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창세기

118. 창세기 45:9-28 요셉과 형들의 만남(9)

불편한 진리 2025. 5. 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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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118

창세기 45:9-28

요셉과 형들의 만남(9)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9-11절).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이라고 요셉이 말하였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위해 하신 일이라고 밝혔다(5절). 그래서 요셉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으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아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위해 일하신 진리의 말씀이다. 요셉을 통해 들은 복음을 아버지 앞에 다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마 10:32, 계 3:5).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9절)라는 말씀은 이제 언약의 아들 요셉이 주는 양식, 곧 진리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요셉은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는 8절에서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한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언약의 아들을 통해 애굽을 하나님의 집으로 만드시는 것을 위해 요셉이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제사장과 선지자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삿 17:10, 18:19, 왕하 6:21, 13:14).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11절)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아직 기근이 5년이나 남았다는 말이지만 율법을 행하여 왔기에 진리의 말씀이 없는 가뭄의 상태가 이어질 것이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요셉이 베푸는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생명으로 살게 된다. 그것이 아버지와 가족이 함께 함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11절)라고 말한 것이다.

“12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12-15절).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12절)라는 표현은 눈을 띄워 보게 하고 진리의 말을 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형제들이 가나안 땅에 다녀오는 동안 시므온을 감옥에 두었던 것은 언약의 말씀이 들리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뿐 아니라 큰심과 한탄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형제들에게(5절) 자신을 드러내 실체를 보여주었다.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이란 언약의 말씀으로 밝혀준 것들을 요셉의 입을 통해 전하여졌으니 이제 듣게 되었고 보게 되었고 알게 되었으니 그 진리를 아버지 앞에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14절)의 ‘차우와르’는 ‘목의 뒷부분’으로 ‘장식을 걸거나 힘든 일을 건다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목’이다. “안고”(14절)의 ‘나팔’은 ‘떨어지다, 받아들여지다’라는 뜻이다(참고 창 33:4). “우니라”(14절)라는 표현은 큰 소리로 하나의 진리임을 확인하였다는 의미이다. 요셉의 죽음을 통해 베냐민이라는 작은 자가 더하진 것을 통해 죄인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신약식으로 말하자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베냐민과 달리 형제들에 대해서는 “목을 안고”라는 말이 없고 그저 “입맞추며 우니”(15절)라고 표현하였다(“안고”라는 말은 번역하면서 넣은 말이다). “입맞추며”의 ‘나샤크’는 ‘입맞추다, 다루다, 장비를 취급하다’라는 뜻인데 언약적으로 보자면 하나의 말을 하는 존재가 되어 진리의 말씀이라는 장비를 갖춘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15절)라고 표현하였다. 우리는 완성된 진리만 말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것이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 2:12)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16-20절).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16절)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준비해 놓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셉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가 요셉에게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18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하나님의 언약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유다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듯이(대하 36:22-23) 바로는 아브라함 언약 성취를 위해 하나님의 선택된 존재임을 나타낸다(롬 9:17).

“애굽의 좋은 땅”(18절), “애굽 땅의 좋은 것”(20절),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23절)이라고 하여 번역하면서 다르게 표현하였는데 같은 단어 ‘토브’(선하다, 좋다, 아름다운, 좋은)의 명사형 ‘투브’로 ‘좋은 것, 선, 즐거움, 아름다움, 기쁨’이라는 뜻이다. 문자적으로 말하면 “고센 땅”(10절)이다. 그러나 기근의 가나안 땅에 “아름다운 소산”(창 43:11)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애굽 땅에서 좋은 것은 없다. 이런 점에서 고센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언약 공동체가 함께 거함으로 진리의 말씀을 나누는 상태가 선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성도가 애굽과 같은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 왕국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곳이 선한 것, 좋은 땅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말씀이 새겨진 우리의 마음이다.

 

29 내가 그들을 위하여 파종할 좋은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여러 나라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30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겔 34:29-3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23)

 

따라서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18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주신 야곱 언약의 성취.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풍성하게 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창 27:26-29). 요셉이 보낸 “수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것을 진리의 말씀 안에 인도하시는 증거이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5-8)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길에서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21-24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21절)라고 하여 언약의 말씀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의미로 야곱의 아들들이 아닌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21절)라는 말씀은 형제들이 하늘의 증거를 양식으로 계속 먹는 상태, 곧 진리의 말씀에 이끌려가야 제대로 증언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 벌씩”이라고 번역한 말 ‘할리파’는 ‘변화, 변경, 교체, 바꿈’이라는 뜻이고, “주고, 주며, 주되”(21, 22절)는 ‘나탄’으로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바꾸어 정하고 세우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옷”의 ‘시믈라’는 ‘의복, 외투, 싸는 것, 덮개’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각기 옷 한 벌씩”(21절)을 주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언약의 말씀으로 덮으시고 바꾸어 세우셨다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 안에 들어가 의의 옷을 입은 상태가 되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22절)라는 말씀은 형제들에게 주어진 옷 한 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은 삼백”은 속죄의 ‘케셰프’가 삼십의 열 배이니 곧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져 “다섯”이라는 율법의 의가 진리의 말씀으로 온전하게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나귀 열 필, 암나귀 열 필”(23절)이란 짐을 지는 나귀는 율법을 상징하는데 수나귀 열의 완전함에 암나귀 열이 더하여져 언약의 성취자와 하나 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함으로 “열”, 진리의 말씀으로 완성되어 아버지에게 바쳐지는 왕국을 나타낸다.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3-24)

 

그래서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24절)라고 하였는데 ‘다투다’의 ‘라가즈’는 ‘두려워하다, 떨다, 경외하다’라는 뜻이다. 형제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두려워 떨지 말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두려워 떨게 된다는 것은 인과율에 의한 것이니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행위가 조건이 될 수 없는 구원이라는 의미이다.

“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하더니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25-28절). “어리둥절하더니”(26절)라는 말의 ‘푸그 레브’는 ‘푸그’는 ‘멈추다, 감각이 없다, 마비되다, 무력하게 되다’라는 뜻이고, ‘레브’는 ‘심장, 마음, 의지, 정신’이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심장이 멈추었다’라는 말로 문자적으로는 심장이 멈출 정도로 놀랐다는 말인데 언약적으로 보자면 이전의 모든 율법적인 행위가 멈추었고 육은 죽은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부탁한 모든 말로 … 말하매”(27절)라는 말로 ‘다바르’를 두 번 강조한 것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부탁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27절)라는 표현은 영이 소생하였다는 의미이다. 언약의 말씀이 임하여 그 증거가 주어지니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말씀이 살리는 것이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여기서도 이미 말씀이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이기에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28절)라고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표현하였다.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28절)라는 표현은 말씀에 의해 살려주심의 은혜를 입었으니 요셉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 것은 말씀이 임하여 살려주신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2025051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창118.4516-28 요셉과 형들의 만남(9)(2025051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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