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디모데전후서

16. 디모데전서 6:11-16 하나님의 사람

불편한 진리 2025. 1. 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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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강론 16

디모데전서 6:11-16

하나님의 사람

 

1장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딤전 1:1)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 1:2)에게 이 말씀을 서신으로 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아들이 된 자에게 진리를 넘겨주는 것이 디모데전후서이다. 진리를 넘겨주는 이유는 진리 안에서 같은 진리의 말씀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11절). “오직”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데’는 ‘그러나, 그리고, 지금’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감탄사가 있다. 11절 이하는 거짓 교사들이 돈을 위해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과 대조하여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정관사가 없다. 직역하면 ‘그러나 오! 당신은 하나님이 된 사람이여!’라는 말이다. 즉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과 하나 된 자’는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한다.

구약에서 모세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고(신 33:1, 수 14:6, 에 3:2, 시 90:1)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자(삿 13:6, 8, 삼상 2:27), 사무엘(삼상 9:7-8, 10), 다윗(대하 8:14, 느 12:24, 12:36), 엘리야, 엘리사와 선지자들(왕상 13:2-14, 왕하 1:9-13, 왕하 5:8 등)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특징적인 면이 다음의 말씀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왕상 12:22)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왕상 17:24)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진리를 드러내는 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 진리의 말씀이 임하여 하나님과 같이 된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한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4-17)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때 하나님 앞에 정관사 ‘호’가 붙어 있다. 즉 구약에서는 언약의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자들에 대한 표현이었고 신약에서 기록된 말씀으로 그 하나님께 속한 자로 구원하여 온전하게 만드신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정관사를 붙이지 않은 것은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 됨이 이루어진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요 10:34-35).

“이것들”은 이미 앞에서 말한 ‘돈, 경제적 이익’에 대한 것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 나오는 인간의 자기 의를 위해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피하고”의 ‘퓨고’는 ‘도망하다, 멀리하다, 피신하다, 탈출하다’라는 뜻인데 명령형으로 말씀하였다. 고린도전서 6:18에서 “음행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10:14에서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라고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말씀하였는데 우리가 스스로 피하거나 도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탈출하게 해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약속의 말씀으로 진리의 영이 탈출시켜 이끌어 주셔야 한다는 의미이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는 신앙생활의 덕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이다(롬 1:17, 행 3:12-16, 롬 3:22, 요일 4:8-10, 살후 3:5, 마 11:29). “따르며”의 헬라어 ‘디오코’는 ‘퓨고’(피하다)의 반대어로 ‘뒤좇다, 추적하다, 박해하다, (어떤 자에게) 소속시키다’라는 뜻으로 명령형이다. 즉 우리가 따르며 좇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으로 주셨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계속 속하도록 만들어 완성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정리하자면 다른 교훈을 따르는 자기 의를 추구하는 상태에서 탈출시켜 진리의 아들로 하나님이 된 자들은 의와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계속 속한 상태가 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그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싸우라”와 “취하라”라는 표현이 중수디포태로 표현하여 하나님이 된 자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싸우는 싸움이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충신”이라고 번역한 단어가 ‘피스토스’이고, “진실”이라는 말은 ‘알레디노스’로 ‘진리’라는 뜻이다. 즉 믿음이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께서 정결을 상징하는 흰말을 타고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시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 싸움의 절정이 십자가로 이미 승리는 이루어졌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14:6). “취하라”라는 말의 헬라어 ‘에필람바노’는 폭력적인 체포에 대한 용어(눅 23:26, 마 14:31, 막 8:23, 행 16:19, 18:17, 21:33, 히 2:16 등)로 ‘(강력하게) 잡다, 붙잡다, 돕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믿음을 고수하도록 싸우시는데 그 목적은 영원한 생명으로 강력하게 붙잡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라고 번역하였는데 ‘에이스’는 ‘~안으로, ~을 향하여, ~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증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이미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증언”이라는 말의 ‘호몰로게오’ 또는 ‘호몰로기아’는 ‘호모’와 ‘로고스’의 합성어로 ‘동일한 것을 말하다, 말에 동의하다, 합의하다, 일치하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의 말씀을 한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의 말, 곧 진리를 말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라는 말씀은 우리가 싸워야 하는 싸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강력하게 붙잡아 생명을 주심으로 같은 진리의 말씀을 하게 하신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이 ‘선한 증언’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을 하나로 나타내신 싸움으로 하나님이 된 자들에게도 같은 하나의 진리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13절).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이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면서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라고 물었지만 진리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는 데 넘겨주었던 자이다. 즉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든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죽은 자 앞에서든 오직 하나의 진리를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바울 사도는 진리를 전하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요 12:49-50)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충성된 증인”(계 1:5)이신데 그분과 같은 하나의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연합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4절). 우리 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라고 번역하여 마치 미래에 오시는 것처럼 이해되는데 “나타나실”이라는 말의 ‘에피파네이아’는 ‘엠파네스’(히브리어 ‘아마르’나 ‘야다’의 역어이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나타남, 출현, 계시’라는 뜻으로 명사 속격으로 표현되었다. “지키라”라는 말의 ‘테레오’는 마음에 품고 새긴다는 뜻으로 과거형으로 기록하였다. 여기서 “명령”이라고 번역한 ‘엔톨레’는 요한복음에서는 ‘계명’이라고 번역하였다.

정리하자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때까지’,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은혜를 입히시는 때까지 흠도 없고 비난받을 것이 없는 이 복음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새기도록 하신다’라는 의미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그 하늘의 은혜를 입혀 마음에 품고 새기게 하심으로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로 완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새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품는 것이다. 이것을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에 완성하신 것이다(요 15:9-12).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15-21)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15-16절).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없고, “기약이 이르면”이란 말은 ‘특정한 때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14절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말씀한 것이므로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라는 말씀을 쉽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이시고, 홀로 통치자로서 구약에서 말씀한 그 왕이시며, 그 주인으로서 주님이시라는 뜻이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란 죽음이 없기에 유일한 생명이라는 뜻이며,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란 어둠과 전혀 관계없는 빛이신 분이라는 뜻이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란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여 같은 말을 하게 된 자가 하나님과 같이 된 자로서 하나님의 사람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진리가 된 자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진리를 넘겨줌으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오직 존귀와 영원한 권능이 그분께만 돌려진다(2025011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딤전16.0611-16 하나님의 사람(2025011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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