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사무엘상

06.사무엘상 5:1-12 블레셋에 있는 언약궤

불편한 진리 2014. 4. 20. 19:37

사무엘상 5:1-12

블레셋에 있는 언약궤


블레셋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빼앗았다. 고대사회에서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블레셋에게 있어서는 매우 의미 있는 수확이었다. 블레셋의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신당에 두었다. 

다곤은 블레셋의 우상으로서 ‘곡식, 곡물’(히 다간)을 의미하는 말과 관련되었다고 보기도 하고(참고 호 14:8, 시 65:10) 또한 ‘물고기’(히 다그)라는 뜻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본다. 상체는 사람의 모양이고 하체는 물고기의 모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우상은 생산의 번성을 위하여 만들어진 우상인데 곡식의 풍작을 얻으려고 섬긴 것으로 추측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패배한 자들의 신의 형상을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신전에 안치시킴으로 승리한 자들의 신들이 패배한 자들의 신들의 지휘 하에 놓임을 의미했다. 이렇게 함으로 패배한 신들의 힘을 승리한 신들의 힘에 합세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들의 위계질서는 신들에게 예속된 백성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신에 대한 생각은 이스라엘이나 블레셋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앞세우면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믿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편을 들어서 이기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였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가 예수님, 하나님만 믿으면 그분은 반드시 내편이 되어 주시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를 도와서 무슨 일이든지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나의 일을 실패하게도 하실 수 있는 분, 우리 교회가 망하게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만약 그런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도록 해 주셔야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조건 이스라엘의 편만 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무엇인가 보여 주실 뜻이 있다는 의미이다. 

역사적 소문에 의하면 애굽을 물리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힘없이 블레셋의 포로가 되었다. 블레셋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여호와(삼상 4:7-9)를 포로로 끌고 왔으니 블레셋은 얼마나 기고만장하였을까? 

그러나 이제부터 진짜 전투가 시작된다. 이 전투가 끝나면 승자는 패자가 되고 수모를 당한 자는 영광을 받고 영광을 받은 자는 수모를 당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한나가 찬양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곤의 신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안치한 다음날 블레셋 사람들이 신전에 들어가 보니 다곤이 여호와 앞에 경배하듯 엎드러져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다곤이 여호와 앞에 굴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우연이라 여기고 다곤을 일으켜 세웠다. 다곤은 경배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어날 수 있는 무능한 신이었다. 이것이 우상의 본질이다. 

다음날 다시 가보니 다곤이 또다시 엎드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아예 목과 두 손목이 부러져 있었다. 다곤이 머리를 잃음은 사고력이 없다는 것이고 손을 잃은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즉 다곤은 신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과 위상을 완전히 상실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사무엘서의 기록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다곤 신당에 들어갈 때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고 전함으로 역사적 배경을 밝혀 실제 있었던 일임을 설명한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6절)라고 표현하여 다곤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손’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독한 종기와 전염병으로 인하여 아스돗 사람들은 언약궤를 가드로 옮긴다(8절).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 자신들의 신 다곤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곤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다곤을 보호하면서 끝까지 다곤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상숭배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우상은 인간을 위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 우상이다. 

가드로 옮겨간 여호와의 궤가 그곳에서도 잠잠히 있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가드를 악성 종기로 치시니 다시 언약궤가 에그론으로 옮겨졌다. 가는 곳마다 무서운 재앙이 임하지만 그들은 쉽게 전쟁에서 얻은 최고의 전리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일에 대한 성과를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수고로 얻은 메달, 트로피는 자기 자신의 명예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 공적이 역사적으로 남기를 원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다. 성경은 그것이 우리의 죄성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5-11). 


언약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에그론 사람들은 궤가 그곳으로 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하였다(10절). 결국 블레셋의 지혜 있는 자들이 모여 언약궤를 원래 있던 곳인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내기로 뜻을 모았다(11-12절).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가? 왜 굳이 자신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게 하셔서 블레셋에 직접 뛰어들어 가셨을까?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곤에게 패배한 신으로 여기는 것이 화가 나서 자신이 더 세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도 아무 것도 아닌 우상과 싸우는 우상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을 깨뜨리고 폭로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다곤 신상을 파괴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블레셋에게 이스라엘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독자적으로 충분히 일하는 스스로 계신 분임을 보여 주고자 하셨다. 즉 이스라엘이 패배하든 망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창조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그래서 기록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명백히 드러내고자 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인 ‘손’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였다(6,7,9,11절).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빼앗아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도 다곤의 신에게 종속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블레셋 사람들이나 그의 신에 의해 구속받지 않는 지극히 자유하신 분이다. 이스라엘은 패배해도 여호와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셨다. 아니 이스라엘도 블레셋도 패배하게 만드신 분이 언약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울부짖었고(삼상 4:13), 블레셋 사람들도 울부짖었다(12절).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애굽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연상시킨다(출 11:6).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단체나 인간 한 개인을 위해 일하는 분이 아니라 자기 언약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나를 위한 하나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은 우상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에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언약의 성취인 십자가에 동의하고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자이다(20120304/김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