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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론 005
시편 5:1-12
의인에게 주는 복
본 시는 “다윗의 시”이다. 즉 다윗 언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유대인들에게 시편 4편이 ‘저녁 기도’인 반면 본 시는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3절)라는 표현에 근거하여 ‘아침 기도’로 알려져 있다. 4편이 현악기가 동원되는 노래라면 본 시는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로 관악기가 동원되는 노래이다.
야훼 하나님께 탄식을 호소로 시작하여(1-2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윗의 관점에서 죄악을 거부하시는 분으로 정의하면서(3-6절), 의로운 자는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라고 고백한다(7-8절). 악인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죄악을 척결하고 의인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면서 시를 마무리한다(9-12절).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1절). “나의 심정”의 ‘하기그’는 ‘묵상, 탄식, 한탄’이라는 뜻으로 고통 중에 나오는 마음의 표현이다. “헤아려 주소서”의 ‘빈’은 ‘식별하다, 분별하다, 지각하다, 이해하다’라는 뜻이다. 다윗은 야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원하고, 또한 자신의 탄식을 이해해 달라고 간구한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서 서지 못하리이다”(5절)라는 말씀과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그 누구도 야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없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렇게 간구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 안에서 간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실 언약의 성취자에 의해 말씀이 이루어진다면 언약의 실체와 하나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의인으로 오실 메시아 안에서 다윗은 하나의 언약으로 묶여있기에 이렇게 간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신약에서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3-14)
“기울이사 … 헤아려 주소서”라는 표현을 명령형으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을 향해 명령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되어 명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왕 노릇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2-3절). 다윗은 왕의 자리에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2절)이라고 불렀다. 다윗이 이렇게 표현한 것은 단순히 야훼 하나님이 상왕이 되신다는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과 하나 된 왕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객체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하나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세상 나라와는 다른 나라로 인간 왕이 없어도 되는 나라임을 드러내는 것이 다윗의 자리이다(참고 신 17:14-20). 결국 다윗 언약을 통해 오실 하나님을 계시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살해하였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과 ‘너의 하나님’을 구분하셨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자들에게 ‘나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는 ‘나의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역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이기에 이제까지 불렀던 ‘나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나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우리가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가능하다. 오직 십자가에서만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침”(3절)이란 빛이신 하나님 안에서 기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4-6절). “머물지 못하며”(4절)의 ‘구르’는 ‘함께 거주하다’라는 뜻이다. “오만한 자들”(5절)의 ‘할랄’은 ‘밝게 비추다, 자랑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을 밝게 비추고 드러내어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행악자(들)”(5절)의 ‘아벤’(아웬)은 ‘헛됨, 거짓, 사악, 불행, 고통’이라는 뜻이다. “거짓말하는 자들”(6절)은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자이다.
결국 “죄악, 오만한 자들, 행악자들, 거짓말하는 자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 속이는 자”를 죄악 가운데 있는 상태,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상태를 다양한 표현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신다. “미워하시며”(5절)의 ‘사네’는 ‘미워하다, 증오하다, 가증하게 여기다’라는 뜻이고, “싫어하시나이다”(6절)의 ‘타아브’는 ‘가증하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로 가증한 자였다.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3-7)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7-8절). “사랑”(7절)이라고 번역하였는데 ‘헤세드’로 ‘은혜, 인자, 자비, 사랑’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하게 입은 자가 “주의 집”(7절)에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7절)의 ‘보’는 ‘들어가서 하나 된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집이 된다는 뜻이다. 나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란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표현이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8-10)
“성전”(7절)의 ‘헤칼 코데쉬’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궁전’이라는 말이다. 즉 야훼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궁전, 곧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이다. 우리 성경에서 “성전을 향하여”(7절)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성전 안에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집이 된 자가 야훼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예배”(7절)라는 단어의 ‘샤하’는 ‘구부리다, 절하다’라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표현하는 의식으로 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원수들”(8절)이란 단순히 다윗 개인의 원수가 아니라 언약의 원수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다윗은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8절)라고 고백한다. 다시 말해서 다윗을 주의 의로 인도하시기에 의의 원수이다. 따라서 언약의 원수는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롬 5:10).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9-10절). 다윗은 원수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신실함이 없고”(9절)라는 표현은 ‘확고하고 준비되어 정확하게 세워진 것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죄인의 모습을 열린 무덤, 즉 진리를 간절하게 원하지만 진리로 채우지 않는 죽음의 상태라고 바울 사도는 전하였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0-18)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11-12절). 이미 앞에서 선언한 악행자들, 입에 진리가 없어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자들과 대비하였을 때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11절)이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원수들이 득세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단순히 육의 도움이 아니라 언약의 원수를 척결하고 언약 백성들을 야훼 하나님 안으로, 주의 집으로 이끌어 하나 되게 하시는 은혜를 구한 것이다.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언약 안에서 구한 것이고 곧 언약의 실체가 오셔서 이루실 것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물론 언약 안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이미 하나 된 상태에서 말이다. 이것이 의인,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영생의 복이다(2026032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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