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창세기 9:8-17 언약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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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35
창세기 9:8-17
언약의 증거
창세기 6:18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경에 처음 “언약”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것은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고 그 은혜로 인해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6:9)하는 존재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노아에게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이 방주에서 나와 번제를 행한 것이었다. 즉 정결한 것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정결하지 못한 자가 살려줌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을 주시는 이 말씀도 하나님과 노아와 대등한 관계에서 맺는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언약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노아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언약의 증거를 하나님께서 무지개로 말씀하셨다. 그러다보니 문제는 본문에 등장하는 무지개를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는 메시지로 받는다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는 사랑하신 증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오늘날도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언약의 증거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8-11절).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가 내 언약을”(9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11절), “내가 나와 너희와”(12절), “내가 내 무지개를”, “나와 세상 사이의”(13절), “내가 구름으로”(14절), “내가 나와 너희와”, “내 언약을”(15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16절), “내가 나와 땅에 있는”(17절)라고 강조하신다. 즉 인간 편에서 세운 인간의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이다.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라는 말씀 역시 하나님께서 노아의 후손과 모든 생물과 맺는 언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아가 다스리시는 모든 생물은 노아 언약 안에서 언약의 실체가 이루실 것을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아’라는 인물을 통해 진짜 안식이신 분이 이 땅에 오심으로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어 땅적 존재들에게 진리로 충만하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이다.
홍수로 멸하신 것은 인간이 어려서부터 악하고 죄인이라 죄 밖에 지을 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이 몰라서 멸하신 것이 아니라 홍수 심판을 통해 죄에 대한 심판과 죄를 덮어주시고 속량을 이루시는 언약의 당사자가 이 땅에 오셔야 된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증거, 표를 주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12-17절).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라고 하셨는데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케셰트’이고, “구름”은 ‘아난’이다.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언약의 증거로 영원히 세우신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다고 말씀하신다. 무지개가 구름 속에 있어야 하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무지개는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걷혀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구름으로 땅을 완전히 덮어 싸 버린다는 뜻이다. 그렇게 구름으로 땅을 완전히 덮어 싸면 무지개가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의 무지개를 우리가 단순히 하늘에 있는 무지개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지개로 번역된 ‘케셰트’는 창세기에서 몇 번 더 나오는데 본문을 제외하고 창세기에서 네 번 더 기록되었다.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케셰트)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창 21:16)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케셰트)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창 27:3)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케셰트)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창 48:22)
요셉의 활(케셰트)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창 49:24)
이 네 본문은 문맥상 ‘활’로 번역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렇게 번역하였을 것이다. ‘케세트’가 단순히 두 가지 뜻이 있으니까 마음대로 번역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며 오늘 본문에서 ‘무지개’로 번역한 것이 무조건 잘 못 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일곱 색의 무지개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구름이 땅을 완전히 덮었을 때 무지개는 생기지 않고 또한 반드시 무지개가 뜨기 위해서는 비가 온 후에 공기 중에 물방울들이 있고 구름이 걷힌 사이로 태양 빛에 반사되어야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지개는 구름과 별개로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케세트’는 ‘활’과 관련된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구름”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먼저 일차독자의 입장에서 구름이 어떻게 이해되었는가를 보자.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아난) 나타나더라(출 16:9-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아난)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출 19:9)
이 말씀을 통해 보았을 때 구름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민수기 9:15 이하에 보면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은 행진하여야 했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르는 동안은 진영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고 기록한다. 그래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르고 떠오르는 하나님의 명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렇게 말씀한다.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 9:21-23)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시 99:7)
그래서 시편 기록자도 구름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말씀하심으로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무지개가 구름 속에 있다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 본문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간 장면이다.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출 24:15-18)
무지개가 구름 가운데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신 것으로 나타내셨다. 즉 언약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구름 가운데 들어와 하나님의 부르심 앞으로 나오면 생명에 합류되어 살리심을 받는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렸는데 그것을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한마디로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을 가리키며 부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임재와 부르심을 구름으로 표현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상징이다. 이런 점에서 구름으로 땅을 덮는다는 것은 땅적 존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덮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구름 속의 무지개, 즉 활이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시 7:11-13)
활이 오늘날은 스포츠로 인식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죽이는 도구이다. 즉 ‘케셰트’는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가 죽이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지개, 즉 활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향한 활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임하시면 자기 죽음으로 하나님의 자기 언약(내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언약의 증거”(히, ‘오트’)이다. 가인에게 주셨던 그 표이다(4:15). 즉 언약의 ‘표적이고 상징’이다. 그것을 말씀 안에 담아 두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증거는 우리가 기억하라고 주신 우리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16절)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15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기억하시기 위해 주신 언약의 표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언약을 주시고 자기 언약을 자기 죽음으로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 언약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그 죽음 안에 담겨진 생명만 진짜 생명이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11)
(20230402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