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출애굽기

66. 출 28:15-30 제사장의 옷(2)(그림 자료는 PDF파일에서 확인)

불편한 진리 2026. 6. 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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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66강

출애굽기 28:15-30

제사장의 옷(2)

 

제사장의 복장은 에봇 위에 착용하는 판결 흉패와 우림, 둠밈에 대한 계시로 계속 이어진다. 15-21절은 판결 흉패의 제작에 대한 말씀이고, 22-28절은 흉패의 착용에 대한 말씀이며, 29-30절은 흉패의 기능(우림과 둠밈)에 대한 말씀이다.

“15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반듯하게 하고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15-21절). 판결 흉패의 제작에 대한 말씀이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부착하는 흉패는 에봇과 동일한 재질의 가장 귀한 실들로 짰다. 가늘게 꼰 베실을 기본으로 청색, 자색, 홍색 실을 아름답게 섞어 짜고 거기에 금실이 추가 되었다. 가로세로 한 뼘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이며 두 겹으로 제작되어 아마 봉투처럼 물건을 넣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뼘”(16절)으로 번역된 ‘제레트’는 2분의 1규빗, 즉 23-25cm로 간주된다. “네모반듯”(16절)하다고 하였으니 1규빗 길이로 제작하여 반을 접어 2분의 1규빗 크기의 주머니 모양으로 완성된다.

그 위에 네 줄로 보석을 붙였는데 한 줄에 세 개씩의 총 열두 개의 보석이 장식되었다. 보석의 이름들이 매우 드문 고대 히브리어이므로 대부분 어떤 종류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며, 그로 인해 성경의 역본들마다 다양한 보석 이름들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보석류였든지 값나가는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열두 보석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나타내며 한 보석에 한 지파의 이름이 새겨졌다. 아마 어깨끈 위에 호마노 보석에 새겨진 이름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태어난 순서대로 열두 지파 조상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의 순서가 아니라 열두 지파의 이름이 거기에 새겨졌다는 것과 그것이 지닌 의미이다.

“22 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23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위 곧 흉패 두 끝에 그 두 고리를 달고 24 땋은 두 금 사슬로 흉패 두 끝 두 고리에 꿰어 매고 25 두 땋은 사슬의 다른 두 끝을 에봇 앞 두 어깨받이의 금테에 매고 26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 아래 양쪽 가 안쪽 곧 에봇에 닿은 곳에 달고 27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어깨받이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 쪽 곧 정교하게 짠 띠 위쪽에 달고 28 청색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정교하게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하라”(22-28절). 흉패의 착용법에 대한 말씀이다. 금사슬 두 개를 땋아서 제작한 뒤 흉패에 연결한다. 흉패를 고정하기 위해 세 쌍의 금고리, 즉 6개의 금고리가 제작된다. 이 중 두 쌍은 흉패의 위와 아래에 부착되는 금고리들이고, 나머지 한 쌍은 에봇의 허리띠에 부착된다. 다시 말해서 3쌍의 금고리 중에서 첫째 금고리 2개는 흉패 위 두 끝 모서리에 금고리를 부착한 뒤 두 금사슬을 연결하여 어깨(호마노 보석을 물린 곳)의 금테에 연결된 두 번째 금테에 맨다(22-25절). 둘째 금고리 2개는 흉패의 아래 모서리 두 끝에 건다(26절). 그리고 셋째 금고리 2개는 “두 어깨받이 아래”(27절), 즉 등 쪽에서 “정교하게 짠 띠 위쪽”(27절)이란 에봇 허리띠를 말하고, 어깨끈을 매는 자리 위에 단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에봇 허리띠에 달린 이 두 금고리는 등 쪽이다. 청색 끈을 앞의 흉패 아래 두 금고리에 묶은 뒤 등쪽 에봇의 허리띠 위쪽에 금고리 2개를 붙여 묶는다(27-28절). 이렇게 하여 흉패가 가슴에 단단히 고정된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29절). 흉패의 기능에 대하여 우림과 둠밈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판결 흉패의 두 가지 기능이 나타난다. 첫째는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29절)라는 말씀이다. “기념”의 ‘직카론’은 ‘자카르’에서 온 단어로 하나님의 언약 용어이다. 즉 이스라엘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의미이다.

12절에서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라고 하였는데 어깨받이의 두 호마노에 새겨진 이스라엘의 이름을 어깨에 맨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실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대제사장의 어깨에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짊어지심으로 구원을 이루신다는 언약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라고 메시아 예언을 하였다. “질고”의 ‘홀리’는 ‘질병’이라는 뜻인데 고치지 못할 병이라는 의미로 죄악에 대한 비유이다. “지고”의 ‘나사’는 ‘들어 올리다, 나르다, 취하여 가다, 가지고 가다’라는 뜻이다. 즉 메시아는 자기 백성들의 죄악을 취하여 가실 분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다고 마태는 선언하였다.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17)

 

헬라 이방인을 일차 독자로 삼은 누가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독특한 표현으로 이렇게 기록하였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 15:4-6)

 

죄 가운데서 건짐 받아 구원을 얻은 자기 백성들을 양으로 비유하면서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으로 온다고 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한 자기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가 된 상태를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진 상태로 표현한다. 예수께서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짊어진 것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진 것으로 나타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짊어짐”의 ‘페리페로’는 ‘가지고 돌아다니다’라는 뜻인데 ‘밀리거나 끌려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생명을 나타내는 방식을 십자가 죽음을 짊어진 상태로 묘사하였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 되고 교회가 된 자의 정체성이요 현실적인 삶이다.

또한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열두 보석이 있다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대제사장이 열두 보석을 부착한 흉패를 착용하고 내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대제사장의 모형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즉 십자가 죽음으로 얻은 자기 백성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감을 보여준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요 13:23-25)

 

요한 사도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한 것을 가슴에 의지하였다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음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제사장의 가슴에 열두 지파 이름을 새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사랑으로 품을 것을 나타내신 언약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십자가 죽음은 사랑의 절정이기 때문이다(롬 5:8). 마음의 온전함이 야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신 6:5).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롬 5:5)이 언약의 온전한 성취이다.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30절). “우림”(30절)은 ‘오르’(빛)에서 유래하였다 보고, “둠밈”(30절)의 ‘툼밈’은 ‘완전함, 무결, 의로움’이라는 뜻이다. 자세한 기록이 없기에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성경 몇 구절에서 제비뽑기의 형식으로 표현되었기에 그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민 27:21, 삼상 28:6),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제비뽑기가 아니라 선지자들의 말씀 선포를 통해 밝히 전달되었기에 주술적인 의미로 생각할 수는 없다(흔히 사진의 모양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만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넣어”(히, ‘나탄’)라고 말씀하였기에 이미 정하여진 그 어떤 것을 두 겹으로 제작된 흉패 안에 보관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림은 ‘알렙’(א)으로 시작하고 툼밈은 ‘타우’(ת)로 시작하는데 히브리어의 첫 스펠링과 마지막 스펠링이다. 즉 우림과 둠밈은 빛이요 진리로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히, ‘알렙’)와 오메가(히, ‘타우’)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아론은 등불을 보살피기 위해 매일 내성소에 들어가야 했다(출 27:20-21).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30절)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진 열두 보석이 달려 있고 우림과 둠밈을 넣은 흉패를 가슴에 붙였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판결 곧 심판과 구원을 보여주는 존재라는 뜻이다. 판결 흉패가 네모반듯하다는 것은 심판과 구원이 정당하고 바르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교회요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롬 15:16, 벧전 2: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드러내는 존재이다(202606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출66.2815-30 제사장의 옷(2)(2026060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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