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창세기

79. 창세기 28:16-22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

불편한 진리 2024. 6. 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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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79

창세기 28:16-22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

 

인간은 본능적으로 성경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특히 야곱에 대한 말씀도 도망을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야 세상을 이길 힘이 되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간절히 구해야 하고 지금 있는 자신의 자리가 벧엘이 되게 하여야 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면 야곱이 십일조를 하기로 서원한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바칠 것은 바치고 헌신해야 한다는 식의 해석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구했다든지 그 하나님을 만나서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평안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자신의 하나님이 되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서 십일조를 하겠다는 식으로 거래를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절). “야곱이 잠이 깨어”라는 말씀은 야곱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뜻이다. 언약의 복을 자기 힘으로 쟁취하려는 상태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데 이제까지 뭘 몰랐는지 알게 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살려주심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되심을 보았고 언약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십자가 은혜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살아난다. 그래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난해한 말씀이 십자가로 연결되어 날마다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세상의 어떤 누구도 신이 찾아오심에 대한 인식이 없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종교는 신을 찾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당에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말하고 그 건물 안에서 예배하거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잘 받고 들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9-11)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1-16)

 

그래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성취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야곱은 하란으로 도망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간절히 찾으며 기도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계신 장소나 시간이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이 말씀은 우리가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예배를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배로 말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찾아오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고 십자가 죽음이 진리에 의한 완전한 예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이 계실만한 시간과 장소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정한 그 시간에 그곳으로 가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을 거룩한 상태로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행위와 공로가 드러나게 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17-18절). “두려워하여”라는 말의 히브리어 ‘야레’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라는 뜻으로 야곱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았다는 의미이다. 복음을 지식으로 배워서 알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일시적인 기쁨이 있고 또 부담이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지식적인 것으로 인해 가벼워진다. 그러나 진리의 영을 통해 알게 되면 십자가 죽음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경외심에 함몰되어 자기 죽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출 20:19-20)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야곱은 “두렵도다 이 곳이여”라고 고백한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그곳을 통해 계시되는 언약의 내용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다. “집”은 ‘바이트’로 ‘집, 가정, 생활의 거처, 가족’이라는 뜻이고, “문”의 ‘샤아르’는 ‘문, 성문, 열림’인데 어근은 ‘뚫다, 쪼개다, 둘로 분리하다’라는 뜻에서 온 말이다. 언약의 실체가 오셔서 찢어짐으로 하늘의 문이 열려야 한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라는 말의 ‘샤캄’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1:5. 8, 13, 19, 23, 31)라는 말씀과 같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19:2, 27, 20:8, 22:3, 26:31). 언약을 자기 힘으로 쟁취하려던 어둠의 존재였던 야곱이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아침, 즉 빛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언약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 언약의 실체를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라는 말씀으로 보여주신다. 즉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머리를 두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 집의 기둥이 세워짐으로 이루어지는 언약 성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의 기둥이 세워져 온전히 성취되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19-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해서만 하늘 성전이 된다. 문이란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안은 구원, 밖은 심판 가운데 있는 상태를 나타내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요 곧 성전이 된다.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7-9)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18-19절). “옛 이름”이라고 하였는데 히브리어 ‘리숀’은 ‘첫 번째의, 최초의, 이전의’이라는 뜻이고 “루스”(히, ‘루즈’)는 ‘떠나다, 빗나가다, 패역하다, 비뚤어지다’라는 뜻이다. 즉 야곱의 첫 번째 상태가 빗나가고 패역한 존재였지만 기름을 부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집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야곱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언약은 한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해 하나님의 집, 성전이 되는 것이 구원임을 계시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으로 처음 이끌었을 때, 또 출애굽시켜 언약을 확인시키셨던 벧엘로(12:8, 13:3) 야곱을 이끌어 아브라함 언약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야곱에게는 이 벧엘로 다시 돌아옴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다.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20-22절). “서원”이란 히브리어 ‘네데르’는 ‘서원, 맹세, 약속’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야곱이 맹세함으로 확인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라는 말씀에서 우리 성경에 번역상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임’이라는 단어이다. ‘임’은 ‘조건’이나 ‘소망’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만일 ~하시면’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야곱이 하나님께 조건을 내세워 거래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 ‘~때문에’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원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뒤에 나오는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는 표현은 무조건 문자적으로 야곱이 십일조를 하겠다는 맹세를 하였다는 말씀이 아니다. 사실 여기 “드리겠나이다”라는 표현은 없다. ‘아사르 아사르’라고 되어 있어 열을 열로 완성한다는 뜻이다. 앞의 말씀과 연결하여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기에 열을 열로, 즉 온전한 진리로 완성하신다는 의미이다(참고 25:27). 언약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나타나는 언약대로 반드시 성취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이다. 벧엘로 완성시키시는 하나님이 십자가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20240616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창79.2816-22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202406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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