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강론/창세기

78. 창세기 28:10-15 땅에 선 사닥다리

불편한 진리 2024. 6. 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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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78

창세기 28:10-15

땅에 선 사닥다리

 

야곱은 아버지의 집 브엘세바에 더 있을 수 없어 하란으로 간다. 이때 야곱의 나이는 77세였다. 에서가 40세에 결혼한 것을 생각한다면(26:34) 언약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유모와 함께 부모의 집을 떠나 하란(밧단아람)으로 가는 상황이 되었다(35:8). 에서는 아버지 집에 그대로 거할 수 있었으나 야곱은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야곱은 전혀 복을 받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언약의 복을 받은 자이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10절). “브엘세바”의 뜻은 ‘일곱 우물’ 곧 하나님의 언약으로 일하심을 보여주는 곳이다. “하란”은 ‘바싹 마른 건조한’이란 뜻이다.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간다는 것은 결혼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곧 언약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기 위한 떠남이다. 야곱은 언약의 아들로서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야곱이 부모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것을 아담 언약 안에서 보자면 언약의 후손을 계시해 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브엘세바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의해 아버지를 떠나서 하란과 같은 진리가 없어 바싹 마른 건조한 이 땅에 언약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이다. 훗날 야곱은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인데 그것 또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이다. 가나안에서 시작하여 하란으로 떠났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여정은 애굽과 광야를 거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의 이 떠남은 진리가 없는 이 땅에 진리로 충만하게 하시고(1:28) 다시 하늘 보좌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정결한 처녀인 신부를 얻으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을 완성하실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부르심을 입은 자의 인생 또한 하늘에서 시작해서 이 땅을 거쳐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는 말씀을 이루는 삶이다. 그래서 집을 떠나며 옛사람을 떠나는 것으로 율법을 떠나서 복음 안에 구별되어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10-12절). “해가 진지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시되 어떤 상태에서 만나시는가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야곱이 그러하듯이 이스라엘 역시 밤에 형성된 민족이다(32:24-31). 이것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이고 곧 우리의 정체성이다. 어둠 가운데 있을 때 찾아오신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돌”은 ‘에벤’이고 “베개”라고 번역된 말의 히브리어는 ‘메라아샤’인데 ‘로쉬’(머리, 정상, 시작, 처음, 우두머리)에서 유래한 단어로 ‘머리 두는 곳, 머리의 장소’라는 뜻이다. “누워 자더니”라는 말의 ‘샤카브’는 ‘눕다, 성교를 위해 눕다, 동침하다, 죽어서 눕다, 휴식하다’라는 뜻이다. 야곱이 눕는 것은 돌을 머리로 하여서만 들어가는 안식이다. 다시 말해서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셔야만 야곱은 죽음과 안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이때 야곱은 꿈을 통해 사닥다리가 땅에 섰고 그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라 하는 것을 본다. “사닥다리”의 ‘술람’은 ‘높이다, 쌓아 올리다, 찬양하다’라는 ‘살랄’에서 유래한 단어로 ‘계단, 사닥다리’라는 뜻이고, “서 있는데”라는 말의 히브리어 ‘나차브’는 ‘서다, 놓다, 정하다, 자리잡다, 세우다’라는 뜻이며 “꼭대기”라고 번역한 말은 ‘로쉬’이다. 즉 계단이 땅 위에 섰고 그 머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기 위한 것이다.

본래 하늘과 땅은 단절되어 있다. 성과 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려는 죄인의 것은 하늘에 용납될 수 없다(11:4). 땅은 저주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그런데 저주의 상태에 있는 땅에 계단이 설치되었다면 하나님 편에서 왜 설치하셨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다리는 올라가는 도구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려오는 도구이다. 즉 야곱에게 사다리를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다리를 세우지 않으시면 야곱이 사는 세계는 저주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51)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하늘을 여셨다. 십자가 죽음으로 친히 계단이 되신 것이다. 야곱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야곱의 꿈속에 나타난 계단은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중보의 개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이렇듯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심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선포하였다.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0-12)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13-15절).

야곱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복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하나님이 친히 내려 오셔야만 되고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다. 야곱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그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을 받는 상속자로 선택된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13절)이라고 밝히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하나님이기를 원하신다. 야곱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버지 이삭의 집에 고정되어 계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야곱에게 주신 언약은 다음과 같다.

①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②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퍼져나갈 것이다.

③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④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⑤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서쪽”이란 ‘얌’으로 ‘바다’를 지칭하여 이방인을 지칭하며 “동쪽”이란 ‘케뎀’은 ‘동쪽’이란 뜻인데 하나님을 떠난 자리를 의미하며, “북쪽”이란 ‘차폰’은 ‘숨겨진 어두운’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남쪽”은 ‘네게브’로 ‘마른 땅’이라는 뜻이다. “퍼져나갈지며”라는 말의 히브리어 ‘파라츠’는 ‘깨뜨리다, 산산조각나다’라는 뜻이다. 즉 야곱이 후손이 육체(티끌)의 상태에서 깨뜨려지고 산산조각 나지만 이방인이요 하나님의 언약을 떠난 자들, 흑암의 상태에 있는 자들, 진리가 없어 마른 땅과 같은 상태에 있는 자들이지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라는 언약의 말씀에 의해 언약의 실체가 오시면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지는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야곱이라는 이스라엘을 통해 나타내신 언약의 말씀이다. 그 언약이 하늘을 열어 계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언약의 내용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이나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한 가지 약속을 더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하신 바를 다 이루기까지 결코 야곱을 떠나지 않고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항상 지키신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마치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본문의 초점은 함께 하신다는 것에 있다기보다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에 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보자면 야곱은 죄악 가운데서 안 돌아오려고 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으로 약속의 땅에서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의지와 열심의 확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속을 기필코 이루시는 분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나타내고자 계획하신 언약의 의미들을 남김없이 드러내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야곱을 장악하고 계실 것이다. 인간의 온갖 술수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고 하는 야곱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언약을 이루시려는 하나님과 충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여기에 야곱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 곧 교회로 함께 하신다(마 28:20). 반드시 약속의 땅,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언약, 곧 예수 그리스도께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20240609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창78.2810-15 땅에 선 사닥다리(2024060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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