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의 글/칼럼 & 주제글

언약의 성취로 본 맥추절

불편한 진리 2015. 3. 10. 19:49

언약의 성취로 본 맥추절

 

6월의 월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72일이 되어서야 정리하게 되었다. 정리하다가 교회용 월력을 보니 71일에 맥추감사절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맥추감사절은 전반기 감사절로, 추수감사절은 후반기 감사절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 어떤 목회자의 말을 들은 것도 생각이 났다. 맥추절감사절을 통해 목회자에게 전반기 보너스를 지급하고 추수감사절을 지냄으로 후반기 보너스가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뭐 굳이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특별한 기회를 통해 목회자에게 보너스 챙겨 주는 것을 가지고 성경적이니 비성경적이니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절기를 지키는 것을 가지고 성경 말씀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인용하여 적용시키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맥추감사절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여러 가지 제도와 절기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메시야를 대망하게 하는 장치였다.

출애굽기 23:14-17에 보면 '유월절''맥추절' 그리고 '장막절'이라는 세 절기를 매년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세 절기는 하나님의 언약과 연관된 절기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 된 땅에서 구원하셨다.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양의 희생이 있도록 하셨고 그 피를 집 문의 좌우 설주에 바르게 하셔서 그 가정의 초태생의 죽음을 면하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시고 이 달을 첫 달(시작의 달)이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의 월력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폐기하고 유월절이 있는 달이 첫 달이 되게 하셨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애굽에서 건짐 받아 어린양의 희생을 담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 자체가 유월절이 중심이 되고 또한 모든 절기의 중심이 유월절이 된다.

이런 이유로 맥추절은 유월절 이후 일곱 안식일이 지난 후에 지켜졌기 때문에 '칠칠절'(34:22, 16:16)이라고 하기도 하며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50일을 계수하여 지켰기 때문에 '오순절'(23:15-16)이라고도 부르게 된다. 구약 시대의 맥추절은 첫 열매로 추수절을 지키는 것이고, 장막절(초막절, 수장절)은 출애굽 광야 생활을 기억하도록 7일간 초막을 짓고 거기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절기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것으로 주신 것이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의 생활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살았기 때문에 농사하지 않았다(참고 수 5:10-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게 된 배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15:13-21).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셨다. 이스라엘의 공로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절기는 하나님 편에서 제공한 어린양의 희생이라는 은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29에 의하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세례 요한이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전서 1:19에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구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고 밝혀주고 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한 한 죄인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희생이고 그것은 또한 자기 백성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이다. 그렇다면 맥추절과 장막절을 지키는 이 역사적인 사실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사는 역사 세계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새 생명의 통치를 이루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증으로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고후 1:22, 5:5, 14:16-17).

따라서 오순절(맥추절)에 오신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원의 결과이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가르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16:13-15).

이런 점에서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으며 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모든 성도가 성령님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또한 믿는 자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흔히 맥추감사절 설교에 인용되고 있는 신명기 16:8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에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나눌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절을 이렇게 지켜야 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유의하여 보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가나안에서 살게 된 것을 기억한다면 그들의 현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을 이웃을 위하여 나누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의 기업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풍성한 것을 우리가 누리고 있고 또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맥추절의 참된 의미를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처럼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맥추감사절을 지키면서 전반기 감사를 하며 얼마의 돈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때우는(?) 행위로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면 성령님의 온전한 이끌림을 받아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드러내며 살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때에 성령 강림으로 나타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때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다(2:45). 이것이 성령 받은 자의 삶이요, 성령으로의 삶이다. 많이 가진 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행동은 '모든 것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덕분이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오심을 의미하고 그 날은 생명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에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큰 축제의 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날로 기뻐하며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서 농사를 잘되게 해주셨으니, 혹은 사업이 잘 되게 해주셨으니 감사하다는 개념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한 맥추절을 지키면서 감사 헌금만을 바치는 것에 끝난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의도와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실로 맥추절이란 유월절과 연결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었다(9:9-10, 2:16-17). 그러기에 우리가 구약에 제시된 맥추절을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지켜야 할 것 같으면 역시 유월절도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는 관계없이 구약 시대에 사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로 보내어 주신 성령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는 성도이지 절기와 제도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다. 때문에 성도는 절기나 제도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만 만족할 줄 아는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날마다 유월절, 맥추절의 성취를 십자가로 경험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주의 영이 나누게 하시는 희생정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http://blog.daum.net/revealer 김영대/200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