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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모임 특별강론] 예수 믿으라는 거짓말 -구원의 확신과 신앙 성숙에 대하여

불편한 진리 2023. 12. 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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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모임 특별강론

예수 믿으라는 거짓말

- 구원의 확신과 신앙 성숙에 대하여 -

 

성경에서 말씀하는 ‘은혜’란 ‘자격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그저 베푸시는 생명’이다. 자격 없는 죄인이란 생명이신 하나님과 차단되어 있다는 뜻이다(창 3:22-24).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라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라고 하셨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구원을 은혜로 받는다(엡 2:8).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주신 은혜”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라는 전제가 있다(롬 3:28, 갈 2:16). 우리의 행위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도권은 우리의 요구와 상관없이 하나님 편에 있다. 그 은혜는 죄와 관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 의가 되게 하심이다(고후 5:21). 그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를 주신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영접하는 것, 믿는 것을 나의 행함으로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성경에는 ‘예수님의 믿음’을 ‘나의 믿음’인 것으로 이해되도록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로마서 3:22, 갈라디아서 2:16, 3:22, 빌립보서 3:9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고 ‘하나님 아들의 믿음’이다.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격으로 표현되었다. 속격, 즉 소유격으로 되었다는 것은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그 출처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히 12:2). 이런 점에서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엡 4:5)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온전히 순종하신 그 믿음이 선물로 주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진리의 영으로 찾아오심이 믿음이다(요 16:13).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이렇게 보자면 내가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찾아오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은 “예수를 믿으라”라고 한다. 나의 의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겠다는 결단이 믿음으로 착각한다. 그리고는 교회에 나온 자들에게 설교나 성경 공부 같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믿는 자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다음의 말씀이 가장 유명하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여기서 “배우고”라는 말의 헬라어 ‘만다노’는 ‘마음을 어떤 것에게로 향하게 하다’라는 뜻의 ‘마드’에서 유래한 단어로 ‘경험하다, 알게 되다, 이해하다’라는 뜻이며, “확신”이라는 말은 ‘피스토스’(믿음)에서 유래한 단어 ‘피스토오’를 썼다. 즉 공부하여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알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믿음 가운데 있는 것이 구원이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이 외에 우리 성경에서 “확신”이라고 번역된 말 ‘플레로포레오’는 ‘가득한, 충분한’의 ‘플레스’와 ‘항상 지니다, 입다, 착용하다’라는 뜻을 지닌 ‘포레오’의 합성어이다(롬 4:21, 골 4:12, 살전 1:5). 즉 하나님의 언약이 온전히 성취된 것이 입혀졌다 혹은 주어졌다는 의미이다. 또한 수동태의 ‘페이도’를 쓰고 있는 것은 ‘설득 당하다, 순종하게 되다’의 뜻으로 표현하였고(롬 8:38, 14:14, 15:14, 딤후 1:5, 12, 히 6:9, 13:18), 능동태의 ‘페이도’를 쓰고 있는 것은 ‘설득하다, 순종하다’라는 의미이다(고후 2:3, 갈 5:10, 빌 1:6, 2:24, 몬 1:21).

그리고 고린도후서 1:15, 3:4, 에베소서 3:12에서는 ‘페포이데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신뢰’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해 신뢰를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3:6에서는 ‘팔레시아’라는 단어인데 ‘개방, 밝히 드러냄, 신뢰, 대담함’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우리에게 소망을 드러내셨다는 의미이며, 히브리서 3:14에서 사용한 ‘휘포스타시스’는 ‘본질, 본체, 실체, 계획’이라는 뜻으로 믿음을 주신 분이라는 본질, 실체에 견고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믿음은 교육과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면 인간 편에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역시 거짓말이다. 내가 확신을 가지면 구원을 얻고 확신이 없다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열왕기하 22:1-23:25(역대하 34;1-35:27)에 보면 요시야 왕이 성전을 수리하고 율법서를 발견하여 제사를 행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7:8-11)

 

이스라엘은 성전 제사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를 가증한 것, 거짓말로 보시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선언하신다. 그들의 제사 행위가 하늘의 영생을 도둑질하는 것으로 보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전한다.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5-10)

 

이스라엘이 그토록 원하였던 온전한 성전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단번에 이루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거룩함을 얻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계시 되어 드러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믿음에서 믿음까지’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까지 이루시기에 그 안에 우리가 믿는다는 행위가 용납될 수 없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살린다’라는 뜻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만 생명이 되게 하신다.

구원이란 하나님 왕국이라는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고 또한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인데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선언은 한마디로 믿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거나 그 왕국이 임하는 것이 아니며, 나의 구원의 확신이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점점 더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의 확신은 자기 언약대로 일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하시는 언약이 분명하며 그 언약에 의해 생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미 생명의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구원에 대하여 “구원을 받았느니라”(요 5:24, 롬 8:24, 엡 1:7, 2:5, 8, 골 1:14),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전 1:18, 고후 2:15, 갈 2:19-20, 빌 2:12),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 24:13, 롬 8:23, 13:11, 고전 6:14, 빌 3:21, 딤후 4:18, 히 10:36, 벧전 1:5, 요일 3:2)라고 세 가지 시제로 말씀한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 구원을 이루기 위해 ‘자라남, 성장,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성경에 이런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엡 4:16, 골 1:6, 10, 살후 1:3, 벧전 1:3, 벧후 3:18).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구원의 세 가지 시제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묵시와 역사 속에서의 표현이다. 묵시, 즉 하늘의 관점에서는 완성된 것이나 역사, 즉 시간 속에서는 이루어져 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결국은 자기 언약대로 이루시기 때문이다(고전 3:6-7, 골 2:19).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5-16)

 

“성숙”이란 말의 헬라어 ‘프로코페’는 ‘프로콥토’(‘앞으로 나아가다, 전진하다’)에서 온 단어로 ‘전진, 진보, 성공’이라는 뜻으로 빌립보서 1:12에서는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고, 1:25에서는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라고 신약에서 딱 세 번 사용된 단어이다. “전심전력”이란 헬라어 ‘멜레타오’는 ‘보살피다, 숙고하다, 도모하다’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4:25에서는 ‘경영하다’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숙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심사숙고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됨이 ‘우리’라는 하나님의 집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교회요 성도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고 또한 살려주시는 은혜로 살아간다. 죄 가운데서 죄를 범하지만 날마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십자가 은혜 안에 되돌려짐을 확인하게 된다. ‘자라남, 성장, 성숙’이란 시간 속의 개념이기에 묵시의 개념으로 보자면 생명, 즉 죽은 존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상태가 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라는 거짓말에 속지 않고 진리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은혜 안에 있다면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된 것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20231230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송년모임특강] 예수 믿으라는 거짓말-구원의 확신과 신앙 성숙에 대하여(2023123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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