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예수님의 이적

요한복음 9:1-12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불편한 진리 2022. 8. 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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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적 22 _안식일에 나면서 맹인 된 자를 고치심

요한복음 9:1-12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마가복음 7:31 이하에 보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실 때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막 7:33-34)라고 하셔서 고치셨다. 그리고 마가복음 8:22 이하에 벳새다의 맹인을 고치실 때 눈에 침을 뱉아 안수하심으로 고치셨다. 

본문은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신 이적인데 이 맹인은 예수님을 직접 찾아간 것도 아니었고 또한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왜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셨나?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신 방법이 다양하고 맹인 고치신 방법도 다 같은 방법으로 하신 것이 아니었다.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바로 눈을 뜨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인데 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굳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나? 맹인이 실로암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2절에 보면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라고 한 것을 보면 감히 안식일에 맹인이 실로암으로 쉽게 찾아가도록 도와주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어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실 의도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제자들이 물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2절). 예수님의 답변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3절)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죄에 대한 개념은 ‘인과율’이었다. 죄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원인에 의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죄를 행위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아니라면 그 부모에게서라도 반드시 죄에 대한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예수님은 이 맹인을 통해 이런 유대인들의 죄에 대한 관념을 폭로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스바냐 1:17에 보면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라고 말씀한다. 즉 죄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맹인을 두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맹인이 되게 하시는 것이나 눈을 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밝힌다(시 146:8). 

그렇다면 죄가 무엇이며 그 죄에서 건져 회복시키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을 말씀하신 구절이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4-5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즉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은 낮이라는 뜻이다. 빛은 낮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간이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3-5)

 

여기서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왜 “우리”가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나? 한마디로 제자들과 이미 하나 된 상태로 말씀하심으로 맹인도 단순히 눈을 뜨게 하신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연합시키시는 일을 하시겠다는 의도가 담긴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맹인을 고치신다는 것은 단순히 눈을 뜨게 하셨다는 것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낮의 사람, 빛의 존재로 만드신다는 구원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낮의 사람, 빛의 존재로 만드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맹인을 거기 그 자리에 두셨던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시는 방법을 성경은 이렇게 밝힌다.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6-7절). “바르시고”라는 말은 헬라어 동사 ‘에페크리센’인데 원형이 ‘에피크리오’이다. ‘에피’(~위에, ~가까이에)와 ‘크리오’(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의 합성어이다. 단순히 진흙을 바른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기름을 발랐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침을 뱉어”라는 말은 헬라어 ‘프튀오’인데 히브리어 ‘야라크’의 역어이다. 그러면 구약에서 ‘야라크’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자.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신 25:9)

 

결혼한 형제가 후사가 없이 죽었을 때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와 아내와 결혼하여 후사를 잇는 시형제 결혼법에 대한 말씀이다. 대대로 자손이 끊이지 않게 하신다는 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이 땅에 보내실 장자를 설명하고 보여주시는 것이 목적이다. 다시 말해서 진짜 장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율법이다. 침 뱉음은 수치스럽게 하고 모욕을 주는 행위이다. 이러한 율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수치요 모욕이 따른다는 것이다. 언약의 말씀과 관계가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민 12:14)

 

미리암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다는 것으로 인해 비난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 12:2)라고 한 것을 보면 본질은 언약의 중보자로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모습을 침 뱉음으로 수치와 모욕 가운데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은 언약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면서 자기 행위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율법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외형적인 것만 붙잡는 종교적 행위만 드러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폭로하신 것이었다. 미쉬나에 안식일 39개 금지 항목에서 10번째가 “루쉬”인데 ‘반죽하기’에 대한 규정이 이렇게 되어 있다. 

 

가루, 모래, 시멘트 등에 액체(물)를 섞어 반죽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그러나 무교병을 수프에 적시거나 쿠키를 우유에 담그는 것은 허용된다. 이들 음식들은 액체와의 접촉에도 불구하고 분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철두철미하게 율법의 잣대로만 예수님을 보았기에 이 규정을 어긴 것에 대해 문제를 삼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예수님은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반죽하여 그의 눈에 바르심으로 유대인들이 율법에 가려 예수님을 못 보는 맹인의 상태라는 뜻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은 단순히 그들의 죄만 폭로하신 것이 아니라 진흙에 침을 뱉어 반죽하여 그의 눈에 바르심으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셨다. 즉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은 새 창조라는 의미이다. 

단순히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본다는 것은 새 창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보내신 것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실로암에서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보내신 분이 계신다는 뜻이고 그 보내신 분에게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고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보내신 분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맹인이 실로암으로 보냄을 받아 보내신 분이 누구인가를 알라는 것이다. 보내신 분이 어떤 분이신가? 스스로 침 뱉음의 모욕과 수치를 당하실 분이다. 다시 말해서 진흙을 바르심으로 기름 부은 자가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셔서 맹인과 같은 존재들을 위해 친히 모욕과 수치를 당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이 이적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나타내고 있는 표적이다. 구약에서 누누이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욥 17:6)

 

9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10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욥 30:9-10)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

 

의인이 침 뱉음을 당하는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심을 십자가로 보여주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에 죽음을 말씀하실 때 침 뱉음을 당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실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마가는 이 내용을 분명히 언급한다.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눅 18:31-33)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65/cf 마 26:67-68)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막 15:19)

 

맹인과 같고 어둠 가운데 있는 죄인이 진리의 말씀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침 뱉음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안식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부르신 은혜로 인함이다. 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교회요 성도이다(2022072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이적22.요0901-12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_안식일에 나면서 맹인 된 자를 고치심(2022072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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