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정신
“총대는 내가 메겠다!” 세상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표현이라면 교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는 내가 지겠다!” 흔히 이 말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선두로 나서겠다고 하는 표현 정도로 쓰여지는 것 같다.
그러면 과연 성경에서 십자가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책임을 지는 정도나 선구자로서 감당하는 정도의 의미로 나타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신 뜻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마태복음 10:38에 보면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파송 하면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주님보다 이 땅의 가족을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치 않다고 하셨다(마 10:37). 그리고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도 예수님께 합당치 않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10:38의 말씀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좇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는 말씀이다. 즉 우리 성경에는 십자가를 지기는 지되 주님을 좇지 않는다는 의미로 되어 있으나, 본래 의미는 주님을 좇고 따르기는 하되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강조하는 바는 주님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는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십자가를 지느냐 지지 않느냐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초점이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따르되 십자가를 지지 않고 따른다면 주님을 따른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좇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면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이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는 사형 형틀이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단순히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는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내려진 사형 선고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성경이 말하는 역설이 있다. 예수께서 당하신 찔림, 상함, 징계, 채찍 맞음 등 고난에 대한 일련의 과정과 십자가 죽음은 우리 인간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사 53:4-6).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죄인이 받아야 할 진노와 저주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홀로 담당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자기 희생이었다. 이렇게 희생을 이루신 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자이며, 죽음을 향해 가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곧 내가 받아야 할 진노, 내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이 십자가이다. 그러기에 내 대신 홀로 저주를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항상 짊어지고, 예수님의 삶을 항상 재현해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십자가 정신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 활동의 중심이지 우리 일의 중심이 아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환언하면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희생을 말하지 않는다면 복음이 아니며, 그 복음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면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와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가 자기 백성들의 죄악을 담당하는 십자가였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도록 말씀하신 십자가는 단지 주님의 자취를 따라가는 십자가일 뿐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고백했다. 또한 갈라디아서 5:24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십자가의 희생 정신을 담고 사는 자이다. 즉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는 모습이 당연히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 고난이 있지만 특히 성도들에게는 고난이라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난의 출발을 어디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출발되는 것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주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내 고난에서 주님의 고난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주님의 고난에서 내 고난을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별 차이가 없는 문제 같으나 사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내가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 고난을 들어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고난이라는 자기 희생의 길을 가셨고, 자기 희생의 길을 가신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희생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그런 삶인지 우리 자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고난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우리는 늘 주님께 나 자신의 고난의 해결을 위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할 수 없어서 질 수밖에 없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이요, 자기 희생의 길이기에 우리 자신도 주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자로 자기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의 모습으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교회당의 지붕에, 여자의 목을 아름답게 하는 장식품으로서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이 죽는 십자가여야 한다. 십자가를 져야만 비로소 구원에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십자가는 내가 져야만 하고 내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고백하며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의 모습이 참된 성도의 모습이다(2000.12.14/김영대).
'●─── 복음의 글 > 칼럼 & 주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로 만사를 변화시킨다? (0) | 2008.06.18 |
---|---|
예수님 없는 말씀 (0) | 2008.06.07 |
실종된 십자가-최근 기독교서점을 방문하고- (0) | 2008.06.07 |
능력 (0) | 2008.06.04 |
값없는 구원 (0) | 2008.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