈이 임신한 것을 알고 사라를 멸시하자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은 도망하였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돌아가 사라에게 복종하라고 하면서 하갈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다.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창 16:10-12)

 

“이스마엘”(히, ‘이쉬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한 것은 율법적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려는 시도였다. 이런 점에서 하갈은 율법의 종이 된 여자였다. 하나님은 율법의 고통 속에 있는 자로 하여금 부르짖게 하셔서 율법에 갇힌 자를 불러내어 자유하는 자로 만드시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갈은 자유하는 여자 곧 사라에게 가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하나님께서 들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언약의 실체를 계시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났을 때도 다시 또 언약을 주신다.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창 21:17-18)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것이 비유이고 두 언약이라고 하였다(갈 4:24). 하나님은 언약의 아들 이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면 그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은 이스마엘의 후손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12:2)라고 하였을 때 “민족”(히, ‘고이’)은 단순히 한 혈통의 민족이나 나라가 아닌 여러 민족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나라는 개념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 아브라함의 죽음이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7-8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나이가 높고”라는 말에서 “나이”는 ‘셰바’로 ‘백발의 머리, 노령’이라는 뜻이고 “높고”라는 말은 ‘좋은, 선한, 즐거운’이라는 뜻의 ‘토브’를 쓰고 있다. 즉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말이 아니라 백발의 상태가 되었다는 것인데 잠언에 보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라고 한 말씀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완전한 의가 주어졌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선한 상태가 되었다고 ‘토브’를 쓰고 있는 것이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는 표현 역시 히브리어로 보면 ‘암’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백성, 민족’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의가 주어져 선의 상태가 되었음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아버지의 집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에는 ‘아버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9절에서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9절)라는 표현은 단순히 이삭과 이스마엘이 같이 협력하여 아브라함의 장례를 잘 치렀다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 언약의 아들 이삭과 비록 지금 언약의 아들이 아니지만 언젠가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분이 이 땅에 오시면 그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될 자로 표현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이 장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죽음에 동참 되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성취자이신 메시아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 안에 이삭과 이스마엘을 불러들이시는 언약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런 의미를 담고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고, 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아브라함의 품, 곧 아버지의 집에 들어갔다고 표현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2)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톨레도트’는 아들 낳는 역사를 통해 언약의 진짜 아들을 보여 주기 위한 언약이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존재하여 겉 사람, 육의 사람이 언약의 실체 안에서 어떻게 속 사람, 영의 사람으로 부름받아 아버지의 집이 되는가를 보여 주는 언약이다.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13-16절).

“느바욧”(히, ‘네바요트’)은 ‘열매가 풍성함’이라는 뜻으로 ‘누브’(싹트다, 번성하다)에서 온 말이다. 율법의 문자에 의한 인간의 행위가 풍성한 열매를 맺고 번성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느바욧의 모습은 언약의 아들인 이삭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것을 보여준다.

“게달”(히, ‘케다르’)은 ‘거무스레 한’이라는 뜻으로 ‘카다르’(흙빛이 되다, 어두운 색깔이 되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스마엘이 활 쏘는 자가 되었듯이(21:20) 게달은 활을 잘 사용하는 족속으로 묘사 되고(사 21:17), 장막을 견고하게 잘 짓는 자들이었다(시 120:5, 렘 49:29). 장막(집)이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땅의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거기에 하나님의 집이 세워져야 한다. “앗브엘”(히, ‘아드베엘’)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이라는 뜻이다.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히 12:8).

“밉삼”(히, ‘미브삼’)은 ‘향기로운’이라는 뜻이다. 6절에서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라고 하였을 때 “재산”은 ‘제물, 선물’이라는 뜻이었다. 그 제물을 통해 하늘의 은혜가 선물로 주어져야 하듯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져야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미스마”(히, ‘미쉬바’)는 ‘샤마’에서 유래한 단어로 ‘들음, 경청’이라는 뜻이다.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이다.

“두마”는 ‘침묵’을 의미한다. 즉 말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말하지 못하는 자를 고치심으로 죄의 권세에 매인 인간들은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셨다. 그러면서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심으로 비진리에 사로잡힌 자를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로잡는 은혜를 나타내 보이셨다. 사가랴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은혜 안에서만 진리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눅 1:20).

“맛사”는 ‘무거운, 짐, 공물, 운반’이라는 뜻을 지닌다. 인간에게 무거운 짐은 율법의 짐이다(마 23“:4). 그것이 우리의 죄악상이다(시 38:4).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해결되는 것이다. “하닷”(히, ‘하다드’)은 ‘날카롭다, 엄하다, 사납다’라는 뜻이다. 율법으로 사는 것은 사람을 날카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죄의 권세에 매인 자들의 행함이다. 그러나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롬 13:10).

“데마”란 ‘오른손을 사용하다’라는 뜻이다. 자신이 힘을 자랑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힘을 꺾고 언약의 은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여둘”(히, ‘예투르’)은 ‘둘러싸인’이라는 뜻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죄의 권세에 매여 속박된 모습을 보여 준다. “나비스”(히, ‘나파쉬’)는 ‘호흡하다’라는 뜻이다. 육의 상태에서의 호흡은 죽은 것이다. 그러기에 거기서 벗어나야 함을 보여 준다. “게드마”(히, ‘케데마’)는 ‘앞서다, 내밀다, 예측하다, 재촉하다, 만나다’라는 뜻이다.

이 모든 이름들을 다 분석하고 이해하여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들 속에는 육의 상태에서 벗어나 언약의 아들 안으로 합류되어야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의해 후에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열두 지파가 된 것에 비견되는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라는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이삭의 맞은 편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 주는 후손으로 이어갈 것이다.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17-18절). 이스마엘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16:12)라는 언약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아니 그렇게 살아내는 삶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스마엘의 톨레도트를 소개한 것이다.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4-16)

 

(2024022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창68.2512-18 이스마엘의 족보-일곱 번째 톨레도트(2024022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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