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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언약으로 보기 07
출애굽기 24:1-11
모세 언약
출애굽기를 펼치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말씀은 단순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많아졌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 언약에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라고 말씀하신 것을 노아 언약에서 확인해 주셨고(창 9:1), 아브라함 언약에서도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으며(창 12:2, 13:16, 15:5, 22:17), 더 나아가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창 35:11, 46:3-4). 결국 이 말씀은 언약의 실체를 보내셔서 땅적 존재들에게 하늘의 진리로 번성하게 만드실 것을 하나님은 자기 언약으로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가 400년 후에 탈출하게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 언약(창 15:13-14)을 하나님은 기억하셨기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 2:23-25)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일하실 것을 알도록 고통 중에서 부르짖게 만드셨다는 뜻이다. “언약을 기억하사”라는 표현의 ‘자카르’는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반드시 일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담긴 언약 용어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2:24, 3:6, 15, 16, 4:5)으로 나타내셨다.
애굽에 내려지는 10가지 재앙은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대가인데(출 1:8) 곧 야곱과 이삭,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을 모른다는 뜻이다. 언약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심판 아래 있는 상태이다(출 5:2).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죄악 가운데 버려두셨기에 죄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애굽의 모든 신에 대한 심판을 바로를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출 12:12). 이를 통해 언약의 원수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인한 것이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 12:5-7)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처음 난 모든 것에게 죽음을 선포하시고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지지 않은 모든 집의 장자들을 치셨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되 왜 흠 없는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살리는 방식으로 일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건짐 받은 것은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 때문이다. 그 언약에는 궁극적으로 죄 없는 누군가의 희생을 담고 있다. 즉 흠 없는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해 죄가 있는 이스라엘 대신 죄 없는 것의 죽음을 수납하고 넘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4-8절)라고 말씀하셨다. 즉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언약의 피”라는 뜻이다. 어린 양의 피는 여자의 후손으로 이루실 죽음을 말씀하는 것이다(레 17:11).
이렇게 본다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단순히 애굽에서 벗어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서의 벗어남이다. 이스라엘이란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된 자이다. 그래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라고 말씀하셨다. “듣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이고 “지키면”이란 ‘샤마르’인데 ‘듣는 것’은 ‘마음에 새긴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자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날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다(출 12:2).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유월절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한다는 것은 단순히 절기만 지키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태에서 처음 난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해야 한다(출 13:2). 처음 것, 즉 장자란 기력의 시작으로 한 가정의 힘이다(시 78:51, 105:36). 하나님께서는 이 힘을 애굽에 대해서는 치셨지만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로 살리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향해 처음 것을 요구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힘, 즉 그분의 은혜가 애굽에서 끄집어내어 약속의 땅을 받아 누리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7-8)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끄집어내신 이유를 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노래를 통해 이렇게 밝히신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 15:13),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출 15:17)라고 밝히셨다. “주의 거룩한 처소”를 “주의 기업의 산”, “주의 처소”,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라고 하였다. 즉 현실적으로는 가나안 땅이 목표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처소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 처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소로 삼으시는 것이다.
언약의 국가로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 이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정의이다. “복의 근원”(창 12:1-3)이 아브라함 한 개인에서 이제 국가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왕들이 아브라함(창 17:6, 16, 20)과 야곱(창 35:11)을 통해 나올 것이라는 언약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국가의 형태로 이어가는 것은 오직 언약에 의해서만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세를 대표자로 세워 이스라엘과 언약식을 가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있는데 시내 산에서 또 언약을 주셔야 하는 이유는 한 개인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나라의 형태로 이루시는 언약임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바로라는 부정적 역할을 한 이방 왕을 사용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원수로 심판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백성, 장자(아들)로 말씀하시며 구속하셨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애굽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 마음에 새겨졌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건국 취지는 오직 어린 양의 희생정신이다. 이것이 모세 언약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 언약 안에는 거룩한 죽음을 이루도록 하는 열 말씀(율법)과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덮어줄 희생의 피를 양산하는 제사 제도라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그래서 24장에서 언약식 이후 32장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발생한다. 모세 언약 역시 이스라엘의 죄악이 전제되어 있고 그 죄악을 하나님께서 덮어주시는 희생의 피가 필요하고 그 피의 의미를 율법의 말씀으로 보여주신다. 그러기에 첫 번째 주신 돌판은 깨어져야 하고(출 32:19), 다시 주신 언약의 돌판은 인간의 죄성을 담은 돌판으로 모세가 준비하여야 했다(출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 34:27-28)라고 하였는데 “십계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세레트 하데바림’은 직역하면 ‘열(십) 말씀, 열이라는 말씀, 열 곧 말씀’이다. 단순히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완전 수 ‘10’을 사용하여 온전한 진리를 담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언약의 말씀으로 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지켜 행하여 생명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열 말씀’은 “하라”와 “하지 말라”라는 말씀으로 주셨는데 하라는 2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신 5:12)라는 것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신 5:16)라는 것이다. ‘하지 말라’라는 것은 애굽에서 행한 적이 있기에 하지 말라는 것이고 ‘하라’는 것은 약속의 땅에서 행할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지 말라는 것은 애굽의 땅과 관련이 있고 하라는 것은 가나안 땅과 관련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하지 말라는 것을 통해 애굽에서 빠져나와 하라는 말씀으로 가나안 땅, 즉 약속의 땅에 이른다는 의미로 주신 말씀이다. 그러면 하라는 것의 두 가지 ‘안식’에 대한 것과 ‘부모 공경’에 대한 말씀으로 보여주고자 하신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부모’란 홍해를 건넌 자, 즉 죽음을 경험한 자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다는 것은 죽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측면에서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 구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부모는 진짜 부모이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자로서 구원이 ‘안식’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계명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루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소위 말하는 십계명, 열 말씀은 지켜 행해야 하는 율법이 아니라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마 12:8), 희생의 피를 흘리시는 죽음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복음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보여주는 언약(요 8:56-58)이었다면 모세 언약 역시 행위 언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은혜 언약이다(눅 24:27, 요 1:45). 그래서 모세가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눅 9:30-31)
“별세”라는 헬라어 ‘엑소도스’는 ‘탈출, 떠남’이라는 뜻이다. 즉 모세가 원하는 것은 출애굽이 아니라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서 떠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출애굽기 15장 모세의 노래에서 “주의 거룩한 처소, 주의 기업의 산, 주의 처소,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라고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고(마 5:17-18), 그 율법의 완성은 곧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확증하신 사랑이다(롬 5:8, 13:10). 그래서 바울 사도는 율법으로 죄를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가는 것으로 이렇게 선언한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19-21)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3-24)
(2023042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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