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요한계시록 7:1-8 십사만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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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27
요한계시록 7:1-8
십사만 사천
오래전에 어니스트 앵그리(Ernest Angley)가 지은 ‘휴거’라는 책이 교인들에게 많이 읽혔던 적이 있었다(지금도 출판되어 판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읽는 사람들이 읽는 것 같다). 저도 학생 시절에 읽고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이 교인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제가 생각하는 것은 심판을 면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고, 그 원인은 종말에 대해 성경적으로 무지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국 교회 내 많은 교회가 세대주의의 영향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4장에서 하늘 문이 열려 “이리로 올라오라”라는 말씀을 예수님의 공중 재림으로 이해하고 교회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간다는 ‘휴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휴거 되지 못한 자들은 6장의 인 심판에 의한 대환난을 겪는데 그때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순교를 당하는 십사만 사천 명이 구원을 받는다고 해석한다.
사실 이런 잘못된 해석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섯째 인이 떼어진 6:17에서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수사의문문 형식으로 답변이 확정된 물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7:1 이하의 말씀을 통해 보여주신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1절). “이 일 후에”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장면의 전환을 뜻한다. 여섯째 인에 이어 일곱째 인이 떼어질 것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잠깐 막간(삽입)의 계시를 전한다. “네 천사”를 2절에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받은”이란 헬라어 ‘에도데’(원형 ‘디도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행하는 권세를 넘겨받았다는 뜻이다. 천사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존재’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다. “네 모퉁이에 선 것”이란 땅 전체를 주관하고 있다는 뜻이다(참고 사 11:12, 겔 7:2). “바람”이란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용어이다(참고 단 7:2).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렘 49:36)
“땅”의 바람은 그 근원이 하늘로써 땅적 존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라고 말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넘겨받은 네 천사가 바람을 붙잡고 있으므로 최종적인 심판이 유보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2-3절)라고 밝혀 준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작업 때문에 심판이 유보되어 있다. “다른 천사”란 앞의 네 천사와는 구별되는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낸 것이다(참고 8:4, 10:1, 18:1 등).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라고 하였는데 창세기 2:8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라고 하였는데 동쪽으로부터 분리하여 어떤 곳에 두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도록 하셨을 때 성막의 출입구를 동쪽에 두셨다(민 3:38). 또한 에스겔은 환상 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을 통하여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겔 43:2). 이런 점에서 “해 돋는 데로부터” 동쪽으로 올라온다는 것은 생명을 주신다는 뜻을 가진 표현이다. “인”(헬, ‘스프라기조’)이란 ‘도장’이라는 말인데 소유권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치시는 인이란 생명의 소유요 생명에 속함을 보증한다는 뜻이다. 에스겔 선지자의 선포 속에 이렇게 드러난다.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4-6)
에스겔의 환상에서 이마에 표를 한 사람은 살육을 면한 것처럼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종들의 이마에만 인을 친다고 하였다. 이마에 인친다는 의미는 이미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였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하나님의 언약으로 생명에 속하였다는 것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외적인 표시로 손목과 미간(이마)에 말씀을 기록하는 것이다. 말씀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언약의 성취에 의해 말씀이 새겨지는 것을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하여 성령을 주시는 것이고 곧 인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성령으로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보증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에 인을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라고 언급한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4절). 그러면 “십사만 사천”이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5절 이하에 보면 유다 지파를 비롯하여 열두 지파가 지파별로 “일만 이천”이라고 하였다(여기에 단 지파가 빠진 것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대부분 추측과 인간의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아닌 요셉 지파라고 표현한 것은 민수기 1:32에서 므낫세와 달리 에브라임에 대해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이라고 하여 요셉에게 부속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단 지파를 므낫세 지파로 대체하였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이다. 21장에서 성곽의 문들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들과 성곽의 기초석 위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을 측량하였다고 말씀한다.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계 21:16-17)
성곽이 “백사십사 규빗”이라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곱하면 144가 된다. 거기에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되는데 ‘1,000’이란 이스라엘의 전쟁을 위한 군대의 기본 단위 수로(참고 민 31:4, 대상 27:1)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 하나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
각 지파별로 이렇게 12,000으로 딱 떨어지는 수로 계수가 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성경의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만 이천”이란 사람의 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십사만 사천” 역시 흔히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말하듯이 자기 모임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구약의 열두 지파 안의 언약 백성과 신약의 열두 사도를 기초로 하여 형성된 교회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십사만 사천”은 이만큼의 수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상태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존재를 인 맞은 자들로 표현하였다. 숫자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천년이 차면 백사십사라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은 한마디로 십자가의 은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된 교회요 성도를 의미하며 이 교회는 군대의 성격을 가진다는 뜻이다. 물론 주님의 몸 된 우리가 직접 싸우는 군대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곁에 세워진 장수로서 악의 세력과 대적하는 입장에 있다는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요 성도는 이 땅에 내려진 심판 가운데 있지만 철저히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서 성령께 이끌림을 받는 존재가 십사만 사천이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주일성수 잘하는 자, 헌금을 많이 하고 십일조 꼬박꼬박하는 자, 많은 사람을 모은 전도의 실적이 있는 자, 많은 시간 기도에 투자하는 자, 큰 성전을 지은 목사에게 인을 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씀하였다. “종”이란 주인의 소유가 되어 주인의 뜻을 알고 같은 운명이 된 자이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된 자가 인 맞은 자이다.
따라서 교회요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늘 생각하면서 묵시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어 있다. 묵시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점부터 종말을 이루신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통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단편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자기중심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관점에서 세상의 끝이 어떻게 확정되어 있는가를 안다는 뜻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 땅의 환난을 겁내거나 피하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은 존재로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는 자가 성도이다(20230305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