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마태복음

46. 마태복음 7:28-8:1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불편한 진리 2025. 5. 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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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론 46

마태복음 7:28-8:1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나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는 자들이나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율법을 무시하고 없는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은 천국과 상관없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곧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새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집이 된 자들이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결론이다.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28-29절). “마치시매”의 ‘텔레오’는 ‘끝내다, 완성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이다. “놀라니”의 ‘에크플렛소’는 ‘에크’(~에서부터, ~ 때문에)와 ‘플렛소’(때리다, 치다)의 합성어로 ‘내쫓다, 놀라게하다, 깜짝 놀라서 충돌하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완성된 말씀으로 인해 무리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의미이다. 율법을 행위로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서 그들의 마음에 있던 말들과 맞지 않는 충돌이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거짓 선지자로 폭로하시고 예수님 자신만 참 선지자임을 밝히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머물고 말았다. 아니 놀랐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산상수훈 시작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 5:1)라고 말씀하였다. 즉 무리를 향해 선포하셨지만 산상강론은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그래서 성경에서 무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강도 바라바를 선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한다(눅 23:18).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0-11)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요 2:23-25)

 

결국 ‘무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따라 율법적 행위에 매인 자들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들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는 자들이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27절)라는 말씀에서 “비, 창수, 바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이다. 구약에서도 에스겔 선지자가 폭우와 우박덩이, 폭풍으로 심판을 선포한 것을 볼 수 있다.

 

11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몰아치리니 12 그 담이 무너진즉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1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을 퍼붓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어리로 무너뜨리리라 14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허물어서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13:11-14)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안을 외치며 허탄한 묵시를 선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평안이 없으나 평안하다고 거짓으로 백성들을 유혹하는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회칠한 담을 쌓는 것으로 말씀하시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폭우와 우박덩어리, 폭풍으로 그 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훼파하여 그 기초를 드러내실 것이라고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평안을 외치며 율법을 가지고 잘 지키는 것이 좁은 문 좁은 길로 제시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 가르침에 현혹되어 율법이 자신을 살려주는 것으로 여기는 모든 자들에 대한 심판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었다(참고 살후 2:9-12).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8-13)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예수 그리스도로 집 지어진 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는 이제 율법으로 행하는 것에서 벗어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란 있을 수 없다(롬 8:1). 그것을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것이라 선포하고 그 긍휼만이 심판을 이긴다고 하였다.

산상수훈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천국의 윤리나 새로운 율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으로 이루신 율법의 완성을 드러내는 말씀인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집으로 지어진 자요 곧 교회 된 자이다. 성도는 성령에 의해 말씀의 권위에 사로잡힌 자이기에 늘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산상수훈 초두에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 온유한 자의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이 성도 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1절).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건짐받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시내 산 위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돌판으로 주셨던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1-2)라고 선언하심으로 산 돌로 오셨음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4-10)

 

그리고 마태는 일차독자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5개의 강론, 즉 5-7장 : 산상수훈, 10장 : 제자 파송, 13장 : 천국 비유, 18장 : 천국의 실제에 대하여, 24-25장 : 종말에 대한 강론을 구성하고 그 사이사이 이적들을 기록하였다. 또한 애굽 왕 바로의 치하에서 강에 던져 죽임을 당할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와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 헤롯 왕에게서 죽임을 당할 위기의 내용을 기록하였고,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실패한 이스라엘을 대신한 예수님의 모습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온전히 물리치신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 아니 모세보다 우월하신 왕으로 드러내면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신 것으로 기록하였다.

모세오경의 권위 아래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마태는 예수님의 왕적 권위를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이렇게 본문을 배치하여 기록하였다. 이런 5분법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문학구조 방법이었다. 율법서가 5경이며 시편도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1-41편, 42-72편, 73-89편, 90-106편, 107-150편). 이는 마태복음을 유대인들이 익숙한 모세오경의 율법서 형태로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이 모세오경의 원형인 것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성경에서 “산”은 권세나 힘의 상징으로 두 가지 의미로 제시한다. 하나는 인간의 죄성을 권세로 나타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권세를 상징한다. 이때 하나님의 산은 하나님이 임하심과 관련하여 시온산이나 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집으로 나타낸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렘 51:25)

 

그 외에도 이사야 40:4, 41:15, 미가 1:4, 아모스 9:13 등의 말씀에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산을 무너뜨리거나 평탄하게 하거나 녹게 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파괴하고 무너뜨리시는 산들은 ‘나라’이며 또한 ‘권세자들’이다. 즉 하나님께서 언약에 도전하는 세상적 힘과 권세들을 파하신다는 의미를 산을 무너뜨리는 비유로 표현하셨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 2:2)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게 함은 앞으로 오실 언약의 실체를 말씀하시기 위함이었으며(창 22:1-19),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언약을 맺고 계명을 주셨으며(출 19:20), 성전은 모리아 산 곧 예루살렘 산에 건축되었고(대하 3:1), 말씀 즉 거룩한 자가 시온산에서 나오며(미 4:2, 시 2:6, 14:7) 거기서 주어지는 것이 복이며 영생이라고 하였다(시 133:3). 또한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산에서 변화하심으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여 주셨다(마 17:1-8).

예수님께서 산에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신 것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언약을 베푸신 시내 산에서의 사건을 재연하면서 아니 그 본질적인 원형임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언약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새로운 모세로 또한 새로운 왕권을 가진 메시아로서 율법의 완성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산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드러내셨다. 그래서 말씀의 완성을 요한계시록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

 

산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마치셨으니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볼 문제가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향해 가셨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선언하셨던 의를 이루시는 것(마 3:15), 곧 십자가 죽음으로 율법을 완성하시는 일이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죄인들에 의해 끌려 골고다 산에서 십자가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 산은 하나님께서 자기 집을 세우신 생명의 복이 흘러넘치는 산으로 만드셨다(2025052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마46.0728-0801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202505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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