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의 글/칼럼 & 주제글

[특강] 종교와 복음-다시 생각하는 복음

불편한 진리 2021. 6. 28. 18:22

https://youtu.be/InzuiEcYGek

 

종교와 복음

- 다시 생각하는 복음 -

 

글을 시작하며 - 종교와 경전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식주(衣食住)이다. 모든 삶의 중심이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의식주를 해결함에 있어서 웬만한 것들은 현대의 과학문명으로 우리의 손에서 다 가능하다고 믿는다.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와 감정에 관한 것은 자기 수양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며, 지식과 같은 지성에 대한 것은 학식을 추구함으로써 해결하지만 이따금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는 것이 있다. ()과 사(), ()과 망() 같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에는 종교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한계나 결핍으로 인해 종교의 필요성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종교적이라고 본다면 사실 무신론자란 있을 수 없다.

종교’(宗敎)라는 말의 언어적 의미는 인간의 모든 관계에 근본이나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부모와 자녀를 연결하는 따스한 도덕적 관계를 ’()라고 한다면 종교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연결하거나 결합시켜 주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게 종교가 단지 신과 인간의 관계를 결합시켜 주는 차원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사전적 의미로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정의한다. 즉 나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학문적으로 종교에 대해 말할 때에 흔히 자연종교와 계시종교로 나눈다. ‘자연종교란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 신이 있음을 깨닫고 경전이나 양심에 따라서 섬기나 계시종교란 신이 자신을 나타내 주신 것에 근거하여 신을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 편에서 신을 찾아 나가는 것이 자연종교라면 신이 인간을 찾아온 것을 계시종교라 한다. 자연종교의 출발점이 인간이라면 계시종교의 출발점은 신이다.

그러나 사실 자연종교이든 계시종교이든 각각 나름대로의 형태로 계시가 있다고 주장을 하고 그 근거를 경전으로 제시한다. 순전히 경전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이렇게 보자면 그 경전의 내용이 궁극적으로 신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신이 찾아 오셨다는 내용을 전하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다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면 기독교의 성경은 단순한 경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자체에 대하여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성경에서 확인해 보자.

 

계시의 출처와 내용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는 것으로 그 출처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벧후 1:21).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무엇인가? 15절에서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17) 하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착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자들은 대부분 기록된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왜 그런가? 성경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인간의 말도 기록되어 있고 심지어 마귀의 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말, 마귀의 말들, 이렇게 기록된 모든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기록된 모든 말씀을 통해 오직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가? 그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성경의 내용을 가장 잘 요약한 핵심적 표현이 바로 언약’, ‘약속또는 계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을 구약, 신약 즉 옛 약속, 새 약속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하신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의 내용이 언약이다.

하나님은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분명한 뜻과 계획을 따라 일관된 목표를 향해 일하신다.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대로 약속을 이루신다. 천지창조 이후로 새로운 나라로 회복하시는 약속을 이루시는데 그것을 성경에서 복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은 이 언약을 성취하시는 차원의 복음이다.

 

복음이란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이란 말 그대로 하자면 복된 소식, 즉 좋은 소식이나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엇이 좋은 소식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소식은 의식주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어 행복해지는 것, 재산이 불어나는 것, 사회적으로 더 확장되는 것 등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영원한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르게 되는 죽음이라는 결론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극복되어야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죽음을 안고 사는 자는 영원을 누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은 결코 좋은 소식이나 기쁜 소식이 될 수 없다. 죽음으로 인해 유한한 존재가 알면 얼마나 알고, 경험을 하면 얼마나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좇아 살아간다. 그러나 성경은 최초의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 죄의 권세 아래 매인 존재가 되었고 그로 인해 죽은 존재라고 선언한다(6:23).

그렇다면 죽음과 유한한 존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영생이고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좋은 소식이란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리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떤 인간도 죽음의 자리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하신 분이 영원하도록 만들어 주셔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하나님만 영원하시다고 선언하면서(17:7-8, 10:10, 딤전 1:17) 그분이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이렇게 나타내셨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1-4)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해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인간의 혈통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성령에 의해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고 확증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선언이다. 그래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복음은 사람의 뜻에 따라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명명한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12)

 

언약의 말씀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등 또한 그들에 이어 후손과 언약을 맺으신 사실을 볼 수 있으며 그 언약의 계열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약속한 메시아(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의 하나님께서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셨고 성경은 오직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24:27, 5:46).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5:39)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1:1-2)

 

이것이 바로 종교와 복음의 차이점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종이 한 장 정도의 견해 차이가 아니라 서로 맞닿을 수 없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아 나가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생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그 언약하신 대로 찾아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하나 된 하나님 왕국을 이루시는 것이다.

