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마태복음

07. 마태복음 3:13-17 그리스도로서의 세례

불편한 진리 2023. 12. 1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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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07

마태복음 3:13-17

그리스도로서의 세례

 

예수께서 물세례를 받으신 것으로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신앙의 과정 중에서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세례로 가르친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에는 예수 믿는다는 것과 함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물세례라는 의식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형식에 치우친 결과이다. 형식적인 것, 외형적인 것을 무조건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회개나 세례라는 어떤 형식을 거치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의미를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 어떤 의미인가? 네 권의 복음서가 다 예수님의 세례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마가복음 1:9-11과 누가복음 3:21-22에 기록되었고, 내용과 형식은 조금 다르지만 요한복음 1:29-34에서도 볼 수 있다.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었다는 것은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13절).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라고 하였는데 마가는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막 1:9)라고 구체적으로 밝힘으로 2:23에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라고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신 것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 있음을 나타내었다.

“이 때에”라는 표현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라고 선포할 그때 오셨다는 뜻이다. 즉 요한의 선포 자체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이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밝힌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 1:31)

 

세례를 받으시려고 오신 예수님께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4절)라고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의 답변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절)라는 말씀이다. 그러자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15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 우선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마가복음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 10:38-40)

 

예수님께서 “내가 마시는 잔”, “내가 받는 세례”를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였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사가 있다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을 “잔”으로 죽음을 “세례”로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본질적인 뜻을 모르고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통해 주어질 구원의 은혜는 자기 백성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요한의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란 세례의 본질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 본질은 물세례를 받아 불세례를 주시는 분이 되시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의에 대한 모든 말씀을 성취하심이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나타내신 의에 대한 모든 것이 자신의 십자가 죽음 안에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것은 십자가 죽음을 이루시겠다는 선언을 하신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 하나는 옛 죄를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시대로 들어가는 점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이다(막 1:4, 요 3:3, 행 13:24, 19:4). 그러나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다른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자신이 유대인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 주며 또한 사람들이 죄사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죄 없는 분이 죄인의 자리에 들어오신 일이었다.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죄인의 자리에 들어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밝혔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세례에 이어서 기록된 4:1-11의 사건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마태는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참 이스라엘로서 물세례를 받으신 사건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사건 가운데 예시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6-2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6절). “열리고”라는 말씀을 마태와 누가는 ‘아노이고’(‘열다, 장애물을 제거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마가는 ‘스키조’(‘찢다, 분리하다, 쪼개다’)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이사야 64:1에 보면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라고 말씀하였는데 “가르고”의 히브리어 ‘카라’가 직역하면 ‘찢고’ 강림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 성경에는 “하늘”이라고 하였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하늘들’이다. 하나님께서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창 1:8)라고 하신 ‘그 하늘들’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늘을 찢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오셨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마태는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성경 곳곳에는 하늘을 휘장으로 말씀한다(사 40:22, 시 104:2). 그렇다면 하늘이 찢어진다는 것은 휘장이 찢어지는 것이고 그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0-51)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결국 “하늘이 열리고”라는 말씀은 단순히 하늘이 열렸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하늘 위의 물, 즉 하늘의 진리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이 이것이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7절)라고 선언한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함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줄 분이라고 하는 것이 증거되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말씀이 주어졌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운명으로 십자가를 향해서 가는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었다. 드디어 여인의 후손이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할 일(창 3:15)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헌신을 표시하고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성부 하나님은 그 사역을 기뻐하셨고 영광을 받으셨으며, 성령은 비둘기같이 임하심으로 주님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됨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생애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령께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흔히 잊어버리기 쉬운 일이다. 이는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해 주는데,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 임함을 보여 준다.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의미 속에는 세례를 받는 자의 죄가 정결하게 될 것임을 상징하고 있으니 이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임을 예시해 주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직분을 시작하는 기름 붓는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세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으신 것은 그리스도로서 기름 부음 받으심으로 왕의 대관식과 같은 것이다.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사역을 시작하신 사건이다. 그러기에 당시 세례를 받는 자들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성령이 임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십자가를 지실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온전히 이루셨다(요 19:30).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 말씀은 흔히 이해하듯이 세례의 의식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죽음 안에 있도록 복음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것은 교회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가셨던 그 십자가의 길을 시종일관 가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라고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있지는 않는가?(20231213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마07.0313-17 그리스도로서의 세례(2023121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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