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십계명(열 말씀) & 언약

언약의 열 말씀 강론 02_출애굽기 34:27-28 언약의 말씀

불편한 진리 2023. 5. 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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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열 말씀 강론 02

출애굽기 34:27-28

언약의 말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율법을 교인들이 여전히 지켜야 할 계명으로 본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지만 아직 우리에게 남겨진 율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찬송가 뒤에 10개의 계명으로 붙여놓고 우리가 완벽하게 다 지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지키고 또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말하는 613가지의 계명들과 그에 부수적인 수천 가지의 계명이 있는데 우리가 어디까지 완성된 것으로 보고 나머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율법을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구분한다. 도덕법으로 대표되는 것이 십계명인데 십계명의 핵심 요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의식법은 종교적인 의식이나 그 예법으로 할례, 제사제도, 음식에 대한 규례, 절기, 월삭 등과 같은 것이며, 시민법은 재산분배, 범죄의 형벌 등에 대한 재판법은 이스라엘의 사회생활을 위하여 주신 법인데 시민법은 이스라엘 신정정치와 함께 그 시효가 만료되었으며 의식법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문자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부분의 교인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생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행위로 지켜야 할 것으로 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의미가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신다고 하신 표현이 어떤 법은 성취하고 어떤 법은 사회생활에 대한 것이니 이스라엘의 신정정치를 벗어나면 구속력이 없는 것이며 또 어떤 것은 완전한 도덕법이니까 계속적으로 지켜야 할 것으로 구분하셨는가? 뿐만 아니라 십계명을 열 개의 계명으로 받아들이고 오늘날까지 행동으로 지켜야 하는 계명이 맞는가?

베드로전서 2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과거 출애굽 상황을 배경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상태가 되었는가를 설명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광야로 인도하셔서 십계명 돌판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실제로 계명대로 행하여 율법에 성공한 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위한 말씀이었다고 베드로 사도는 전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구약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본문 안에서 확인하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정성경에 십계명이라는 말은 출애굽기 34:28, 신명기 4:13, 10:4 이렇게 세 번 나온다.

본문 27절의 “이 말들을 기록하라”에서 “말”이라는 것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에서 “말”, 그리고 28절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에서 “말씀”과 “계명”이 다른 단어가 아니다. 히브리에서 다 같은 ‘말’ 혹은 ‘말씀들’이라는 단어로 ‘데바림’(단수 : ‘다바르’)이라고 쓰고 있다. 즉 진리를 담은 하나님의 말씀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함이었고(출 15:13)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이라는 언약의 땅에 인도하시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처소로 삼으신다는 뜻이었다(출 15:17).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셔서 그 언약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미 언약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 상태를 보여 주고 계시는데 그것이 바로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28절)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상태, 즉 언약의 말씀으로 인해 진리 안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떡과 물이 필요 없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말씀이신 그분이 생명의 떡이 되시고 생명의 물이시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세상의 떡과 물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십계명’이란 없는 말이다. 계명이라고 번역된 말은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문에서 ‘십’(열)이라는 말은 ‘아세레트’라는 말인데 ‘십계명’이라고 번역된 말을 원어로 표현하자면 ‘아세레트 하데바림’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십(열) 곧 말씀’, ‘십(열)이라는 말씀들’ 혹은 ‘열 말씀’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십이 곧 말씀이고 말씀이 곧 열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십’ 혹은 ‘열’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적 표현으로 가득찬 수를 표현한 말이다. 즉 부족함이 없이 꼭 필요한 만큼 가득차서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성경에는 열이라는 표현을 자주하는데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열 재앙이 내려짐으로 애굽에 대한 심판이 가득찬 상태를 나타내었고(참고 출 9:14-16), 다니엘의 지혜가 그 나라의 박수나 술객들보다 열 배나 낫다고 한 것(단 1:20)은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아세레트 하데바림’은 단순히 지켜야 할 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부족함 없이 온전히 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그것을 언약의 말씀으로 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키고 행하여서 생명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시겠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28절에서 말씀한 “내 말들의 뜻대로” 이해한 것이 된다. 이 “뜻”이란 하나님의 취지, 목적, 의미, 이유, 목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계명으로 행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 나타내고자 한 하나님의 취지나 목적대로 우리 마음에 담고 새기지 못한다면 언약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소위 말하는 십계명을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본문에는 제1계명, 제2계명, 제3계명… 이런 식으로 1계명부터 10계명으로 번호가 붙어 있지 않다. 아래의 도표를 통해 보는 바와 같이 히브리어의 문장을 단락으로 나눈다면 10개의 계명이 아니라 오히려 14개의 문장이 되어 14개의 계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열 말씀이라고 하니 열 개의 계명으로 만든 것은 분명 인위적인 것이 분명하다. 결국 ‘아세레트 하데바림’이라는 말이 단순히 열 개의 계명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열이라는 언약의 말씀 안에 온전한 진리를 담아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보여 주려고 하신 것이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율법을 가지고 정죄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포하였다. 언약의 열 말씀, 이것을 계명으로 이해한다면 지켜야 할 법조문으로 보고 끝난다. 문자 안에서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십계명이 아니라 열 말씀이라는 언약의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열이라는 언약의 말씀 안에서 생명이 되시는 분을 보게 된다.

베드로전서 2:9에서 말씀하였던 어두운 곳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택하신 족속이 되었고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은 법조문의 십계명 돌판이 아니라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문자로 기록된 율법의 조문이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5-6)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2-15)

 

언약의 말씀이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계명이나 율법의 조문이 아니다. 언약의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실 것을 약속으로 주신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 약속이 누구인가? 바로 언약의 말씀 안에 담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언약의 말씀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면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7장에서도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하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고 선언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주신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율법으로 보고 어떻게 이 계명들을 지킬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뜻, 하나님의 목적이나 취지와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열 말씀을 주셨다면 그 속에는 우리가 행하여야 할 것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렇게 이루실 것이라는 언약이다. 결국 소위 말하는 십계명, 열 말씀이란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앞으로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이며 그것이 곧 언약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열 말씀은 되어져야 할 말씀이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2023053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언약의 열 말씀 강론 02_출3427-28 언약의 말씀(2023053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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