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80. 출 33:1-11 시내산을 떠나라

불편한 진리 2026. 8. 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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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80강

출애굽기 33:1-11

시내산을 떠나라

 

출애굽기 23장에서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 23:20)라고 하셨고 계속 이어서 “내 사자가 네 앞서 가서”(출 23:23),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출 23:27),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출 20:28)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지난 강론에서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출 32:34)라고 하신 말씀에서 “보응”은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이루시는 구원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사자를 보내지만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그런데 7-11절에서 회막문에서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 후에는 12-1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왜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다가 나중에는 친히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은 변덕쟁이신가?

선악의 나무를 취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나야 하듯이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형상을 취한 후 시내산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히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난 것이 쫓겨난 것이 아니듯이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야훼의 편에 있는 자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칼로 심판한 것은 야훼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진리를 고수하고 그 진리의 말씀으로 이끌어 가시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이런 전제를 가지고 이해하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1절).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는 표현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언약이 깨어진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것을 성막과 안식일을 말씀하심으로 창조 언약을 시내산 언약으로 나타내셨다. 이런 점에서 선악의 나무를 취한 사건과 같이 금송아지 숭배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면 선악의 나무를 취한 이후 하나님께서 취하신 조치는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는 일이었다.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2-23)

 

이 말씀은 단순히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것이 아니었다. 22절의 손을 “들어”와 23절의 “내보내어”라는 말의 ‘샬라흐’는 ‘보내다, 버리다, 갈라서다, 파송하다, 쫓아내다’라는 뜻이다. “근원”의 ‘라카흐’는 ‘취하다’라는 뜻이고, “갈게 하시니라”의 ‘아바드’는 ‘섬기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히, ‘하아담’)을 땅을 취하여 땅을 섬겨 생명으로 살아나도록 에덴동산에서 파송하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둘째 아담이요 진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셔서 생명나무를 취하는 영생을 이루시는 것이 땅을 섬기는 언약의 완성이라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으로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12절에서 “보낼 자”라는 표현을 ‘샬라흐’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가나안 땅이 상징하는 하나님 왕국을 이루시겠다는 의미이다.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이란 언약의 땅을 말씀한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배반하였지만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악의 나무를 취한 아담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죄악과 죽음 가운데서 구원을 이루신다. 출애굽의 목적은 단순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소가 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언약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는 구원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2-3절).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2절)라고 말씀하셨다. 깨어진 돌판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죽음을 통해 진노를 홀로 감당하심으로 “사자”(히, ‘말라크’), 곧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 오셔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3절)라고 말씀하신다. “너희와 함께”라고 번역하였는데 ‘케레브’는 ‘내부, 중앙, 한가운데’라는 뜻이다(시 51:10, 사 63:11).

 

또 내 영을 너희 속에(케레브)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그러니까 ‘케레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는 표현이 아니라 ‘너희 안에, 너희 가운데’ 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중심에 없다는 것이다. 성막이 건립되면 이스라엘 가장 가운데 자리 잡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그들 중심에 없다는 것을 7절 이하에서 회막을 진 밖에 치도록 하신 것으로 보여주신다.

“목이 곧은 백성”(3절)이란 언약의 말씀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상태가 이스라엘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목이 곧은 존재이다. 죄인의 목은 꺾어져야 하고 베어져야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세우신다.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3절)라는 말씀은 육체뿐인 이스라엘의 중심에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없다는 뜻이다. 우상숭배를 통해 드러난 죄악의 상태는 하나님의 의와 상관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2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육이 죽고 영으로 다시 사는 하나님의 사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계심으로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4절). “준엄한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라 다바르’로 직역하면 ‘고통의 말씀, 재앙의 말씀, 나쁜 말씀’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고통스럽게 나쁜 말씀으로 들렸다는 의미이다.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도 직역하면 ‘장식품을 자기 위에 두지 않았다’라는 말이다. 단장품을 자기 위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머리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5절). 여기 “너희 가운데에”라는 표현이 ‘케레브’이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면 진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신구”의 ‘아디’는 ‘(남자의) 장식, 장식품, 장신구’라는 뜻이다. “떼어 내라”의 ‘야라드’는 ‘내려오다, 내려가다, (아래로) 떨어지다, 던지다’라는 뜻이다. 야곱이 하란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신 언약이 주어진 벧엘로 다시 올라갈 때 던져버린 것이 이방 신상들과 장신구였다(창 35:3-5).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 의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아래로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든 장신구를 던져버리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에 도무지 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18 주께서 그날에 그들이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19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얼굴 가리개와 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21 반지와 코고리와 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23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사 3:18-2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들의 장신구를 떼어 내니라”(6절)라고 하였는데 “호렙산”은 시내산의 다른 이름으로 ‘하라브’(마르다, 황폐하다, 죽이다)에서 온 단어이다. 즉 이스라엘이 황폐한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하신다는 의미이다. 결국 하늘의 생명을 누리는 것은 인간이 만든 무화과나무의 옷이 아닌 하나님께서 가죽옷으로 덮어주시는 은혜로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십자가 죽음 안에서 이루시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7절). “항상”이란 없는 말이다(번역하는 과정에서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회막”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단일 회막론’과 ‘두 회막론’으로 논란이 많다. 아직 성막이 건립되기 전이었고 또한 성막은 진영 중앙에 위치하기에 진영 밖의 회막을 성막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두 회막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오늘 본문 외에 민수기 11:16-17, 24-30, 민수기 12:4-10, 신명기 31:14-15의 말씀을 진영 밖의 회막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본문들이 진영 밖의 회막이라고 보아야 할 명확한 근거는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3절)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모세와 함께 한 장막을 회막이라고 표현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 가운데는 금송아지 형상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죄인들은 자기 자신이 금송아지 같은 우상 자체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밖으로 밀쳐내고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2-13)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8-9절).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 백성들이 바라만 보았다는 것은 육의 이스라엘은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 기둥”(9절)으로 임재를 보여주시는데 이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심으로 심판 가운데 구원을 이루실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장막 문”(8절)은 장막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셔서 모세가 임시로 지은 장막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 자체가 ‘만남의 천막’, 곧 회막이 된다는 뜻이다.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10절). “예배하며”의 ‘샤하’는 ‘(몸을) 구부리다, 절하다’라는 뜻으로 목이 곧은 백성들이 하나님이 임하시면 그 몸을 구부릴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머리로 임하셨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11절). “친구”란 언약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관계라는 뜻이다(요 15:15).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는 표현은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모세가 언약을 받았기에 그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은 모세의 장막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회막으로 보여주신 것은 모세가 믿음이 있다거나 그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나눔이다. 결국 “내가 내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2절)라는 말씀은 모세에게 주신 언약이 여호수아를 통해 회막을 떠나지 않음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막의 완성으로 하나 됨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20260802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80.3301-11 시내산을 떠나라(202608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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