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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63
창세기 24:1-20
이삭의 결혼(1)
성경의 장절 구분을 하게 된 것은 13세기쯤이었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찬반양론이 있다. 장과 절의 구분으로 인해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문맥의 흐름을 끊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창세기 24장은 이삭의 결혼이라는 주제 때문에 좀 길지만 한 장으로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삭의 결혼에 대한 본문을 왜 이렇게 자세하게 길게 기록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굳이 이렇게 긴 본문으로 기록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또한 이 본문을 통해 흔히 불신자와 결혼을 금해야 하는 근거로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과연 우리에게 결혼에 대한 성경적 지침을 제공하기 위하여 기록일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긴 본문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이 인간의 대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과 사라에서 이삭과 리브가에게 언약이 이어지는 것을 성경은 중요한 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우리의 결혼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드러내고 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1절).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라는 표현은 아브라함이 무엇이든지 잘되도록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언약 안에 있는 상태를 표현한 말씀이다. 늙은 나이가 되도록까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으로 이끌어 오셨고 이제 그 언약의 복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늙었고”(히, ‘자켄’)라는 표현은 단순히 육신의 상태가 아니라 비록 육은 늙었지만 믿음 없음의 옛사람이 언약의 사람, 곧 새사람이 되었다는 선언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2절).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라고 하였는데 ‘엘리에셀’로 추정된다. 이삭을 낳기 전에 상속자로 삼으려고 할 만큼 신뢰하는 종이었기 때문이다(15:2). 그런데 왜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종”으로만 언급하였을까? 히브리어로 ‘에베드’인데 ‘일하다, 섬기다’라는 뜻의 ‘아바드’에서 온 말이다. 2:5에서 “땅을 갈 사람이 없었으므로”라고 하였을 때 “갈”(개역한글판 : “경작”)이라는 말이 ‘아바드’로 땅을 섬길 사람이 있어야 함을 나타내었다. 이런 점에서 “종”이란 표현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종이었다는 말이라기보다 이삭의 결혼을 위해 ‘섬기는 존재’로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 역시 “늙은 종”(히, ‘자켄’)이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과 같이 육이 낡아 아브라함과 함께 언약 안에서 섬기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종에게 아브라함은 “내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라고 하였다. “허벅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야레크’는 ‘허리, 몸, 생식기’라는 뜻이다. 같은 단어를 46:26에서는 “몸에서”라고 하였고, 출애굽기 1:5에서는 “허리에서”라고 번역하였다. 즉 언약의 후손에 대한 출처를 표현한 것이다. “밑에”라고 번역한 ‘타하트’는 ‘~아래에, ~대신에, ~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허벅지 밑에”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후손을 위하여 종이 언약(맹세)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9절)라고 말씀한다. “맹세”라는 말의 ‘샤바’는 ‘완전하다, 일곱 번 말하다’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이 섬기는 자에 의해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3-4절).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라고 하였고 7절에서도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시어 궁창을 하늘이라고 칭하시고(1:6-8) 아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드러난 뭍을 땅이라고 하신 말씀(1:9-10)을 배경으로 하늘과 땅의 주인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여기서 왜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결혼할 자(리브가)의 관계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언약의 재현임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라고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땅의 족속 중에서 택하지 않고 “내 고향 내 족속”에서 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이방인이라든지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은 드라빔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집이었기 때문이다(31:25-35). 아브라함은 자기의 친족이 신앙적으로 우월하였기 때문에 친족에게서 이삭의 아내를 택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과 같이 강을 건너오는 결단의 과정을 통해 언약 안에서 동질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이다. 즉 “내 고향 내 족속”이란 같은 아담 언약 안에서 후손이 이어지는 존재임을 표현한 말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그러기 때문에 이삭이 그 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이 강을 건너 언약의 땅으로 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5-6절).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7-8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라고 하신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늙은 종보다 앞서 가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10-14절). 종은 자기 방식대로 응답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차원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자를 먼저 보내어 일하신다는 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종은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갔다. “열”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의 열 말씀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낙타”라는 말의 히브리어 ‘가말’(H1581)은 ‘나누어 주다, 행하다, 젖을 떼다, 후대하다, 익다’라는 말의 ‘가말’(H1580)에서 온 말이다. 이런 점에서 리브가가 낙타에게 물을 먹이는 것으로 말씀과 연관하여 제시된다. 다시 말해서 늙은 종은 섬기는 자로서 낙타, 즉 나누어 주는 자로 나홀의 성에 간 것이었고 그것에 말씀으로 응답한 자가 리브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20절)라고 말씀한다.
이런 점에서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라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아름다운 처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남자의 의미를 지닌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한 존재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아브라함 언약 안에서 다시 보여주시는 내용이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 2:22-23)
그러기에 리브가의 가족들은 종에게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55절)라고 말하지만 리브가는 거부하고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56절)라고 말한다. 이때 “열흘”을 거부한다는 것은 “열”을 지킬 수 없는 율법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열, 10으로 언약을 말씀하시지만 죄인들은 지켜야 하는 계명으로 받는다. 리브가가 낙타 열에 대하여 물을 먹여 말씀으로 반응한 것처럼 “열”을 자신이 지켜야 하는 문자적인 율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 24장 전체에서 “낙타”라는 표현이 10, 11, 14, 19, 20, 22, 30, 31, 32, 35, 44, 61, 63, 64절에서 언급되고, “물, 물동이, 우물”이라는 표현이 11, 13, 14, 15, 16, 17, 18, 19, 20, 29, 30, 42, 43, 45, 46절에서 반복하여 강조된다. 그래서 “종”이 주어로 제시되면서 2, 5, 9, 10, 14, 17, 34, 35, 52, 54, 59, 61, 65, 66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하며, “주인”(히, ‘아돈’)이라는 표현이 5, 9, 10, 12, 14, 27, 35, 36, 37, 39, 40, 42, 44, 48, 49, 51, 54, 56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한 대로 철저히 주인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주인의 언약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모습을, 종은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섬기는 자로 성령을, 이삭은 언약의 아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리브가는 언약 안에서 이삭과 하나 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기 때문에 24장 처음에는 “종”의 “주인”이 “아브라함”이었으나 리브가를 데리고 오는 순간부터는 아브라함은 언급되지 않고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64-65절)라고 이삭을 주인으로 표현하면서 24장은 마무리되고 이후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1-33)
결국 아브라함 언약 안에서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으로 아담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 백성들이 신부된 교회로 성취되는 언약이다(2023122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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