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강론/십계명(열 말씀) & 언약

성경, 언약으로 보기 02_로마서 1:2-4 하나님의 언약

불편한 진리 2023. 3. 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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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언약으로 보기 02

로마서 1:2-4

하나님의 언약

 

‘계시’라는 헬라어 ‘아포칼륍시스’는 없었던 것인데 새롭게 만들어서 나타낸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것인데 감추어져 있고 덮어져 있던 것을 열어서 보여준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란 없었던 하나님이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본래 존재하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시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 19:1-4)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셨고 그 피조세계는 언어가 없지만 하나님의 소리, 즉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종말을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은 변화하는 것이고 자연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을 우리는 ‘시간’이고 ‘역사’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를 창조하신 역사 속에 펼쳐 놓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선택하여 언약을 주셨다.

결국 하나님의 묵시를 역사 속에 나타내신 방식이 ‘언약’이다. 하나님은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분명한 뜻과 계획을 말씀하심으로 일관된 목표를 향해 일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창조로 시작하여 새로운 나라로 회복하시는 언약을 이루시는 그것을 성경에서 ‘구원’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은 이 언약을 따라 이루신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언약의 말씀으로 기록한 것이 ‘나의 구원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중심’이다.

‘언약’이란 히브리어로 ‘베리트’인데 ‘먹다, 사이, 선택하다, 자르다, 선택하다’ 등 여러 견해들이 있는데 본래 어떤 단어에서 파생되었는지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먹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경우는 언약 체결로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사이’로 보는 경우는 관계나 중보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언약을 맺다’라는 표현이 ‘베리트 카랏’(‘언약을 자른다’)인데 쪼갠 고기처럼 깨질 수 없는 언약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무튼 ‘베리트’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 신약에서는 ‘디아데케’인데 ‘맹세, 유언’이라는 뜻도 담고 있어서 우리 성경에 ‘유언’(히 9:16-17)으로 잘못 번역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악의 나무를 취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역사의 의미를 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의 심도로 측정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역사는 수평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묵시의 관점에서 보시는 것은 수직적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죄의 깊이로 역사를 말씀하심으로 인간의 죄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신 이유는 언약의 궁극적인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죄악의 현장인 가장 밑바닥의 상태로 오셔야 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역사 속에서 묵시를 만나는 현장이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마 17:1-5)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눈 대화를 누가복음 9:31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하였다. 여기서 “별세”(헬, ‘엑소도스’)란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나간다’라는 의미의 ‘탈출, 퇴장, 죽음’이라는 뜻이다. 묵시 세계가 드러날 때 죄인들의 반응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이다. 여기서 역사는 묵시와 충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묵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묵시의 세계가 역사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묵시가 역사를 부정한다는 차원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묵시를 역사 속에 펼쳐 놓으신 이유는 인간의 죄를 공박하고 폭로하시면서 언약의 궁극적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1-3)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2절). 여기서 “선지자들”이란 구약성경을 의미하고, “아들”이란 아버지와 동등하심이다. “복음”은 갑툭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한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복된 소식이고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것이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의 사람들을 통해 나타내 주셨지만 핵심은 메시아(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었다. 언약의 인물들은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존재이고 예수님은 그 언약의 성취로 오셨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4절)이시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율법을 주시고 말씀하셨던 모든 제사 제도들은 복음을 담아 보여주는 그릇이었다. 대제사장, 성전, 제물, 안식일을 비롯한 안식년과 희년, 절기들, 십일조 등은 언약의 인물을 보여주는 도구들이었다. 그러기에 구약에도 은혜를 입은 자는 언약을 받아들이고 율법 속에서 오실 메시아를 발견함으로 생명을 얻었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인물들도 언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율법도 복음이라고 성경은 선언한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3-4절). “다윗의 혈통”(헬, ‘스페르마’)이란 ‘후손, 씨’이라는 뜻이다. “성결의 영으로”(헬, ‘프뉴마 하기오쉬네스’)라는 말씀은 ‘거룩하게 하시는 영을 따라서’라는 의미이다. “선포되셨으니”라는 말은 헬라어 ‘호리조’(지정하다, 확정하다, 인정하다)로 ‘확정되셨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기에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정적으로 드러났다는 뜻이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로 오셨지만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내신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창세 전에 이미 준비하셨었다(엡 1:4-6).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한 시대, 한 인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를 다 아우르는 언약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는 언제나 살아 있는 자와 맺으신다. 죽은 자라면 죽은 자를 살려내서라도 살아 있는 자와 언약을 맺으신다. 언약의 후손을 이어가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다윗의 후손으로만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언약을 주셨으며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끌어 오셨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모든 언약은 ‘은혜 언약’이다. 소위 말하는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여 본질적인 목표에 도달하게 하셨다는 ‘행위 언약’이란 없다. 다시 말해서 죄인들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고 순종하면 언약이 이루어지는 그런 방식의 언약은 애초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순종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을 의미한다(렘 31:31-34).

언약에는 반드시 쌍방의 계약에서 어느 한쪽이 깨면 그 언약이 깨어진다는 의미에서 죽음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을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셨기에 하나님 홀로 책임지시는 언약이다. 환언하자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걸고 언약을 하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에는 반드시 자신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셨으며 부활로 그 언약이 확정되셨음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오직 언약을 성취하신 아들에 대한 말씀이다. 그래서 1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였는데 복음의 출처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언약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래서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신다(창 6:18, 9:9, 17:2, 출 19:5, 레 26:15, 신 31:20, 시 89:34, 렘 31:32, 겔 16:62, 호 8:1 등). 따라서 쌍방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신 언약이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죄가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언약의 거부자에 대해서 심판의 근거가 된다. 언약은 역사 속에서 펼쳐지며 그 역사는 종말을 향해 있다. 역사 속에서 묵시를 설명하고 역사는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에는 언제나 언약의 증거물이 제시되는데 그 증거물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기 죽음이 들어 있다(창 8:20, 신 12:11 등). 그 죽음의 실체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넷째,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이다. 언약의 상대자를 이스라엘로 세우셨으나 언제나 살아 있는 자와 맺는 언약임을 보여주심으로(창 17:21, 신 5:3, 29:13-15 등)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궁극적으로 살아 계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다섯째, 영원하신 하나님이 하신 언약이기에 영원한 언약이다(창 9:16, 17:7, 출 31:16, 레 24:8, 삼하 23:5, 대상 16:17, 사 24:5 등). 구약의 모든 언약은 새 언약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흡수된다.

여섯째, 하나님의 언약에는 반드시 언약의 수혜자가 있고 그와 하나 되는 연합의 개념을 담고 있다(출 6:7, 레 26:12, 렘 6:7). 언약의 수혜자는 언약을 맺는 대표자로 표시된다.

일곱째,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은혜 언약이다. 개혁주의 내에서도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으로 나누는데 행위 언약으로 어떤 목표 지점까지 이르러야 하는 언약이 아니라 애초에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이루시는 언약이기에 모든 언약이 오직 은혜 언약이다(2023031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성경,언약으로 보기02.롬0102-04 하나님의 언약(202303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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