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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79
요한계시록 20:7-10
천 년이 차매
어릴 적에 교회 생활에서 가졌던 의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이 사탄보다 강하시면 애초에 꼼짝 못하게 만드시든가 아니면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셔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땅히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었는데 중학교 때 전도사님이라는 분이 오셨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친구가 제가 하고 싶었던 이 질문을 하였다. 그때 전도사님의 답변은 하나님께서 제한적으로 사탄의 활동을 허락하신 상태에 있지만 최후 심판 때 지옥불에 던져 넣어서 멸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답변을 듣고는 더욱 큰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심판 때까지 사탄의 활동을 허락하고 용납하셔야 되는가? 심판하려면 지금 하시지 왜 나중에 하시는가에 대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사탄의 활동을 그대로 두심으로 사람들이 계속 죄를 짓도록 허용하셔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하여 마땅히 해결할 수가 없었고 또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신학을 하게 되었고 복음을 알게 된 후에 답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 본문은 그 답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말씀을 나누면서 정리해 보자.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7절). “천 년이 차매”라는 말의 ‘텔레오’는 ‘결론짓다, 완성하다, 성취하다, 실행하다, 끝내다, 약속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3절에서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텔레오)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3절에서 7절로 이어지는 말씀이다. 그래서 4-6절 말씀을 10절 이후에 연결해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2절에서 “용”을 “사탄”으로, 3절에서 “무저갱”을 “(감)옥”으로 대치하여 사용한 것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천 년이라는 상태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늘 미혹이 있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혹을 하지 못하는 때가 있지만 미혹이 있게 되는 상태를 “천 년이 차매”라고 표현한 것이다. 즉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흔들림이 있다는 뜻이다. 율법적 행위와 그 공로에 대한 만족을 믿음의 증거라고 여기는 옛날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물음은 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냐?”라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6-2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미혹이 있는 일로 인해 흔들리기보다 더욱 말씀을 좇아감으로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말씀의 완성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로 만들어 내시고 그 안에 십자가만 남기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 이렇게 전했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3-6)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8절). “곡과 마곡”이란 표현은 에스겔서의 말씀을 근거한 것이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마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5 그들과 함께 한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6 고멜과 그 모든 떼와 북쪽 끝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내리라(겔 38:1-6)
“곡”의 히브리어 ‘고그’는 불분명하나 ‘산’을, “마곡”의 히브리어 ‘마고그’는 ‘확장’을 뜻하는데 기원은 야벳의 아들이다(창 10:2). “로스”라고 번역한 말은 히브리어 ‘로쉬’로 ‘머리, 우두머리’를 지칭한 것이다. 그래서 바른성경에서는 “우두머리 왕”, 공동번역에서는 “맹주”, 가톨릭성경에서는 “으뜸 제후”, 킹제임스흠정역에서는 “최고 통치자”라고 번역하였다. 마곡 땅의 메섹과 두발의 우두머리 왕이라는 “곡”이 유다를 괴롭혔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겔 38:17-23).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스라엘 산”에 모여 평안히 거할 것이다(겔 38:8). ‘산’(곡)은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죄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며 반대로 이스라엘 산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모으심으로 대적자들을 심판하여 하나님 되심의 권세를 나타내시겠다는 의미이다.
에스겔서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백성이 곡과 마곡에게 핍박받은 것을 계시록에서는 교회에 대한 악한 미혹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사탄(용)과 그를 따르는 악한 세상 전체가 교회를 핍박하는 때를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곡과 마곡에 의한 핍박과 동일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공격은 구약 시대에 유다 백성이 겪어야 했던 극심한 핍박 중의 하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약 시대에도 죄악으로 인해 여러 번 이웃 열방에 던지신 바 되어 핍박을 받았다. 그들이 겪은 핍박이 극심했던 한 시대를 말하면서 곡과 마곡의 핍박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대적자에 대한 싸움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곡과 마곡을 세상의 어떤 특정한 나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든지 한 시대에 국한 된 어떤 인물로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천 년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의 특정한 나라나 인물이라는 존재의 세력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유다나 이스라엘을 핍박한 자들은 그들이 힘이 강력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그들에게 내어 주셨기에 그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 의지하는 모습으로 드러났기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경은 증언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곡과 마곡”은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다시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 의를 생산해 내는 것으로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대적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시 2:1-3)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의 완성이고 그 율법의 완성을 자기 백성에게 은혜로 베푸심의 상징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라고 하였다. 즉 내가 자기 의로 싸운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싸우셨기에 이루어 내신 완성이다. 이런 점에서 대적하는 자들의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을 생각나게 한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4-18)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언약의 진짜 후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은 상태가 될 것이나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자들은 바닷가의 모래와 같아 그 숫자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야 할 대상임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이고 ‘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싸움으로 하나님의 “내 언약” 안에서 “내 교회”로 삼으신 은혜가 주어졌기에 천 년이라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9절). “성도들의 진”이란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스라엘 진”(출 14:19-20)이라고 한 것을 생각나게 하는 표현이다. 이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처소”였다(출 15:13, 17). 따라서 “성도들의 진”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지칭한다. 그러기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이다. 광야의 과정을 거치는 ‘진’이었지만 결국 ‘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비진리가 온 땅을 덮고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널리 퍼뜨림으로 “진”과 “성”이라는 십자가 사랑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된 자들을 에워싼다는 의미이다. 거짓 선지자들, 거짓 교사들 그들은 끊임없이 율법적 행위를 통해 하늘의 영생을 넘보는 자들이며 자기 의를 힘써 세우는 자들이다. 그것을 진리라고 내세우며 눈에 보이는 교회를 장악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라고 하였는데 “태워버리고”의 헬라어 ‘카테스디오’는 ‘먹어 치우다, 삼키다’라는 뜻으로 하늘의 말씀에 의에 삼켜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그 모든 것이 말씀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한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1)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10절). “불”, “유황”은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어라고 하였다. 내가 마귀라는 차원에서 이 말씀을 보자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심으로 그동안 비진리로 살고 있던 내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무너지고 말씀 안에서 새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으로 새롭게 되지 못한다면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라는 말씀은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둘째 사망에 있는 자들이 겪는 상태,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문자적인 율법을 받아 행위를 쉬지 못하는 상태를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 아래 있는 것으로 말씀하였다. 결국 본문은 대환난으로 해석하여 겁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심으로 죄 가운데서 내가 죽고 생명으로 살아나는 은혜를 누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말씀으로 구분하여 보여주신 것이다(20240602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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