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강론/요한계시록

39. 요한계시록 10:1-11 열려 있는 책

불편한 진리 2023. 6.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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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39

요한계시록 10:1-11

열려 있는 책

 

요한계시록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가 계속 확인하는 것은 미래의 비밀을 푸는 것이 아니며 또한 우리 개인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로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하신 언약이 핵심이다. 그것은 이미 창세 전에 언약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기에 하늘의 관점에서 땅의 실체를 드러내시는 계시로써 곧 복음인 것을 확인하고 있다.

10:1-11:14은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막간 계시(삽입 계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주어지는가를 보여주신 이후 11:15-19에서 일곱째 나팔 계시가 주어진다. 오늘 본문의 1-2절은 힘센 다른 천사를 소개하고, 3-7절은 힘센 다른 천사의 선포와 활동을 통해 그가 가진 책의 의미를 설명하고, 8-11절은 요한이 그 책을 먹는 내용을 말씀한다.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1절). “힘 센 다른 천사”는 8:3에 나왔던 금향로를 가진 천사와는 다른 천사이다. 또 일곱 나팔을 부는 천사들과도 다르다. 또 5:2과 18:21에서 “힘센 천사”라고 동일한 표현을 하였지만 여기서는 “다른”(헬, ‘알론’)이라고 하였기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들 중에서 다른 존재를 말씀한 것이다.

1:12-16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같은 표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볼 수도 있으나 요한계시록에서 한 번도 천사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묘사한 곳이 없다. 뿐만 아니라 5-6절에 보면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맹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특별히 “하늘에서 내려오는데”라는 표현을 통해 하늘의 일을 땅에 시행한다는 점이다.

“구름”은 하나님의 강림을 상징하고(출 19:9, 시 104:3), 구름과 함께 오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1:7, 14:14). “그 머리 위에 (그) 무지개가 있고”라는 표현에서 ‘그 무지개’라고 한 것은 보좌에 둘린 무지개(4:3)를 생각나게 하여 구약에서 무지개 언약의 신실하신 분을 드러낸다. 또한 “그 얼굴은 해 같고”라는 말씀은 1:16에서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치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다. 마태복음 17:2에서 변화 산에서의 예수님을 연상시키며, 하늘 의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표현이다(마 13:43).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라고 한 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임재한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출 13:21). 이 모든 표현은 힘센 천사가 하늘의 권세를 위임받아 보내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2-3절).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자의 장엄한 위용을 자세히 밝혀줌으로 그가 전하게 될 메시지가 얼마나 웅대한 것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심사숙고하게 만든다.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라는 말씀은 5장에서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라는 책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열려 있음을 나타낸다. “일곱 우레”를 구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 29:3-9)

 

여호와의 소리를 하나님의 우렛소리로 표현하여 7번 반복함으로 왕으로 좌정하여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라는 표현은 바다와 땅이라는 온 세상의 지배권을 의미하는데 보내심을 받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려지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4절). 요한 사도가 일곱 우레가 발한 소리를 적으려고 하였지만 기록하지 못하도록 제지당한다.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열려진 말씀으로만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 외에 많은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고 또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고 드러내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궁금하게 여기면서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알려주신 만큼 아는 것으로 만족하고 계시 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말씀이 되는 은혜를 입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5-7절). “하나님의 그 비밀”이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 3:4). 일곱 우레가 발하는 것 같은 말씀으로 주어진 것은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는 것인데 직역하면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라는 말이다. 즉 시간이 없는 상태로 전환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천사 즉 보내심을 받은 자가 맹세하지만 창조하신 분을 가리켜 맹세하였다. 창조하신 분을 가리켜 맹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그렇게 이루신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십자가에서 온전히 다 이루어졌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8절). 하늘에서 다시 음성이 들렸다. 바다와 땅을 밟고 선 천사의 손에 펴진 책을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천사에게 가서 작은 책을 달라고 요청한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9-10절).

 

2: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3: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2:9-3:3)

 

에스겔이 두루마리를 먹었다는 것은 말씀을 전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말씀과 일치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선포해야 했다. 외적으로 평화로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했었다. 선지자 자신의 유불리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관계없이 말씀대로 선포하는 것이 말씀과 하나 된 자의 몫이다(겔 3:7-11). 에스겔은 두루마리 책을 먹음으로 애곡과 애가와 재앙을 몸소 담당하였다. 에스겔이 말씀을 좇아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에스겔이 먹은 그 말씀이 에스겔을 고난으로 인도하였다. 그가 “인자”이고 선지자였다. 아모스 선지서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이 말씀은 반드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하신다는 의미라기보다 보여주신 말씀이 하신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인자라고 지칭하신 것은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친히 성취하신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는 말씀이 된 자로 말씀에 의해 규정된 존재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라고 말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요 성도에게는 말씀이 기쁘게 받아지나 고난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선포할 대상이 이스라엘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게 되듯이 오늘날 성도에게 주어진 말씀은 이 땅의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기에 선지자들이 말씀에 이끌림을 받았던 것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에게 고난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말씀대로 살면 우리에게 고난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말씀대로 살면 고난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아서 고난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또한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여서 말씀대로 살게 만드시는 것이다. 11절에 보면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라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을 가지고 아직까지 요한 사도에게 사명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실 것을 이루기까지 이 땅에 두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1:9)라고 하였다. 요한의 삶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 땅을 산다는 것은 내가 말씀을 이루기까지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루고 세우기까지 내가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살려주시는 십자가 은혜를 누리고 사는 것이다.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살려두시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고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여섯째 나팔을 통해 회개를 말씀하신 것도 이런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찾아오심의 회개를 통해 주님의 주님 되심, 말씀의 활동력을 드러내고자 하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진리로 믿고 따라간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전하고자 한다. 예컨대 자신이 행한 건강 관리 방식으로 암을 이겼다면 그것을 무조건 권장한다. 이런 점에서 성도에게서 무엇이 드러나는가?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잘 다루는가 하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전하는 자가 아니다. 내가 말씀에 어떻게 이끌렸는가 혹은 말씀이 우리를 어떻게 사로잡고 있는가를 아는 자가 되었다. 그러기에 말씀 그 자체를 드러낼 뿐이다. 아니 말씀 그 자체가 드러날 뿐이다. 회개를 이루시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행하시는 것이 드러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말씀이 활동하여 내가 쪼개어지고 해체되며 벌거벗은 것 같이 그 실체가 폭로되어 결국 드러나시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뜻을 판단한다. 그래서 성도의 죄악된 실체가 날마다 폭로되어 십자가 은혜로 말씀을 먹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말씀이 된 자이다. 이제 내가 주체가 아니라 말씀이 주체가 된 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교회요 성도이다(2023061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계39.1001-11 열려 있는 책(202306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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