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민수기 9:1-23
유월절, 불과 구름기둥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만 일 년 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그 정기 곧 이 달 십사일 해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2,3절). 그런데 여기 11절에 보면, 2월 14일 해질 때에 유월절을 한 번 더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그 이유는 사람의 시체로 부정하게 되었거나 먼 여행 중에 있어서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건짐 받은 날이다. 그래서 그 날짜를 기억하라는 뜻이거나 단순히 의식을 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유월절의 의미를 알라는 말씀이다. 그 날에 있었던 사건의 의미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즉 날을 지키는 것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식으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자들을 위해 한달 후에 지키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애초부터 날짜 자체의 의미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이라는 한 날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면 유월절의 의미란 무엇인가? 유월절의 의미는 그 의식들을 통해 나타내 주고 있다.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11,12절).
유월절에는 어린 양을 먹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다. 그런데 어린 양은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뼈를 꺾지 않은 채로 먹는다. 이러한 음식은 결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자신의 건강이나 음식의 맛을 즐기는 차원에서의 식사가 아니다.
무교병이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이다. 이렇게 누룩없는 떡을 먹으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바로의 손에서 해방을 받아 출애굽 한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일을 집안에서 가만히 앉아서 고기를 먹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하셨다.
이는 어찌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지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재촉하여 그 지경에서 속히 내어 보내려고 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발효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매니라"(출 12:34)고 했다. 그러므로 무교병을 먹으라고 한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출애굽을 하나님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하셨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쓴 나물은 애굽의 고통을 의미한다.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고난을 먹고 사는 생활에서 건짐 받은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린 양을 먹되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고 먹으라고 한 것은, 그 동물은 뼈가 꺾여야 할 동물, 즉 죽어야 할 동물이 아닌데 죽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죽을 필요가 없는 어린 양이 죽는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서 시체를 치워 달라고 요구한다. 그때 군병들은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자들의 다리는 꺾어서 죽음을 확인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다고 말한다.
36절에 보면, "이 일을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게 하신 것도 죽음을 당할 필요가 없는 분이 애매하게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 한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신 존재임을 알 수 있다(시 34:20). 이러한 언약적 성취의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유월절 뼈를 꺾지 않은 양고기를 먹는 유월절 의식 속에 담아서 주신 것이다. 누군가 죽지 않아야 할 분이, 즉 죄 없는 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건짐 받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로서의 하나님의 백성이란, 절기를 잘 지키는 자가 아니라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희생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희생을 담고 가나안으로 가지 않는 이스라엘이라면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할 자격이 없는 백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진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유월절이라는 의식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무시하고 있는 그 자체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난 은혜를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약속으로 주어진 땅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15-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밝혀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만들자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성막을 덮었다고 한다(15절). 출애굽기 13:21,22에서는 이것을 기둥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분이다. 그래서 낮에는 잘 보이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의 모양으로 나타내셔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움직이는 것은 구름기둥, 불기둥에 의해서이다. 구름이 머무르면 머무르고 진행하면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자의로 움직이거나 방향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22절).
민수기 1장에서부터 이스라엘이란 여호와의 군대로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군대로서 계수함을 입고 각 가정의 장자 대신 레위인을 하나님의 장자로 삼아서 군대의 역할을 하도록 이스라엘의 임무는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있다. 여호와의 군대는 철저히 인간적인 정이나 혈통에 얽매여서 여호와의 군대로서 의 임무를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군대의 살고 죽는 문제는 여호와의 말씀에 달려 있다. 이것이 여호와의 군대의 특징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유월절이라는 절기, 안식일로 정해진 날짜의 규칙을 따라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라는 의미로 9장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명을 좇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신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가는 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을 이렇게 인도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는 성령께서 하신다. 무엇으로? 말씀으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인격적 말씀으로 주어진 것이 성경이다. 성경이 우리 모든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규칙이나 원칙 내가 정한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이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이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고, 쉬라고 하면 쉬는 것이다. 앞서서 설치며 리더쉽을 발휘하여 어떤 일을 성취시키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주께서 하라고 하신 것만 하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다. 시키지도 않은 것을 먼저 성취시켜서 바치는 것이나, 주님이 요구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자기가 아무 것도 주체가 되어 할 것이 없고 주님께서 절대적인 주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1998.9.13./김영대 http://blog.daum.net/revealer)
'●──── 구약강론 > 민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민수기 11:1-35 여호와께서 내리신 불 (0) | 2015.02.05 |
---|---|
09.민수기 10:1-36 은나팔 (0) | 2015.02.05 |
07.민수기 8:1-26 레위인을 요제로 드림 (0) | 2015.02.05 |
06.민수기 7:1-89 성막 봉헌 예물 (0) | 2015.02.03 |
05.민수기 6:1-27 나실인 (0) | 2015.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