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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50
마태복음 8:28-34
가라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이적의 병행 구절은 마가복음 5:1-20, 누가복음 8:26-39인데 마태가 가장 간략하게 전한다. 본문의 이해에 있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 예컨대 예수님께서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한 것에 대해 왜 허락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귀신들의 요구도 들어주시는 주님이신가? 귀신들을 쫓아내면 그냥 쫓아내시지 왜 하필 사람들이 먹이는 많은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여 그들에게 손해를 끼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가를 찬찬히 살펴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28절). “또”를 헬라어로는 ‘카이’로 쓰고 있는데 ‘그리고’라는 뜻으로 앞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즉 8:27에서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마태는 본 이적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가다라 지방”이라고 하였는데 마가는 “거라사인의 지방”(막 5:1), 누가는 “거라사인의 땅”(눅 6:26)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서 행한 이적으로 보는 자들도 있으나 가다라 지방과 거라사인의 지방은 같은 요단강 동쪽 이방인 지역을 가리키는 ‘데가볼리’(헬, ‘데카폴리스’ : 열 개의 도시, 막 5:20) 안에 포함된 곳으로 다른 지명이 아니다.
“귀신 들린 자 둘”이라고 하였는데 마가는 “귀신 들린 사람”(막 5:2)이라고 단수로 썼고, 누가는 “귀신 들린 자 하나”(눅 8:27)라고 하였기에 마태의 것과 다른 이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으나 이 또한 귀신 들린 사람이 두 사람이었지만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 앞에 말한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여 언급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마태는 악의 세력에 속하여 거짓을 증거하는 ‘두 증인’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두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거처는 세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무덤 사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덤”의 ‘므네메이온’은 ‘므네메’(회상, 기억)에서 유래한 단어로 ‘기념비, 기념물, 기억, 무덤’이라는 뜻이다. 율법에 의하면 무덤은 부정한 것이다.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민 19:16)
“무덤 사이에서 나와”라는 표현은 귀신 들린 자의 본질이 죽음을 기념물로 삼는 존재라는 뜻이다. 살아 있는 자로 보이지만 죽음에서 왔기에 실상은 죽은 자이다. 8:21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라고 하셨다. 그 죽은 자란 더러운 귀신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라고 이 이적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 주신다. 이런 점에서 문자적인 율법에 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라고 하였는데 “사나워”의 ‘칼레포스’는 ‘어려운, 곤란한, 악한’이라는 뜻이다. 즉 죽음으로 사람들을 위협함으로 누구든 제대로 된 진리의 길을 갈 수 없는 이방인의 악한 상태를 보여준다. 마가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막 5:3) 되었다고 하였고, 또 “늘 소리 지르며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막 5:5)라고 하여 죽음 가운데서 진리의 길을 갈 수 없는 상태는 해치는 모습이다. 그러기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자기 의를 나타내고자 율법적인 행위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될 뿐이다. 죄의 권세에 매인 인간의 실상이다. 이런 점에서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생명은 죽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는 “삶을 얻으리라”의 ‘조오포이에오’는 ‘~에 생명을 주다, 살게 하다, 생명을 가지다’라는 뜻으로 수동태이고 또한 에베소서의 말씀에서 “함께 살리셨고”라는 표현 역시 ‘쉬조오포이에오’로 ‘쉰’(~와 함께)과 ‘조오포이에오’(살리다)의 합성어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생명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전하였다.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29절). 죄악의 권세에 매인 존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타나는 모습은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히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 따로 있다’라는 의미이다. 서로 따로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대적자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소리 질러 이르되”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마가와 누가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_막 5:7, 눅 8:28)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과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살아 있음이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진리로 선포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들은 예수 믿어서 살아났으니 주를 위해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을 바른 신앙생활로 규정한다. 우리의 의지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종교 생활에 불과하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종교 생활을 진리로 선포한다.곧 귀신들이 소리 질러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다는 것을 진리로 선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라는 물음에서 “괴롭게 하려고”의 ‘바사니조’는 ‘고문하다, 고통을 주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 가운데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참고 계 9:5, 11:10, 14:10 등).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것에서 놓임을 받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귀신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뜻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구한다.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30-31절). “마침”(30절)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데’는 ‘그러나, 그리고, 지금, 더구나, 그 위에 또한, 게다가’라는 다양한 뜻이 있다. 즉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지식적으로 알 뿐만 아니라 더구나, 게다가 그 하나님의 아들에게 감히 자신들의 거처를 요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말씀한다. “돼지”는 유대인들이 부정한 동물이었기에(신 14:8) 돼지를 먹이는 자들은 이방인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부정한 존재로 치부하였다.
7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8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 11:7-8)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부정한 자를 찾아가 정결하게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산상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여기서 “개”는 이방인과 율법적인 거짓 선생(사 56:10),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자들(빌 3:2, 벧후 2:22)을 의미하고, “돼지”는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판단하고 정죄하는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유대인들을 지칭하나 곧 율법의 문자에 매인 모든 자를 가리킨다. “발로 밟고”, “찢어 상하게” 한다는 말씀은 하늘의 보물을 땅의 것과 섞어서 발로 밟아 산산조각 낸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물이라는 하나의 진리로 주셨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판단하며 말씀을 땅의 것과 혼합하여 613가지의 율법 조항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돼지 떼”를 통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동일하게 하늘의 진리를 땅의 것과 섞어 혼합하는 부정한 존재임을 폭로하신 것이다.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라는 말씀은 귀신들의 간구도 주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의 간구와 상관없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심으로 귀신 들린 상태에서 거처로 원하고 요구하는 것 역시 부정한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말씀한다. 귀신들이 무덤이라는 부정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원하는 것은 결국 돼지 떼라는 부정한 상태이다.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32절). “가라”의 ‘휘파고’는 ‘~아래로 떠나가다, ~아래로 인도하다, 가다, 물러가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마가와 누가는 “허락”(헬, ‘에피트레포’, 막 5:13, 눅 8:32)이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쓰고 있다. 즉 심판 속에서 귀신들의 행함도 예수님의 허락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심으로 귀신 들린 자의 본질이 부정함으로 하늘의 진리를 땅의 것으로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이라고 하였는데 마가는 마태와 같이 “바다”(헬, ‘달랏사’, 막 5:13)라고 표현하였지만 누가는 “호수”(헬, ‘림네’, 눅 8:33)라고 하였다. 바다에 빠져 물에 몰사하였다는 것은 노아의 홍수 심판을 생각나게 한다. 즉 물이란 심판을 의미하는데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감으로 마귀의 본성이 정결하지 못한 것이며 부정한 존재가 받아야 할 최종적인 심판을 미리 보여준다. 심판주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런 점에서 본 이적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표적이다.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33-34절). 귀신 들렸던 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님이 떠나시기를 간구했다. 그 어떤 더 큰 손해나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죄의 권세에 매인 자들이기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하나님의 대적자, 원수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롬 5:10, 8:7, 약 4:4). 세상의 풍속을 좇아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우리가 귀신 들린 자들이다(엡 2: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되었다는 것은 나의 실체가 어떤가를 알고 마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결국 본문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유대인이나 세속적인 힘을 의지하는 이방인이나 동일한 죄 아래 있는 모습이고 그것이 마귀의 권세에 사로잡혀 귀신 들린 상태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도 부정한 것을 구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부정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는 것이다(2025121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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