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요한계시록(오전강론) 78

19. 요한계시록 5:6-7 책을 취하신 어린 양

https://youtu.be/7t5DFKbanyA 요한계시록 강론 19 요한계시록 5:6-7 책을 취하신 어린 양 사람은 어떤 특정한 종교적 행위가 있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예배, 기도, 찬송, 헌금을 하면서 교회 다니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으로 여긴다. 그런데 문제는 용어만 다를 뿐이지 세상의 모든 종교에 이런 종교적 행위들이 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이란 별반 차이 없는 종교 생활에 불과할 뿐이다. 성경에서 복음은 종교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찾아오신 것이지 우리가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생명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교회마다 이런 전제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우..

18. 요한계시록 5:1-5 인을 떼시기에 합당한 자

https://youtu.be/gGvD3qXNKH8 요한계시록 강론 18 요한계시록 5:1-5 인을 떼시기에 합당한 자 열려 있는 하늘 문을 통해 올라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해 요한 사도에게 보였던 하늘은 보좌가 중심이 된 곳이었다. 보좌는 다스림의 상징이고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 심판을 통과한 자만 다스릴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일곱 등불은 일곱 영인데 언약을 완성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교회를 장악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의 보좌가 둘려있다는 것은 주님의 다스리심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고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창조 때의 궁창을 배경으로 홍해를 건넌 출애굽의 구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 생물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십사 장로들이 자기 화관을 보..

17. 요한계시록 4:9-11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https://youtu.be/NUHtCOr7pLI 요한계시록 강론 17 요한계시록 4:9-11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우리는 한글을 읽을 수 있고 인쇄된 성경책이 있기에 늘 성경을 볼 수 있으며, 보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땅의 시각이고 죄인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성경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요한계시록을 땅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세상적 지식의 차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늘의 것을 땅의 것으로 만드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롬 1:21-23). 1:9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라고 말씀한 것에 근거하자면 요한 사도가 하늘을 본 것은 단순히 혼자 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 된..

16. 요한계시록 4:4-8 이십사 보좌와 네 생물

https://youtu.be/5el6Qx9TOks 요한계시록 강론 16 요한계시록 4:4-8 이십사 보좌와 네 생물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목사가 어떤 신학을 지향하느냐 또는 교회 역사 안에서 세워진 어떤 교리와 신조를 받아들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보수적이며 개혁적인 것을 지향하는 교회나 오순절 신학을 지향하는 교회나 혹은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교회이든 상관없이 교회만 크게 키우면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다. 교인들의 수를 많게 하는 일이라면 목사는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다. 개척 교회를 열어서 몇 개월 혹은 몇 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목회자만 대접받고 인간 취급받는 세상이 지금의 한국 ..

15. 요한계시록 4:1-3 하늘에 열린 문

https://youtu.be/QscPYVEqxDk 요한계시록 강론 15 요한계시록 4:1-3 하늘에 열린 문 사람들이 아는 심판은 지진이나 화산폭발, 태풍, 해일 등의 엄청난 재난이나 화재, 건물의 붕괴 등으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것에 국한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구원을 그러한 재난을 당하지 않거나 벗어나 내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성경에서 ‘구원과 심판’이라고 하였을 때 구원은 ‘생명’이라는 뜻이고 그와 반대 현상이 즉 ‘사망’, ‘영원한 죽음’이 심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재난이나 큰 사건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그 자체로 심판 아래 있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대적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따르지 않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14. 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https://youtu.be/O1SeM17G9b0 요한계시록 강론 14 요한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복음에 이끌려 가는 삶이기에 어떤 특별한 행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는 것이라고 늘 말씀드린다. 그럴 때 대부분의 반응은 무기력하게 아무 목표도 없고 비전도 없이 살아가는 삶이라고 착각한다. 성도는 삶의 목표나 비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지만 이 땅에서는 여전히 죄인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우리의 비전이나 목표가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음에 이끌려 가는 삶을 본문에 근거하여 미지근한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

13. 요한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 교회

https://youtu.be/L_9gYp7T4Pc 요한계시록 강론 13 요한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 교회 사람들은 모임을 만들고 교회라고 간판을 걸면 그것이 자동적으로 주님의 교회가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한 번 교회는 영원한 교회!’라는 구호로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교회를 영원한 교회이기를 원한다. 만약 그런 식의 교회라면 지금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존재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달리 책망과 경고가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회는 형식으로 설정되거나 제도적인 교회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한몸된 교회는 창세 전에 이미 확정되었고 완성형으..

12. 요한계시록 3:1-6 사데 교회

https://youtu.be/B7XnwyhD2ZM 요한계시록 강론 12 요한계시록 3:1-6 사데 교회 예전에 ‘교회가 살아 있다’ 혹은 ‘죽었다’라는 말을 교인들의 입을 통해 간혹 들었다. 아마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용어를 빌려서 말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 말을 쓰는 의미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말하는 뉘앙스로 봤을 때 교인들의 활동성이 왕성한 여부에 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교인 수의 부흥, 교회 시스템의 발전이라는 외형적 성장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사데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

11. 요한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https://youtu.be/gSWw71dJNSA 요한계시록 강론 11 요한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을 잘 보면 19절만 칭찬이고 26절 이하에서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을 제외하고 20-25절까지 여섯 절이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가 이 본문을 대할 때도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하였길래 책망과 경고를 이토록 많이 받았는가 하는 관점이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과 교회 아닌 모습이 어떤가를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20절을 보면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네..

09.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

https://youtu.be/44WfXlo17Rk 요한계시록 강론 09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 우리는 땅의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의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를 안다고 떠벌린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는 것이 끝없이 허상을 좇아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2-3)라고 하였다. 눈에 보이는 땅의 것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위의 것은 영원하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