구약에서 약속하신 그 하나님께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언약을 성취하는 죽음을 이루셨다. 그렇다면 그분이 왜 십자가에 죽어야 하셨는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다. 구약 시대에 계약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걸고 하였다. 동물들을 쪼개놓고 상대방과 함께 그 사이를 지나는 방식이다. 누구든지 계약을 깨뜨린 자는 이 동물들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만 그 쪼갠 동물들 사이로 지나가셨다(15:12-21). 하나님께서 자기 죽음을 걸고 책임지시겠다는 의미이다.

그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깨뜨리는 길로 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셨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성취라고 성경은 선언한다(22:14-20). 이렇게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셨다(3:36, 6:4-5, 고후 5:21). 그러므로 구원, 영생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6-18)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2:21/10:13)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요엘서 2:32에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한 말씀을 주의 이름으로 대체했다. 즉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에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기에 그 이름이 구원의 이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들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라고 하였다. 그 이름의 의미를 마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죄에서 구원이 되는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마태복음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단순히 입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40)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언약으로 나타내셨지만 그 뜻을 아는 자는 이 땅에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의 뜻을 전혀 모르는 죄인이라면 믿음이란 애초에 나의 행위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성령의 보증 - 은혜의 복음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우리에게 예수 믿는다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고린도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6:7-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후 떠나시면 성령으로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다.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 성경에서 책망하시리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알기 쉽게 말하자면 드러내다’, ‘폭로하다라는 뜻이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드러내고 폭로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죄와 의, 심판을 드러내심으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3-14 / 14:26, 15:26 참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내 영광을 나타내고 내 것을 알리시겠다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오직 십자가였고 그것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죄와 의와 심판과 관련하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가르치시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주어진 믿음에 대한 보증도 성령께서 친히 하신다(고후 5:5, 1:13).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우리는 막연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유대교이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 것이 아닌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께서 믿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말씀에 근거하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어진 것이 구원이고 영생이다. 성경은 이것을 은혜라고 선언한다. ‘은혜자격 없는 자에게 그저 베푸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 영생이란 믿음에 의한 구원이고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은혜로 베푸신 것이다(1:7, 딤후 1:9, 3:7).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1-24)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다. 22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믿는 행위인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헬라어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하나님의 의가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주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믿는다는 것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졌기에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 십자가!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과 하나 되어 영생을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는 길만 다를 뿐이지 정상에서 다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은 우리가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넣어 주시는 나라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원리와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이다. 내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19:26)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떠나 갔을 때에 제자들이 몹시 놀라며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한계점에 당도할 때 하나님의 힘을 빌려 천국에 가기를 힘쓰라는 것이 아니라 천국, 하나님 왕국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이지 인간의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가 구원을 얻느냐가 아니라 영생을 허락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이 땅에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다. 그래서 기독교, 복음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도 끊임없이 온갖 종교활동을 시전한다. 주일성수 한다고 빠짐없이 교회당에 출입하는 행위, 성경을 읽고 열심히 제자훈련 받아 성숙한 신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행위, 십일조와 각종 헌금으로 정성을 바쳐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서 저주를 없애려는 행위, 열심히 기도하여 응답받고 싶어 하는 모든 행위, 보란 듯이 각종 은사를 받아 교회를 휘젓고 다니며 남들 앞에 버젓이 내 존재감을 나타내는 모든 행위, 아낌없이 행한 봉사와 선한 일로 하늘에 상급을 쌓으려는 행위, 사회 운동, 환경 운동 등을 통해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행위 이 모든 것들은 십자가의 대적자요 원수 노릇하는 종교활동에 불과한 것이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이고 그것은 오직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이 땅에 세우셨다는 것은 죄인들의 어떤 행위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이 인정된다면 우리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뿐이다. 내가 증거하고 나타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십자가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와 함께 죽어 내가 삭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20210627/주성교회 김영대).

20210627 종교와 복음-다시 생각하는 복음.pdf
0.17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