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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라는 미신

불편한 진리 2008. 5. 23. 16:54

 

기독교라는 미신

 

 

해마다 여름이 되면 TV 프로그램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귀신에 대한 것이다. 해마다 영혼의 실체를 낱낱이 벗긴다고 하고서는 실제 내용은 귀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은 찾아왔고 방송 프로그램은 여전히 예전의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면을 걸어 전생을 보여준다고 속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행위들은 수그러들지 않고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더 이상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만으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뭔가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의 자극이다. 방송 매체의 오락성은 이러한 호기심만 자극하여 시청률만 높여 돈만 벌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기본적인 구조가 무너지고, 본능적 욕구로 행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에 대한 거부감으로 말미암아 깊은 공포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의식들이 종교심을 유발시킨다. 항상 인간은 자극된 종교심을 가지고 스스로 종교를 찾는 절차를 밟는다.

그래서 죄인이 찾는 종교란 언제나 일시적인 불안과 공포심이 제거된 안전과 위로를 얻는 종교이다. 그것이 바로 귀신, 영혼에 대한 얘기다. 귀신을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못한 자가 동일시 됨으로 불안을 느껴도 함께 느끼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공포를 공유함으로 그것이 더 이상 공포나 불안으로 다가와 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모든 사람이 위안을 얻는 인간의 종교이다.

 

그것은 미신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지는 모든 종교는 결국 미신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결국 이런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말만 기독교지 내용은 불교다.

말은 성경을 본다고 하는데 실제는 불교의 경전을 보듯이 한다.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는 지극한 정성을 드리면 이루어줄 수 있는 신으로 부처를 믿고 있다. 교회에서의 예배는 단지 하나님의 분노를 잠재우고자 하는 수단이다. 정성을 드림으로 매일 매일의 삶에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안심할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아니 내가 주님과 더불어 날마다 십자가에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독교라는 미신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한 그를 따르는 자가 주님과 함께 죽는 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내가 없고 오직 주님이 살아 계시는데 나의 전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귀신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관심을 가진 자가 예수 믿는 자가 아닐까?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김영대/200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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