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십계명(열 말씀) & 언약

성경, 언약으로 보기 11_사도행전 3:18-26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불편한 진리 2023. 5. 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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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언약으로 보기 11

사도행전 3:18-26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성경, 언약으로 보기’는 성경을 하나님의 언약 관점에서 보고자 강론한 것이다. 성경은 나의 구원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언약으로 말씀하신 기록이다. 그렇다면 ‘나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물음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기 구원에만 관심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교회로 나왔기에 ‘예정과 선택’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구원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예정과 선택을 하나님의 언약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흔히 숙명론이나 운명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예정되었다는 이해는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기 전에 예정의 문제와 항상 함께 거론되는 ‘자유의지’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유의지’라는 말 자체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철학적인 용어이다. 이제까지 기독교가 그러한 용어를 써 왔기 때문에 편의상 자유의지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유의지는 죄를 짓는 쪽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한다(롬 3:10, 23). 선악의 나무를 취하기 전이나 후나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죄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가 긍휼에 의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롬 11:32, 갈 3:22-23). 그러므로 죄인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고 또한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그분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하는 상태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온전한 상태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구약 성경을 들어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인간은 그의 만드신 바 질그릇이라고 하였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롬 9:20-24/ 참고 렘 18:1 이하, 사 29:16, 41:25 등).

 

진노의 그릇이 되든지 긍휼의 그릇이 되든지 그것은 그릇을 만드신 하나님의 권한이다. 창조하신 분에 대한 불만이 있고 반항적 질문이 나오는 것은 죄 때문이다. 그러한 질문을 하기에 죄인이라는 말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 누구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 즉 죄인은 아무도 하나님과 만날 수 없고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는 상태에 있다. 오직 하나님 편에서 넣어주시는 자만 들어갈 수 있다(마 19:26, 눅 18:27).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고 천국에 넣어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이다. 구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언약을 주셨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18-19절)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선택하신 것은 아벨의 제사 안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은 곧 “아벨과 그의 제물”이었다(창 4:4). 가인의 죄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 결과가 아벨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으며(창 18:19) 또한 다윗을 선택하셨다(삼상 20:30, 시 89:3). 그 선택은 하나님의 종을 지향하는 선택이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이런 점에서 베드로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20-21절)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은 이 땅에 오시기까지 하늘에 감추어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 언약이다. 그 언약을 하나님은 수없이 나타내셨다. 선지자들의 역할이 영원 전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마 13:34-35).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에 실패하였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신 7:7, 14:2, 사 44:1, 45:4)은 이 땅에 어떤 자도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한 자는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실패하였는가? 이스라엘은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실패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으로 그 후손을 통해 이 땅에 진짜 이스라엘, 하나님의 종이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22-26절)라고 말씀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우리의 죄를 공박하면서 주어진다.

하나님의 선택은 언약을 위한 선택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언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죄는 철저히 폭로되어야 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드러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다. 하나님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런 점에서 언약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 왕국이 이 땅에 임하였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이란 죽었던 피조 세계를 생명이신 하나님 안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 세계를 위해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에 만족하는 차원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선택되었느냐 하는 것이 전제 되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언약을 위해 선택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다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를 추구하는 은혜의 풍성함 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진리의 성령께서 그렇게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요 16:13). 이것을 다른 말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한다(눅 9:23, 마 16:2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예정”(헬, ‘프로오리조’)이란 미리 정하였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정하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은 만물의 회복이라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하겠다고 창세 전에 언약으로 예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개인의 구원을 합리화하거나 집중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예정이라는 개념을 끌고 들어와서는 안 되고 위의 머리로 하나 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통일된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기 위해 자기 백성들의 참여를 예정하신 것이라는 차원에서 쓸 수 있는 말이다. 예정의 관심사는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그 몸이다. 종말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언약을 계획하셨다는 것을 예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0-1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셨다는 것은 사랑하셨고 선택하셨다는 뜻이다(호 13:4-6, 암 3:1-2). 하나님의 사랑이 야곱 안에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에 두신 사랑이 누구를 향해 있는가를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롬 8:29-30).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선언하실 때였다(마 3:16-17).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롬 5:8).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야곱에 대한 사랑을 말하면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롬 9:14). 그래서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롬 9:15)시는 분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시기 위해 애굽의 바로도 선택하시는 분이다(롬 9:17-18).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었고 그 사랑은 그의 몸 된 교회로 드러났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하나님은 우리 각 개인을 예정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성교회와 같은 이런 교회를 예정하시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도 요한 사도가 말한 “우리”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믿어진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그분만을 향해 사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선택의 방향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구원론이라는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계시적 관점에서 언약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대속의 죽음이라는 십자가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것이 계시의 절정이요 언약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 17:3). 물론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인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다(참고 요 17:21-26).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만 구원하신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하신다. 언약의 종결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십자가에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는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교회)으로 있느냐 하는 것을 말씀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아니 성령께서 날마다 그렇게 확인시키실 것이다(2023052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성경,언약으로 보기11_행0318-26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2023052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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