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요한계시록

50. 요한계시록 13:16-18 육백육십육

불편한 진리 2023. 9. 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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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50

요한계시록 13:16-18

육백육십육

 
육백육십육에 대해서는 교회사적으로 기발한 해석들을 시도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말하는 ‘게마트리아 해석’이다. 이름의 스펠링 철자를 풀어서 육백육십육으로 맞추어 시대적인 어떤 인물이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또 오늘날에 와서는 컴퓨터가 인식하기 쉽게 한 바코드의 기본 숫자가 666이기에 컴퓨터가 짐승이고 그 표를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이제는 ‘베리칩’을 사람들 몸에 심는 것을 받으면 지옥 간다고 한다. 다양한 주장이나 해석이 있지만 전부 성경 밖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요한 사도가 환상을 보고 요한계시록을 서신으로 기록했던 당시나 오늘날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볼 때 어떤 한 시대에 국한되거나 단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해석은 진리가 될 수 없다.
12장에서부터 옛 뱀이요 용, 마귀, 사탄과 동일체인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용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을 본다. 특히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어린 양의 모습으로 다가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섬기도록 큰 표적으로 교회를 미혹한다. 짐승의 형상에 하나님께서 잠시 영을 허락하니 죽이는 권세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첫째 짐승을 섬기도록 하기 위한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16절). “표”의 헬라어 ‘카라그마’는 ‘긁힌 자국, 표식, 형상, 날인, 각인’이라는 뜻으로 ‘카락스’(뾰족한 말뚝, 울타리, 성벽)에서 유래하였다. 즉 성이나 성전 울타리 안에 자기 것으로 표시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세기 4:15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최초의 표를 볼 수 있는데 가인도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계시하시는 차원에서 가인을 보호하신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소유와 보호를 의미한다. “이마”란 머리라는 의미로 사고방식이나 정신, 가치관을 상징하고 “오른손”이란 그 사고와 정신에 의해 드러나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모든 자”라고 하였는데 이미 8절에서 “땅에 사는 자들”, 12절에서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이며 14절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며 땅에서 나온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다. 이 표현 역시 6절에서 말씀한 “하늘에 사는 자들”과 대조된 표현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짐승에게 속하여 짐승을 따르는 땅적 존재 전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이라고 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예외 없이 짐승의 표를 받을 수밖에 없는 땅적 존재이다. 하나님의 인치심에 대해 앞에서 이미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다.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2-4)
 
짐승의 표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과 대조를 이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표시이고 짐승의 표는 짐승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십사만 사천이 단순히 어떤 숫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짐승의 표에 대한 것도 숫자라는 차원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를 받게 하는 이유를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7-18절)라고 말씀한다. “매매”란 헬라어 ‘아고라조’와 ‘폴레오’는 ‘사다’와 ‘팔다’를 뜻하는데 단순히 세상적 경제 개념으로만 이해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에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마 21:12)
 
당시 집에서 끌고 온 제물을 제사장에게 흠 없는 것으로 인증받지 못하면 성전에서 파는 제물을 살 수밖에 없었다. 성전에서 제물을 사고팔고 했던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보자면 여기서 “매매”란 첫째 짐승을 경배하는 것과 연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16절)라는 말씀은 율법주의적인 가치관과 정신에 의한 행함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짐승의 표만으로 구원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오로지 율법을 문자적으로 행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 믿음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종교성으로만 통용되게 하는 것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1-12)
 
“내 앞에 보이러(히, ‘라아’) 오니”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내 얼굴 앞에 조사하러 오다’라는 말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보고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셔야 한다(참고 창 7:1, 민 23:21). 그래서 11:2에서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라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나오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기에 짐승이요 거짓 선지자들이 마음껏 짓밟는 성전 마당이다.
“짐승의 이름”이란 짐승의 속성, 곧 그의 말이나 생각, 사상이다. 이런 점에서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이름의 수”는 창조의 여섯째 날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7, 19)
 
하나님께서 짐승과 사람을 흙으로 같은 여섯째 날에 지으셨다(창 1:24-31). 그래서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라고 하였고 또한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6’은 짐승의 수이면서 사람의 수이다. 이렇게 나타내신 것은 외형적으로 짐승이냐 사람이냐의 차이는 없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여섯째 날의 짐승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6’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늘 이같이 네게 명령하노라(신 15:12-15)
 
종이 6년 동안 속박되었다가 7년째가 되면 자유롭게 놓아주라는 율법의 말씀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것에서 속량하심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도피성 여섯을 두라고 말씀하셨다.
 
13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14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민 35:13-15)
 
그렇다면 ‘6’으로 죄의 권세에 매인 상태에서 ‘7’로 속량, 구원이 완성된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씨 없는 여자(히, ‘네케바’)는 씨 가진 남자(히, ‘자카르’)를 만나 그 안에서 하나 될 때 ‘6’에서 ‘7’이라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의해 언약의 완성인 안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마음에 말씀을 새기도록 하기 위해 이마와 손에 표를 삼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애굽에 처음 난 자를 죽이심으로 어린 양의 피에 의해 장자를 통한 구원을 보여주셨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출 13:15-16)
 
첫 번째 지음 받은 아담이 아닌 하늘에서 오신 두 번째 아담을 통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 참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것이 교회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였다(엡 5:31-32).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 11:7-12)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라고 하였는데 “총명”이란 헬라어 ‘누스’는 ‘마음, 이해(력), 지능’이라는 뜻이고, “세어 보라”라는 말의 ‘프세피조’는 ‘(조약돌로) 세다, 계산하다, 탐구하다, 투표하다, 판결을 내리다’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여기 그 지혜가 있다. 마음을 가진 자로 그 짐승의 그 수를 탐구하게 하라’이다. 단순히 숫자 풀이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마 11:19, 눅 7:35)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라는 말씀은 ‘600’, ‘60’, ‘6’을 세 번 강조하여 ‘7’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안식에 미치지 못한 완벽한 짐승의 이름이 되었으나 사람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짐승의 표를 능히 분별할 수 있는 십자가의 은혜 안에 사는 자가 주님의 몸 된 교회요 성도이다(20230903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계50.1316-18 육백육십육(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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