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81. 출 33:12-23 친히 가리라

불편한 진리 2026. 8. 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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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81강

출애굽기 33:12-23

친히 가리라

 

시내산을 떠나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시내산에 율법의 문자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을 나타내고 보여 주기 위해 언약의 땅에 파송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33:3에서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성경에서 번역한 문자 그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지 않는 상태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 밖에서 모세와 만나는 회막으로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즉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에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가 오늘은 친히 가리라고 말씀하시는 변덕쟁이 하나님이 아니고 말씀을 번복하면서 결정을 잘 못하시는 우유부단한 분이 아니시다. 오늘 본문은 회막에서 모세가 간구하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형식으로 언약적 원리를 말씀하신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언약에 근거한 것이고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것이다.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12-13절). 모세는 하나님께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12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출 33:1)이라고 한 말씀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모세 자신이 인도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이끄시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보낼 자”(12절)는 ‘샬라흐’로 ‘파송하다’라는 뜻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을 드러내 주시기를 구한 것이다.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12절)라는 표현은 ‘야다’를 써서 알게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즉 아직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하나 되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계시하지 않은 상태라 이스라엘이 그와 하나 된 상태가 아니기에 금송아지 형상을 섬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모세가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12절)이라고 하였는데 사실 성경 어디에 찾아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곳은 없다. 그러나 의미상 그렇게 계시 되었다는 표현이다.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12절)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나의 이름 안에서 너를 안다’라는 말이다. 이름 이란 언약의 이름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나타내실 때 이름을 바꿔 주심으로 언약의 하나님 안에 하나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 언약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안에 하나 되는 것을 이렇게 선언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12절)라고 하였는데 “앞에”라고 번역한 단어는 ‘아인’으로 ‘눈’이라는 뜻이고, “은총”(12, 13절)의 ‘헨’은 ‘호의, 은혜,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며, “입었다”(12절), “입었사오면, 입게 하시며”(13절)의 ‘마차’는 ‘발견하다, 만나다, 얻다, 이루다’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눈 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눈 안에서 은혜를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짐으로 언약의 말씀이 되었다는 표현이다.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격 없는 자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노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는 의미를 “그러나 노아는(노아흐) 여호와께(아인) 은혜를(헨) 입었더라(마차)”(창 6:8)라는 노아에게 언약이 주어져 언약의 말씀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신을 세우셨고, 시내산까지 인도하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모세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언약에 근거하여 중보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14절). “친히 가리라”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내 얼굴이 가리라, 동행하리라’라는 말이다. “쉬게 하리라”의 ‘누아흐’는 ‘(안전함과 관련된) 휴식, 안식, 정착’이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창 2:15)이라고 하였을 때 “두어”의 ‘야나흐’와 동의어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얼굴이 되어서 가시는 것이 안식이다. 하나님께서 얼굴로 오시면, 곧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안식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애굽적 심성을 가진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을 이루실 수밖에 없는데 언약을 이루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심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모세와 같은 중보자를 통해서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자로 세워 그의 죽음(이름이 지워지는 것, 출 32:33-34)을 담보로 이스라엘을 언약으로 이끌어 가고자 하신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대표자로 세워진 모세에게 속한 이스라엘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참고, 욥 9:33, 사 59:16-19).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15-16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얼굴이 되어 가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면 우리를 올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구한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확실한 증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증표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18절)라고 말한다.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16절)라고 번역하였는데 직역하면 ‘땅 위에서 구별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천하 만민’이라는 표현 속에는 세상 많은 사람 중에서 구별되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땅 위에서 하늘의 것을 나타낼 존재로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언약을 주심으로 땅 위에서 하늘의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을 통해 오실 메시아,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17절). “이 일”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다바르’는 ‘말씀, 일’이라는 뜻이다. 즉 모세가 말한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언약의 중보자 모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그 증표로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18-19절). 모세가 “주의 영광”(18절)을 보여 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19절)라고 말씀하셨고, 또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19절)라고 하신 것을 보면 주의 영광이 하나님의 모든 선한 것이며 그것이 야훼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선한 것”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칼 투비’인데 원형으로는 ‘콜 투브’로 ‘콜’은 ‘전체, 온전함, 완전함, 모두’라는 뜻이고, ‘투브’는 동사 ‘토브’에서 유래하였다. 즉 ‘완전한 선’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창조 언약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히, ‘토브’)(창 1:4, 10, 12, 18, 21, 25, 31)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골 1:16). 그러므로 완전한 선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즉 주의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난 것을 의미하는데 완전한 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드러난 영광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숭배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는 상태였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였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선으로 말씀하신 것이었고, 그 완전한 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영광으로 성취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 죽음이다. 따라서 독생자의 영광, 곧 십자가 죽음 안에서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드러났다. 이스라엘은 가운데 말씀을 두기를 거부하였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로 하신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19절)라고 하셨다. 긍휼을 베풀다는 말의 ‘라함’은 ‘깊이 사랑하다, 긍휼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뜻이다.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5-18)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20-23절). 하나님께서 언약을 완전한 선으로 나타내실지라도 육에 속한 이스라엘에게는 비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등을 볼 것이요”(23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이 등이 있고 배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중보자를 모세로 세웠지만 아직은 육의 인간이기에 뒷면, 즉 한쪽 면만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반석 틈”(22절),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22절),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덮어주시는 은혜가 있을 때 온전한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였지만 결국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니리”(20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은 얼굴로 오시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3-26)

 

야훼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은 은혜와 긍휼로 찾아오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은혜와 긍휼이라는 말을 빼면 복음이 아니다(2026080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81.3312-23 친히 가리라(2026080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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