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창세기

119. 창세기 46:1-25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1)

불편한 진리 2025. 5. 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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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119

창세기 46:1-25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1)

 

형제들에 대한 요셉의 시험이 끝나고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고 형제들은 그것이 진리의 말씀으로 들리게 되었다. 그래서 유다를 중심으로 언약적 희생정신이 표출되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야곱의 톨레도트로 기록하였다. 다시 말해서 야곱 언약 안에서 형제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로 드러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서 애굽으로 내려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 과정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야곱은 이스라엘로서 그의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한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1절). “떠나”의 ‘나사’는 ‘뽑아내다, 출발하다, 떠나다, 여행하다’라는 뜻인데 기본적으로 장막의 말뚝을 뽑아낸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당시의 유목민들에게 천막의 말뚝을 뽑는다는 것은 그 자리를 떠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가나안 땅을 포기하고 떠나게 되었는데 애굽으로 내려가는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신다.

“브엘세바”는 ‘일곱 우물’이라는 뜻으로 야곱의 조부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지만(창 21:31, 22:19), 그의 아비 이삭이 그랄 사람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브엘세바로 올라왔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확인해 주신 곳이었다(창 26:23-24).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애굽으로 이끌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확인해 시켜주신다. 당시에는 이곳이 가나안의 경계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라고 한 것은 처음에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곱은 하란에서 돌아와 에서와 만나는 일을 하나님께서 순조롭게 해결해 주셨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세겜에서 밭을 사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엘엘로헤이스라엘”(창 33:20)이라고 불렀지만 자신은 아직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아버지의 하나님께 다시 언약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희생제사”의 ‘제바흐’는 ‘희생, 희생제물’이라는 뜻인데 야곱이 희생제를 드렸다는 것은 희생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야곱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야곱 자신의 죽음이란 이미 요셉을 잃고 또 베냐민까지 내어주는 과정을 통해 이제는 정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알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차원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는 과정도 결코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애굽에 내려가는 것이었기에 모든 것이 자신의 손을 떠나 있는 일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으로 야곱을 이렇게 이끌어 오신 것이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2절). “이상 중에”의 ‘마르아’는 ‘환상, 거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밤에” 환상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지금 야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어둠의 상태라는 것을 거울로 보여 주셨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야곱 자신을 비추어 보여 주는 언약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아 야곱아”라고 부르셨다. 그런데 창세기 32:28에서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라고 하였고, 35:10에서도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끝까지 성경은 계속 야곱으로 언급하지만 여기서 두 번 부르신 것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스라엘로 이루어진다는 확실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애굽에서 요셉과 베냐민을 만나 언약을 확인함으로 야곱 언약은 성취되지만 야곱이 죽어 이스라엘 자손으로 완성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1, 6-7)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3절). “나는 하나님이라”라는 표현은 ‘엘’(단수)이고,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을 때는 ‘엘로힘’(쌍수)을 썼다. 야곱과 짝이 되고 하나 되어 아버지 이삭에게 일하신 것처럼 야곱에게도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은 애굽이라는 죽음을 경험해야만 언약의 땅 가나안이라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11)

 

하나님은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는 언약의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셨다. 그래서 언약의 주체자는 언제나 “내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큰 민족”이란 양적인 크기가 아니며 한 혈통의 민족이 아니라 작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큰 구원’을 나타내신다는 측면에서 표현한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4절).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라는 말씀은 단순히 야곱만 애굽에 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인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애굽과 같은 세상에 오실 것을 계시한 말씀으로 언약의 핵심이다(출 3:6-8, 사 41:10, 43:5, 렘 1:8).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란 인간이 하나님께 합류되어 함께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함께 하신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다. 내 기준에서 동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언약하신 것을 성취하기 위해 일하신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야곱은 가족들과 함께 애굽에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창세기의 결론을 알기에 이 말씀이 야곱이 살아서 언약의 땅으로 다시 올라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애굽에서 죽어 시신으로 올라간다. 비록 야곱이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하지만 장례 행렬이 후에 출애굽하여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을 계시한다는 점에서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서 다시 올라온다(창 50:10). 따라서 언약 안에서 보자면 출애굽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라는 말씀은 언약 안에서 야곱은 스스로 눈을 감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5-7절). 이미 헤브론을 떠날 때 수레를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브엘세바에서 새삼스럽게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라고 말씀한 것은 야곱의 희생제사와 하나님께서 보이신 환상을 통해 수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이동 수단인 수레는 진리의 영이 땅적 존재를 하늘적 존재로 인도하심을 상징한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여기서 말씀하는 “거처”란 흔히 말하듯이 하늘나라에 집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완성되면 그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성령을 의미한다. 그래서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라고 말씀하였다.

“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9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10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11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13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14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15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8-15절).

야곱 가족 소개는 “이들은 ∼가 야곱에게서 낳은 자손들이니”(15, 18, 22, 25절)라는 공통된 문구로 그의 어머니 이름과 그 아들들의 합계를 공식처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은 모두 레아에게서 “삼십삼 명”(15절)이라고 하였다.

“16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17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18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16-18절). 실바에게서 “십육 명”(18절)이다.

“19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20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21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22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 명이요”(19-22절). 라헬에게서 “십사 명”(22절)이다.

“23 단의 아들 후심이요 24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25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23-25절). 빌하에게서 “칠 명”(25절)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6절에서 “자손들”, 7절에서 “모든 자손”이라는 표현이 ‘제라’로 단수이다. 그리고 나머지 “아들”(5, 7, 8, 9, 10, 11, 12, 13, 16, 17절)이라고 번역한 말은 ‘벤’이고 “손자들”(7절) 혹은 “자손들”(7, 15, 18, 22, 25절)이라고 번역한 말은 ‘벤’의 복수형 ‘바나우’로 표현하였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결국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6절),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7절)라는 말씀에서 ‘제라’를 단수로 썼다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4절)라는 말씀이 언약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 것인데 이는 곧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 안에서 함께 애굽에 내려가셨고 인도하여 올라오게 하실 것임을 의미한다(2025052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창119.4601-25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1)(2025052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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