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레위기

05.레위기 10:1-20 잘못된 제사

불편한 진리 2015. 1. 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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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0:1-20

잘못된 제사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분향하려고 하였다가(본문에서는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한 것처럼 되어 있으나 실상은 분향하려고 하였을 때를 의미한다) 여호와의 불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려고 했기 때문이다(1). 왜 하나님은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일하시는가? 제사를 안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분향하기 위해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른 불로 하려고 했다면 적당히 야단을 치시면 되지 굳이 죽이실 필요까지 있는가? 우리가 가지는 의문이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심판하시고 벌주시는 하나님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무조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게 적용시킬 때에만 그렇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왜 오늘날에는 즉각적으로 심판하시며 벌주시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생각은 나 한 개인의 복수심에서 피어 나오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도록 맡기는 것이어야 한다.

어쨌든 왜 나답과 아비후가 죽어야 했는가? 9장의 상황에서 보자면 지금 제사장 위임식을 시작으로 하여 성막에서 제사가 공식적으로 처음 드려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제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행되었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 번제단에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불이 번제단에 떨어졌다는 것은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 4:23,24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어버려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아무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표현하셨다. 즉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을 소멸하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처음 제사를 통해 제단에 떨어진 불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때문에 분향하는 불은 번제단에서 취한 불이어야 했다(16:12). 번제단 불은 희생이 있는 여호와의 불이다. 그 불에 의한 분향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그것을 가볍게 생각했다.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분향하려는데 무엇이 나쁜가 라고 쉽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와께서는 불로 나답과 아비후를 죽이심으로 인간의 생각에 의한 것으로는 하나님께 나올 수 없음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즉 인간의 것은 죄된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히 자기 방법을 고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대로 일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3)고 하셨다.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이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의 거룩함과 영광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서 무의미한 것이다. 이런 중요한 사실 때문에 하나님은 불로 나답과 아비후를 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모든 방법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여기에 더 이상 인간의 방법이 가미될 여지는 없다. 오늘날 교회를 키우고자 하는 여러 가지 전도의 방법들, 여러 가지 행사들은 나답과 아비후의 다른 불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약속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십자가 희생만 드러내는 일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왜 다른 불로 분향하려고 했는가? 9절에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고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그들은 술에 취하여 정하고 부정하며,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했던 것같다(10). 제사장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던 것이다.

에베소서 5:18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술 취하는 것은 술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성도는 술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자라는 의미이다. 술을 끊어야 성도라는 말이 아니라 신자요 성도라면 당연히 술에 의해 세상의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에 의해 세상을 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서만 거룩하고 속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것이라고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의 것이 거룩으로 보이지 않는 그 자체가 죽음이요 저주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이제 정한 것과 부정한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게 된다. 무엇인가 일이 벌어지고 나면 하나님이 그에 따른 어떤 조치를 취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가만히 두면 죄를 짓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벌어지는 그러한 현상들을 그대로 방치하셔서 인간의 실패를 통해서 계시를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무엇인지 인간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율법, 규례는 인간의 죄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명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노아나 아브라함의 자리, 아니면 모세나 다윗의 자리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우리가 가지는 생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죄인 된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보여주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은 실로 말할 수 없는 큰 은혜이다. 인간은 실패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보지 않는다. 자기의 가능성을 믿는 한 계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신으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김영대 http://blog.daum.net/reve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