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디모데후서 3:10-17 하나님의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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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론 08
디모데후서 3:10-17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세, 곧 종말에는 비진리로 교회를 장악하려는 악한 상태가 드러난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복음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십자가의 원수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성령께서 기록된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고 전한다.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10-11절). “교훈”이란 ‘디다스칼리아’로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곧 ‘복음’을 의미한다. 바울 사도가 전하고 가르친 것은 복음이기 때문이다. “행실”이란 말의 ‘아고게’는 ‘아고’(인도하다, 이끌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인도하여 이끈 결과로 인한 ‘생활 방식, 태도’라는 뜻이다. 사도가 디모데에게 전한 복음은 단순히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이끌림 받은 생활 방식으로, 태도로 나타내었다는 의미이다.
“의향”의 ‘프로데시스’는 하나님의 “자기 뜻”(딤후 1:9)이라고 표현하였던 단어로 ‘(음식이나 제물 등을) 차려 놓음, 전시, 의도, 목적, 계획’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잘 배열된 상태를 의미한다(롬 8:28, 9:11, 엡 1:11). 하나님의 뜻이 사도를 통해 복음으로 잘 배열되어 드러났다는 것이다. “믿음”의 ‘피스티스’는 ‘그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오래 참음”의 ‘마크로뒤미아’는 ‘인내, 확고부동’이라는 뜻인데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 참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의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인내”의 ‘휘포모네’는 누구 아래에서 견디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번역상 우리 성경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헬라어로는 모두 ‘호’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고 여성 단수로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그 교훈, 그 행실, 그 의향, 그 믿음, 그 오래 참음, 그 사랑, 그 인내, 그 박해 받음, 그 고난’이라는 표현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으로 자신의 몸 된 교회에 넘겨주신 그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바울 사도에게만 아니라 디모데에게 또한 에베소교회에 전한 복음으로 인해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안디옥”은 비시디아 안디옥을 가리키는데 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여 믿는 자들을 많이 얻었으나 유대인들의 박해로 추방된 곳이다(행 13:14-52). “이고니온”에서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고 위협하였기에 도피하였다(행 14:1-7). “루스드라”에서는 바울 사도가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치자 사람들이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왔다고 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려고 하자 거부하고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그러나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돌로 쳐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버렸으나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였다(행 14:8-21).
특히 “루스드라”는 디모데가 살았던 곳이었기에(행 16:1-2)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성경에서는 이 표현이 번역상 11절에 나오지만 헬라어 본문에서는 문장 맨 앞에 ‘네가 과연 보고 알았다!’라는 표현을 써 디모데가 직접 보았음을 강조하였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라는 말씀에서 “건지셨느니라”의 ‘뤼오마이’는 ‘구출하다, 보존하다, 보호하다, 지키다’라는 뜻으로 앞에서 말한 ‘이 모든 것으로부터 주께서 보존하셨다’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오직 복음을 드러내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3-28)
“(그리고)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12절). “무릇”이라고 번역한 말 ‘파스’는 ‘모든 자’라는 뜻이고 “살고자 하는”에서 ‘원하다’라는 의미로 번역한 ‘델로’는 ‘바라다, 원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 마음에 두다’라는 뜻으로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원하심, 기뻐하심’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이다(마 27:43, 고전 12:18). “살고자”라는 단어 ‘자오’는 현재형을 사용하여 계속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로 표현하였다.
“박해를 받으리라”의 ‘디오코’는 ‘뒤쫓다, 추구하다, 추적하다, 박해하다’라는 뜻인데 수동태로 표현하였다. 우리의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경건하게 살면 박해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고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의 자신의 몸 된 교회는 계속 주를 경외하며 살도록 끝까지 추적하여 이루어내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 땅에 있는 교회는 그것을 박해로 여길 수밖에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잘 표현한 구절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디오코)(빌 3:12)
우리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붙잡힌 바 된 목적과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달려가는 상태, 다시 말해서 추적 당하는 상태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계속 쫓겨났지만 다시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돌아가 복음 안에, 하나님 왕국 안에 있는 것이 현실에서는 어떤 상태인가를 전하였다. 환난이 하나님 왕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왕국에 속하여 있는 그 상태가 환난이라는 의미이다.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1-22)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13-14절). “속이는 자들”이란 말의 ‘고에스’는 문자적으로 ‘마술사, 마법사’라는 뜻이지만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비진리를 전하는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12절)와 대조된 표현이다. “더욱 악하여져서”의 ‘프로콥토’는 ‘전진하다, 더욱 강하게 앞으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악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좁은 의미로는 영지주의적 가르침과 그것을 따르는 자들이며 넓은 의미로는 교회가 아닌 자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비진리를 말하는 모든 자들은 악한 자들이고 곧 비진리로 속이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는”이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는 디모데이지만 믿음 안에서 진리의 아들이 된 자이고 교회이다.
“배우고”의 ‘만다노’는 ‘마음을 어떤 것에게로 향하게 하다’라는 뜻의 ‘마드’에서 유래한 단어로 ‘경험하다, 알게 되다, 이해하다’라는 뜻이며, “확신”이라는 말은 ‘피스토스’(믿음)에서 유래한 단어 ‘피스토오’를 썼다. “거하라”라는 말의 ‘메노’는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무르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즉 공부하여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알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의미이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절). “어려서부터”라는 말의 ‘브레포스’는 문자적으로는 ‘유아, 갓난아기’라는 뜻인데 ‘태아’도 포함한다(눅 1:41, 44). 이런 점에서 디모데가 유아 때부터 성경을 배웠다는 의미라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복 중에서 말씀을 허락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14절)라는 표현에는 성령께서 진리를 알게 하신 은혜가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능히 너로 … 있게 하느니라”라는 표현을 중수디포태로 썼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2-13)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절). “하나님의 감동”이란 말의 ‘데오프뉴스토스’는 ‘데오스’(하나님)와 ‘프네오’(불다, 숨쉬다)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호흡을 받은’이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감동 혹은 영감을 받은, 하나님에 의해 감동된’이라는 뜻이다. 즉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의 출처가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교훈”이란 10절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복음’을 가리킨다. “책망”의 ‘엘레그모스’는 ‘엘렝코’(폭로하다, 죄를 입증하다, 깨닫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책망, 질책, 징벌, 정정’이라는 뜻으로 ‘바로 잡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르게 함”의 ‘에파노르도시스’는 ‘에피’(위로, 위에)와 ‘아노르도오’(다시 세우다, 회복하다, 다시 바로 세우다)의 합성어로 ‘다시 똑바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번역하였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의 안에서 가르침이 이롭다’라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모든 기록된 말씀은 출처가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깨닫게 하여 다시 똑바로 세워지는 일에 이롭다는 것이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엘렝코)(요 16:7-8)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7절). “하나님의 사람”이란 ‘그 하나님의 그 자신’이라는 말로 기록된 말씀에 의해 구약에서 언약으로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된 자라는 의미이다. “갖추게 하려 함이라”의 ‘엑사르티조’는 ‘엑스’(~로부터)와 ‘아르티오스’(적합한, 완전한)의 합성어로 ‘완료하다, 갖추다’라는 뜻인데 완료 수동태로 표현하였으니 주께서 이미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주신 이유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 건물 교회에 충성 봉사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는 십자가로 이미 온전한 자가 되었다. 따라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이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20250330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