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요한계시록

32. 요한계시록 8:6-7 첫째 나팔

불편한 진리 2023. 4. 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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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32

요한계시록 8:6-7

첫째 나팔

 

일곱째 인이 떼어질 때 하늘의 고요함이 있었다. 침묵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는 것인데 성도들의 기도로 표현된다. 거룩하게 된 자들의 기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어린 양의 희생에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되어 땅에 쏟아진다. 이 땅에 내려지는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죽은 자는 이미 그 심판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일곱째 인을 통해 보여주신 나팔 심판의 준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6절). 여기서도 “일곱”이란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언약의 완성을 의미한다. 언약의 완성 안에는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개입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위로만 채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팔로 보여주시는 심판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성도들이다.

일곱 나팔의 심판은 일곱째 인을 떼는 환상에 이어 등장한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마치 일곱 인이 다 떼어지고 난 후 일곱 나팔을 부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일곱 인이 떼어지는 사건, 일곱 나팔이 불려지는 사건, 그리고 뒤에 살펴볼 일곱 대접이 쏟아 부어지는 사건은 동시 다발적인 사건이다. 즉 서로 중첩된 사건들을 다방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본 것은 이 땅의 시간 개념에 속한 것이 아니라 묵시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7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은 익숙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위기를 알리고 사람들을 소집하고 전쟁 때에 사용되었고 특히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또한 해방과 기쁨의 날을 알리는 일에도 나팔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팔을 불어 알리는 여호와의 날의 도래는 악인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의인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여호와의 큰 날이 악인에게는 두려움의 상태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자유와 기쁨의 상태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민 10: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레 23:24)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고 일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율법으로 주신 모든 제도나, 절기 등은 언약의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통해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했었다. 마찬가지로 대속죄일도 그 절정을 이루는 칠월 첫날에 나팔을 불어 속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을 알지 못하고 그것과 관계없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에 참여된 자는 은혜의 날 안에 있음을 나팔 소리로 확인하였다. 첫째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라고 하였는데 우박과 피는 애굽에 내려졌던 두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24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25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26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출 9:22-26)

 

애굽에 우박이 내려진 재앙은 일곱 번째 재앙이다. 그런데 우박만 내린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렸다. 애굽에 있는 나무들 위에 우박이 떨어지고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이 겹치자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출 10:15)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피가 섞였다는 것은 이러한 심판으로 인하여 죽음이 크게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피와 우박과 불’은 에스겔서에서 말씀하는 심판의 요소와도 일치한다.

 

22 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 23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겔 38:22-23)

 

출애굽기에 기록된 재앙과 연관해서도 하나님은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출 9:14), 또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출 10:2)라고 말씀하셨다(출 7:5, 17, 14:18, 16:12, 29:46 등). 이러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과 여호와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심과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는 것은 제단에 희생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뜻이다. 그 하나님이 바로 십자가에서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 그런데 여기서 심판으로 말미암아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라고 하였는데 에스겔서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 12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겔 5:2,12)

 

애굽 땅에 내려진 재앙이 애굽 사람들에게는 심판이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자들에게는 구원이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애굽에 내려진 심판이 삼분의 일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시내 산 언약을 맺으면서 성막을 짓도록 하셨는데 그 성막은 지성소와 성소, 성막의 뜰로 구분되는데 성막의 뜰은 번제단이 있고 그 번제단에 내려지는 심판으로 보여주셨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삼분의 일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부분적이지 최종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일곱 나팔이 울려 퍼지는 것은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신 것과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심판의 모습이 일곱 대접에서도 다시 나타난다(계 16:1 이하). 이런 점에서 나팔 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언약이 성취된 종말을 드러내는 것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요 성도에게는 심판 가운데 있는 세상에서 하늘의 기쁨과 생명을 은혜로 채우심을 알리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0-53)

 

“수목”(헬, ‘덴드론’)이란 ‘나무’인데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즉 선악의 지식 나무와 하나 된 상태에 있는 죄인을 의미하는 것이다(참고 7:1,3). “각종 푸른 풀”이라고 번역하였는데 헬라어 ‘파스 코르토스 클로로스’를 직역하면 ‘모든 황녹색 풀’이다. ‘클로로스’는 ‘누른빛을 띤 푸른색’으로 ‘병든 사람의 색, 주검의 색’이다(참고 6:8). “타 버리고”, “타 버렸더라”라는 말의 헬라어 ‘카타카이오’는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것(마 3:12), 가라지를 불사르게 하는 것(마 13:30), 사람의 공적을 불태운다고 할 때(고전 3:15)와 같은 단어이다. 죽어 있는 상태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고, 모든 땅의 것, 하나님의 의와 상관없는 것을 태우신다고 묘사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1-12)

 

이렇게 보자면 하나님께서 셋째 날에 창조하신 나무와 풀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 창조된 것인데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신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어 종말로 드러났기에 그 존재 의의는 다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것을 생각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 계속 그 의미를 이렇게 나타내고 있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그러므로 성도는 나팔 소리 같은 주님의 음성, 말씀 안에 있는 상태이다. 흔히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기에 삶이 힘들 때 위로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요한계시록을 읽는 것으로 위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본다면 위로를 얻어 환난에서 이겨보자는 믿음의 주체는 나 자신이 된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관점에서 심판 아래 있는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영생을 탐하는 것이 합당하냐를 묻는다. 이런 점에서 나팔을 분다는 것은 심판이냐 구원이냐, 죽음이냐 생명이냐, 땅의 상태에 있는가 하늘의 상태에 있는가를 지금 늘 확인하라는 주님의 음성이다. 어디에 속했는가 하는 기준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상태에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2023040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계32.0806-07 첫째 나팔(2023040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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